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자 한 상자를 두고 유유히 사라지는 광고 속 보일 여사. 출처=컬럼비아 |
# 1.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눈이 펄펄 내리는 스키장. 새벽 2시. 멈춰선 리프트에 두 남녀가 앉아있다. 조금 있자니 아래에서 사다리차를 타고 한 백발의 노인이 올라온다. 남자가 반갑게 이렇게 말한다. “회장님, 저희 내려가는 거예요?” 그러자 노인은 답한다.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 그러더니 피자 박스를 하나 건네고는 다시 유유히 아래로 사라진다.
# 2. 비 내리고 파도치는 바다 위의 작은 돌섬. 여러 명의 남녀들이 먼 바다를 응시한 채 앉아 있다. 멀리서 드론 하나가 다가오더니 상자 하나를 툭 떨어뜨리고 간다. 반가운 마음에 상자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은 “저희 통과했나 봐요”라고 말하며 서둘러 상자를 연다. 하지만 상자 속에는 종이 한 장이 달랑 들어있을 뿐이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짤막한 지령이 적혀있다. ‘테스트를 계속 진행하시오.’
이 광고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엉뚱한 이 광고는 미국의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인 ‘컬럼비아(Columbia)’의 ‘테스티드 터프(Tested Tough)’ 광고 캠페인이다. 그리고 이 광고 속에 등장하는 노인은 다름 아닌 컬럼비아의 회장인 거트 보일 여사(93)다. 보일 여사는 이미 30년 넘게 자사의 광고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테스티드 터프’ 캠페인은 컬럼비아의 상징이 됐을 정도로 이미 미국에서는 유명하다. 또 ‘완벽, 그 이상을 추구한다’는 회사의 기본 철학과 함께 보일 회장이 평소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완벽하지만, 더 잘 만들어라’는 뜻이 광고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기에 더해 아들에게 입힐 수 있는 옷을 만드는 엄마의 마음도 담겨 있어 소비자들에게는 ‘믿고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실제 1984년 첫선을 보였던 ‘테스티드 터프’ 시리즈 광고에서 보일 회장은 ‘컬럼비아’의 현 CEO이자 아들인 팀 보일과 나란히 광고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었다. 이 광고에서 보일 회장은 아들에게 안쓰러울 정도로 가혹하게 신제품 테스트를 시키는 ‘터프한 엄마’로 등장한다.
컬럼비아 재킷을 입은 아들에게 자동 세차장 기계를 통과하도록 시키거나, 또는 아이스링크 얼음 바닥 밑에 꼼짝 없이 갇힌 채 누워있는 아들 위로 육중한 정빙기를 몰고 지나가기도 한다. 광고를 찍는 과정에서 팀 보일은 타박상을 입거나 멍이 들고, 심지어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고생은 전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광고는 대박을 쳤고, 이는 곧 회사의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컬럼비아의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어필한 비결은 참신함과 독특함이었다. 당시 아웃도어 의류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늘씬하고, 아름답고, 잘생긴 젊은 모델을 앞세워 광고를 했다. 때문에 난데없는 할머니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광고만 그럴싸하게 잘 만든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컬럼비아는 거친 자연환경과 변화무쌍한 기후 속에서 철저한 테스트를 통과한 제품만 판매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최종 테스트를 통과한 제품에는 보일 회장의 사인이 담긴 ‘테스티드 터프’ 스탬프가 찍히고, 이렇게 스탬프가 부여된 제품만 비로소 시장에 나올 수 있다.
보일 회장은 아웃도어 브랜드 업계에서 눈에 띄게 성공한 자사의 광고 캠페인에 대해 “우리 회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제품의 혁신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킨 것은 좋은 광고 덕분이다”라고 말했다.(2편에 계속)
김민주 외신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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