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자에 앉아 있느냐가 남자의 인생을 결정한다. 의자는 그냥 가구가 아니다. 의자는 권력과 아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영어 Chairman이란 단어는 의자와 사람이 합쳐져서 최고 권력자를 지칭한다. 이는 권위의 의자를 차지한 사람(occupier of a chair of authority)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 한자어에는 권좌(權座)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도 의자가 권력의 상징이다.
▲ 의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사치’이다. |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자는 아무나 쉽게 앉을 수 있는 가구가 아니었다. 의자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 왕조시대로, 왕족과 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였다. 이후로도 서양에서는 상류계급만 의자를 사용했고, 일반에게 보급된 것은 겨우 18세기부터다. 지금은 누구나 집에 하나씩은 의자를 가지고 있고, 사무실 책상마다 하나씩 놓여있기도 하다.
요즘 들어 비싸고 좋은 의자나 책상에 탐을 내는 이들이 많아졌다. 부자만 그러는 게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들도 그렇다. 사실 가구는 누굴 집에 초대하기 전까진 보여줄 수도 자랑할 수도 없다. 온전히 그 가구를 사용하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자 사치인 셈이다. 비싸고 좋은 가구를 사는 대신 나머지를 아끼는, 소비에서 일종의 선택과 집중을 받아들인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특히 의자는 앉아 있는 자기 자신을 위한 가장 만족스런 사치품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의자에 앉아 있는가?
사무실에서 쓰는 의자로는 허먼 밀러의 에어론 체어(Aeron Chair)가 대표적이다. 구글, 애플, JP모건 등을 비롯한 포천 500대 기업 절반 정도가 허먼 밀러의 사무용 가구를 사용했던 적이 있다. 국내서도 대기업 회장이나 사장들 중에서도 에어론 체어를 쓰는 이들이 꽤 있다고 한다. 비싸서가 아니라 편해서다. 인체공학적 사무실 의자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에어론 체어는 디자이너와 인체공학자, 정형외과 의사, 기계공학자, 혈관 전문가까지 참여해서 만든 아주 특이한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사무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할 이들에게 아주 유용하다. 물론 이 의자에 앉는다고 일이 너무너무 잘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의자는 그냥 의자일 뿐. 다만 장시간 의자에 앉아서 일해야 하는 이들이라면 자기를 위한 선물로 고려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비싼 의자 중 대표적인 것이 임스 라운지 체어(Eames Lounge Chair)다. 어느 대선후보가 이 의자 때문에 서민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당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서민은 좋은 의자 가지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든다. 요즘 흔해진 샤넬백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덩치 큰 의자 쪽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유명한 의자 중에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Barcelona Chair)도 있다. 이 두 의자는 휴식에 잘 어울리는 의자이며, 한국에 유독 짝퉁이 많다.
▲ 에어론 체어(위)와 임스 라운지 체어. 출처=Herman Miller |
오리지널 제품을 소유하고 싶지만, 가격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중고를 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요즘은 낡은 것도 멋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보니 중고라고 싸지는 않다. 유럽의 벼룩시장을 돌며 좋은 빈티지를 구해서 한국으로 배송시키는 이들도 있다. 이건 안목 있는 이들만의 특권과도 같다. 과거엔 낡은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요새는 빈티지나 앤티크란 이름을 달고 다시 매력적으로 부활하면서, 좋은 빈티지를 싸게 구하기란 점점 어려워져간다.
유명 디자이너의 의자 진품을 상대적으로 싸게 가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플라스틱 체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디자이너의 의자도 가죽이나 나무가 많이 들어간 제품보다 플라스틱을 많이 써서 만든 제품 라인은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실제로 필립 스탁, 론 아라드, 찰스 임스 등 유명 디자이너들은 플라스틱 체어를 여러 개 만들어놓고 있다. 비싼 걸 좋아하는 것보다 가짜를 사서 비싼 것인 양 속이려 하는 게 훨씬 더 속물스럽다.
의자를 통해서도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이 나온다. 좋은 의자를 고르는 안목도 필요하다. 유명하고 비싼 의자에 앉자는 게 아니라 적어도 자신의 자리와 역할,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자는 거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의자에 앉아 있는가? 그 의자가 당신의 권위와 품격을 담아내고 있는가? 의자는 그냥 가구가 아니다. 우리의 모습을 담는 그릇일 수도 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KBS 1라디오 <생방송 오늘>을 비롯해 다수 프로그램과 대기업 강연을 통해 최신 트렌드를 읽어주고 있다. 저서로는 <라이프 트렌드 2016: 그들의 은밀한 취향>, <라이프 트렌드 2015: 가면을 쓴 사람들>, <라이프 트렌드 2014: 그녀의 작은 사치>,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 본 오빠들의 귀환>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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