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가족이라 말하는 이가 있다. 해병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큰아들만큼이나, 자신을 딸바보로 만들어버린 늦둥이 딸만큼이나, 언제나 옆에서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아내만큼이나 골프가 소중하다는 것이다.
<비즈한국>이 만난 이달의 주인공은 골프해설가 겸 티칭프로인 이신 프로(49)다. 서울대공원에서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프로의 2%, 챔피언스투어로 채운다
골프업계에서 이신 프로는 ‘이 프로’로 통한다. 그의 성(姓)인 ‘이’와 골프전문가를 뜻하는 ‘프로’가 붙어 ‘이 프로’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골프전문가가 되기에는 아직 2%가 부족하다고 얘기한다. EMC골프아카데미 원장 겸 JTBC 골프채널의 골프해설가인 그는 남은 2%를 채우기 위해 내년에 챔피언스투어에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 티칭프로 겸 골프해설가 이신 프로. 사진=최준필 기자 |
―2%가 부족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프로는 잔디 위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진정한 전문가는 그 분야에서 즐기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골프전문가를 하는 데 있어 2%가 부족하다는 건 잔디 위를 걷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내년에는 챔피언스투어에 출전할 계획이다. 가끔 라운드를 나가는 것으로는 잔디에 대한 그리움이 충족되지 않는다. 챔피언스투어 경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골프중계를 하는 데도 지장이 없다. 내년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다.”
―성적이 부진할 경우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지 않나.
“골프전문가라고 말하는 데 2% 부족하다고 해서 골프실력이 모자라는 건 아니다. 그래도 티칭프로인데 성적이 부진하겠는가. 이론과 실력을 겸비한 자만이 티칭프로로 활동할 수 있다. 결코 명예가 실추될 일이 없으니 걱정 말라. 내년에 챔피언스투어 성적을 통해 지금 내가 한 말을 증명해 보이겠다.”
―가장 자신 있는 샷은 무엇인가.
“퍼팅이다. 연습장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도 퍼팅연습은 빼놓지 않는다. 하루 단 5∼10분이라도 반드시 퍼팅연습을 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골프를 잘 치는 방법이 뭐냐’다. 나는 ‘매일 퍼팅연습을 하라’고 말해준다. 매일같이 연습장을 찾는 이들도 퍼팅연습에는 소홀하다. 타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샷이 퍼팅이라는 점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 한미일, 유럽·아시아까지 섭렵한 해설가
이신 프로는 미국·일본·한국 투어뿐만 아니라 유로피언·아시안 투어까지 전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골프대회를 중계해왔다. 한 라운드당 평균 대여섯 시간 중계를 하니, 그동안 그가 골프중계를 하면서 말한 것만 수백, 수천 시간에 달한다. 그만큼 골프대회와 출전선수, 골프이론에 해박한 지식이 겸비해야만 한다. 이신 프로에게 골프해설가로서 갖춰야 할 요건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 경기당 20시간을 말하는 셈이다. 힘들지 않나.
“물론 힘들다. 풍부한 리서치가 필요한 직업이 바로 해설가다. 해외대회를 중계할 경우에는 가장 먼저 기후부터 체크한다. 날씨의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함이다. 그 나라의 골프 문화와 골프장의 특징도 파악한다. 그리고 개최국에서 보도된 골프 관련 기사를 모두 습득하고 메모한다. 모든 출전 선수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선수를 공부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 모든 것들이 준비돼야만 순조롭게 중계할 수 있다.”
―골프선수와의 관계도 중요할 것 같다.
“보도된 기사만으로 골프선수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면 중계가 무미건조해질 수밖에 없다. 선수뿐만 아니라 그 선수의 가족들과도 관계가 좋아야만 살아 있는 중계를 할 수 있다. 몇몇 해설가는 대회 시작 전 연습그린에 있는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더라. 하지만 난 대회를 앞두고 예민해 있는 선수와의 대화는 피하고 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선수의 성적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계가 없는 날 개인적으로 선수들을 만나 그 선수에 대해 알아간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수와는 SNS나 문자로 자주 연락하는 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중계가 있다면.
“KPGA와 KLPGA 투어의 이원중계를 했을 때의 일이다. 한창 중계를 하던 중 정전이 되고 말았다. 블라인드 해설을 이어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정전이 되기 직전 카메라에 잡힌 선수가 어프로치샷을 하려던 중이었는데, 현장 화면을 볼 수 없어 그 선수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 예상대로 설명했다. 혹여나 잘못된 해설을 했을까봐 한참 걱정했는데, 집에 돌아와 재방송을 보니 해설한 그대로 선수가 샷을 했었다.”
▲ JTBC 골프해설가로 활약 중인 이신 프로. 제공=이신 프로 |
―선수와의 에피소드는 없나.
“4라운드 대회가 시작되기 전 김형태 선수에게 악수를 권한 적이 있다. 근데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거절을 하더라. 꽤나 민망했었다. 근데 그 대회에서 김형태 선수가 우승했다. 대회를 마친 후 김형태 선수가 찾아와 사과를 하더라. 흔히들 하는 말로 손 탈까봐 악수를 거절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대회 직전 선수들의 몸에 터치하지 않는다.”
# 해병대 아들, 늦둥이 딸도 골프로 성공할 것
지난해, 딸이 태어났다. 딸의 이름은 효림. 골프선수로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새벽 효(曉)에 수풀 림(林)으로 지었단다. 골프인생을 걸어온 지 어느 덧 40여 년, 이신 프로는 ‘촉’이 생겼다고 한다. 골프선수로 성공할지, 못할지가 어느 정도 예상된다는 것이다. 아들 효상과 딸 효림 모두 골프선수로 성공할 수 있으리라 그는 확신하고 있다.
―아들이 해병대에 입대했다. 걱정되지 않나.
“이중국적자라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아들이 먼저 군대에 가겠다고 했다. 골프선수로 좀 더 노력해야 할 시기에 군대에 가겠다고 해서 처음에는 반대를 많이 했다. 아들이 국가대표 선수에서 자꾸 떨어진 데 대해 스스로 멘탈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해병대 전역을 하면 남들의 두세 배로 연습하겠다고 했다. 결국 아들의 설득을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아들이 골프선수로 성공할 것 같나.
“한두 번 우승에 그치는 선수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승은 못하더라도 30위권 내에서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투어선수로 활동했으면 좋겠다. 아들은 골프를 돈벌이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골프를 즐기면서 하기 때문에, 오래 걸리겠지만 다승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언젠가 최경주, 양용은, 모중경 등의 40대 선수들처럼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딸도 골프선수로 키울 생각인데.
“아직 두 살이다. 3년 후 다섯 살 때부터 골프를 가르칠 계획이다. 아내도 그러길 원한다. 물론 커가다 딸이 싫다고 하면 강요할 생각은 없다. 때문에 성인이 될 때까지 학업에 소홀하지 않도록 지도할 생각이다. 아들도 그렇게 커왔다. 왠지 딸이 골프선수로 잘해낼 것 같은 촉이 있다. 이신 프로의 딸 효림이 20년 후 어떻게 될지 지켜봐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