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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운, 또 국민혈세로 메우겠다고?

2016.06.25(Sat) 10:02:46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종반전을 달리고 있다. 경기장을 들쑤시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소속 조사관들은 검찰로 교체됐고, 구조조정을 끌던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공을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넘겨줬다. 금융당국으로선 채권단과 기업 간에 다리를 놓았으니 할 일은 다했다는 입장이다. 조선·해운사는 이제 자구안을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으며, 채권단은 기업이 자구안을 잘 이행하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2개월 동안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새로운 비전과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셈이다.

검찰은 지난 23일 2012∼2014년 대우조선에서 일어난 분식회계가 5조 원대에 육박한다는 잠정 집계치를 내놨다. 감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1조 5000억 원보다 3배 많은 규모다. 대우조선이 스스로 밝힌 분식회계 규모 2조 4000억 원보다 곱절은 많다. 검찰은 고재호 전 사장 등 전직 임원들의 비리를 밝히기 위해 2006년부터 수주한 500여 건의 프로젝트를 전수 조사한다는 계획이라 분식회계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검찰은 또 회계를 조작해 성과급 잔치를 벌인 김 아무개 전 부사장과 회삿돈을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상태 전 사장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수사의 칼끝이 자신을 향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 2015년 9월 산업은행 국감에 증인으로 나온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왼쪽)과 정성립 현 사장.

회사 경영을 책임진 사람들의 범죄 행위로 회사가 어려움에 빠졌고 국민경제에 타격을 입혔다면 문제를 끝까지 규명해 처벌이 마땅하다. 그러나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지역경제 붕괴와 대량 실업, 산업경쟁력 약화 등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던 구조조정이 이젠 검찰의 무대가 돼 버린 점은 석연치 않다.

구조조정 이슈의 판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일부터다. 정부가 조선 3사의 구조조정안을 일괄 승인한 날이다. 올 4월 구조조정 이슈가 처음 불거진 뒤부터 조선·해운업은 공급과잉과 업무 중복, 나아가 큰 틀에서 산업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부딪혔다. 혈세를 낭비한다는 주장과 산업 경쟁력을 잃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가장 유력하게는 정부가 빅딜 등 경영효율화를 나서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정부는 통·폐합 등 특별한 대책 없이 총 15조 9000억 원의 자구안을 승인하는 것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인력 감축과 불필요한 자산 매각이 내용의 전부였다. 2018년이면 업황이 개선돼 다시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란 조선 3사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그리고 바통은 구조조정 과정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유일호 장관에게 넘겼다. 그러면서 전·현직 임직원을 상대로 한 사법당국의 칼춤이 시작됐다.

국가 경제를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할 정부는 과거에도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부실이 불거졌을 때는 일부 저축은행 행장과 금감원 관계자들만 사법 처리를 했을 뿐,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금융산업의 중금리 시장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 서민 금융 시장을 어디로 이끌지 아무런 로드맵을 마련하지 않았다. 덩치가 큰 일부 저축은행을 대형 금융지주사에 흡수 합병시킨 것이 전부다. 정부가 무대책으로 일관한 탓에 이 시장은 일본계 대부업계가 모조리 쓸어갔다.

2009∼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지방 건설사들이 하나둘 붕괴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잇따라 좌초하며 융자를 받아 건물을 짓던 건설사로서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이때 정부는 경쟁력 없는 회사를 솎아내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보다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을 연달아 내놓으며 주택 분양시장을 달궜다. 집값이 오르고 분양에 숨통이 틘 덕에 중소형 건설사들은 간신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집권층에선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지방 경기를 죽이기엔 부담이 컸다. 문제는 이런 결정이 결국 GS건설 등 실력 있는 건설사들의 장기 적자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법조계에서는 대우조선을 비롯한 조선업 구조조정 문제가 더 이상 커지지 않을 것으로 점친다. 여당의 총선 패배 이후 전 정권에 대한 ‘관리’가 시작된 가운데 대우조선-산업은행으로 이어지는 비리·비위 건은 이제 폭발력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산업은행 문제는 이미 지난해 초 포스코와 함께 검찰의 손을 거쳤고, 전 정권의 핵심부에 칼을 꽂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재활용할 가치가 크지 않다. 오히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시작된 롯데에 대한 수사가 가치가 높고 여론몰이에 효과적이다. 대우조선 문제에서 출구전략을 고민하던 검찰로선 적당한 시점에 환승역에 도착한 셈이다.

결국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은 산업 건전성 회복이나 경쟁력 강화 등 중장기 비전 없이 국민의 혈세를 또다시 지원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될 공산이 커졌다. 또 언제나처럼 구조조정의 피날레는 검찰이 장식하게 됐다. 앞으로 조선·해운업 경기가 개선되지 않아 혈세가 모두 날아간다면 결국 누가 책임질 것인지 아무런 대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산업은행에도 잘못이 있고 책임은 있다. 그러나 정부는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고 있는 상황이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 급급하며, 자칫하다간 내년 대선까지 문제가 이어질지 걱정이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가 전한 최근의 분위기다. 용두사미로 끝나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한국경제에 또 다시 나쁜 선례를 남길 공산이 커졌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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