길고 가는 것은 기억 못해도, 짧고 굵은 것은 기억난다. 윤동주가 별을 헤아리듯이 우리도 원히트 원더를 읊어보자. 별 하나에 김흥국, 별 하나에 크레용팝, 별 하나에 앨런 스미스, 별 하나에 블랙번 우승.
E스포츠라고 다르겠는가. 선수들의 짧고 굵은 전성기시절은 수두룩하다. 오늘은 감동과 임팩트에서 ‘임팩트만은 최강’인 ‘3신전’을 알아보자.
최연성이라는 당대 최고의 게이머가 우승을 한 이후, 스타크래프트 팬덤의 의견은 대부분 “이제는 최연성의 시대다. 스타크래프트는 여기서 끝난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멸망했다…
가 아니고 최연성 역시 우승자 징크스를 이겨내지 못했다. 바로 다음 시즌인 IOPS배 스타리그에서 16강 탈락을 했다. MBC게임에서도 최연성은 우승권 문턱에서 탈락했다. 최연성의 빈자리는 이윤열과 박태민 그리고 박성준이 채웠다.
여기 셋이 주인공이다. |
스타크래프트에서 2004년 말부터 2005년 여름까지는 한국 정치사의 ‘3김 시절’과 비견된다. ‘운영의 신’ 박태민과 ‘머신’ 이윤열과 ‘전투의 신’ 박성준이 서로 번갈아가며 지배했기 때문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에 비해 이름값이 부족했던 김종필과 달리 박태민, 이윤열, 박성준의 경쟁은 우위를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했다.
쩌리였던 JP(맨 왼쪽)가 최장수 중이다. 출처=대한매일 |
시작은 박태민이었다. ‘미남군단’ 슈마GO의 일원이던 박태민은 2005년부터 본인의 기량을 만개했다. 박태민의 장점은 운영이었다. 경기마다 체계적으로 빌드오더를 준비해 치밀하게 계산된 운영을 선보였다. 본인의 빌드가 읽히더라도 계산대로 운영만 된다면 절대 지지 않았다. 4드론∼5드론과 같은 초반 전략에 약했지만, 중반만 넘어가면 박태민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불리한 경기도 운영으로 역전하던 박태민이다. 괜히 별명이 ‘운영의 마술사’겠는가. 마술 같은 운영으로 마법 같은 기록을 남겼다. 공식전 15연승이라는 당대 최고의 기록을 경신했다.
잘생겼는데 게임도 잘한다. |
그의 운영은 기록을 넘어 저그의 꿈으로 이어졌다. 당신은 골프왕배 MSL에서 역상성인 테란을 4:2로 꺾고 우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테란은 당대 최고의 테란 이윤열이었다. 전략에‘만’ 약한 박태민과 물량전에 강한 이윤열의 만남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4:2라는 치열한 스코어에 비해 경기는 박태민이 일방적으로 압도했다.
현재는 게임해설가로 활동 중인 박태민 |
같은 기간, 온게임넷에선 IOPS배 스타리그가 있었다. 최연성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할 무렵, 우승은 누구의 몫이냐는 논쟁이 있었다.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한 ‘투신’ 박성준과 MSL에서 무적의 포스를 보여준 ‘운(영의 )신’ 박태민이 손에 꼽혔다. 리그를 시작할 때만 해도 ‘머신’ 이윤열은 강력한 우승 후보는 아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같은 조엔 최고의 저그 박성준과 천적이자 전 대회 우승자 최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그가 시작하자 모든 게 바뀌었다. 최강자이자 본인의 천적인 최연성은 조별 리그에서 떨어지고, 테란과 상성의 관계에 있는 프로토스는 조별 리그에서 전멸했다. 비록 8강에서 ‘폭풍’ 홍진호를 만났으나 맵과 종족상성이 이윤열에게 유리했다. 이윤열은 8강에서 홍진호를 만났고, 4강에서 본인을 MSL 결승에서 좌절시킨 박태민을 만났다. 0:2로 밀리다가, 귀신같이 3:2로 역전했다. 역스윕으로 본인이 ‘양박 시대(박태민-박성준의 시대)’의 유일한 대항마임을 증명한 이윤열은 이제 결승에서 박성준을 만났다.
욕 같으면 기분 탓이다. |
‘머신과 투신의 대결이라니!’, ‘같은 저그로서 박태민의 복수를!’, ‘테란의 유일한 대항마다!’ 등등 팬사이트에선 온갖 댓글이 달렸으나 결승은 진짜 시시했다. 이윤열의 부드러운 3:0 압살. 삼신전 시절에는 치열했으나, 결과적으로 이윤열과 박성준의 공식전 기록은 8:2로 이윤열이 압도적인 천적이었다.
천재 테란이 이겼다. |
MBC게임은 박태민이 먹고, 온게임넷은 이윤열이 먹었다. 여기서 끝나면, 삼신전이라기엔 모자라다. 준우승만으론 ‘투신’ 박성준의 이름값이 아깝다. ‘투신’은 바로 다음 리그에서 본인을 증명했다.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