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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연구절벽, 대한민국의 연구가 무너진다

2016.06.23(Thu) 13:31:02

인구절벽, 재정절벽, 부동산절벽, 세기말이 지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끝과 급락을 연상하게 하는 ‘절벽’ 담론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과학계도 이런 절벽 담론에서 예외가 되지 못할 모양이다. 사람들이 흔히 국책연구소 혹은 정부출연연구소(정출연)라 부르는 곳에서 벌어지는 촌극이 과학계의 ‘연구절벽’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어떤 촌극이 벌어졌나 이야기하기에 앞서 정출연의 인적 구성을 좀 들여다보자.

바깥 사람들이 보기엔 모두 연구원이겠지만, 연구지원 업무의 연구행정원은 차치하고 연구 직접 종사자만도 연구원, 연구보조원, 기술원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기관별로 쓰임이 다를 때도 있으나 연구원은 대개 학위 과정의 연구 경험을 갖춘 분야 전문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다. 연구보조원은 이제 갓 연구의 길을 걷기 시작한 학인으로 학연생(주로 인근 학교 대학원생) 혹은 위촉(촉탁)연구원이 해당하며 비정규직이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많이 없어져 신진 연구자들은 잘 모르는 게 기술원인데, 실험연구 장치 제작 등 ‘손맛’ 전문가들로 과거엔 상당수가 정규직이었다.

   
 

구차하게 정출연의 인적 구성을 꺼낸 이유는 한 달쯤 전에 모 매체에서 국정감사 결과를 원용하여 쓴 정출연의 비정규직 인력 운용의 문제점과 현안에 관한 기사가 가져온 ‘나비효과’ 때문이다.

기사인즉슨, ○○정출연에서 비정규직 연구원이 최저생계비를 겨우 넘는 월급(매체에선 정규직 3분의 1수준이라 언급)을 받아가며 정규직 연구원의 일을 하다가 상해사고를 당했는데 비정규직이라 보상받을 길도 요원하다, 연구계마저 비정규직 착취가 심각하니 고쳐야 한다는 ‘사회 고발성 기사’였다. 이렇게 국회와 언론의 타박을 받은 해당 부처가 각 정출연 담당자들을 불러 이 문제를 전면 개선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낸 모양이다. 요지는 비정규직 연구원 규모 축소와 처우개선인데, 불똥은 ‘포닥 고용 전면 축소’라는 뜬금없는 방향으로 튀어버렸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가 아닐 수 없다. 그 매체가 지적한 것은 포닥(박사후 과정)이 아니라 학연생, 위촉연구원 같은 연구보조원 문제였기 때문이다. 포닥은 비정규직 연구원이며 학연생, 위촉연구원 같은 비정규직 연구보조원과는 다르다.

이미 위촉연구원(명칭은 연구원이지만 엄밀하게는 연구보조원급) 제도는 국문과 출신을 고가 장비 운용원으로 하는 등 문제가 계속 생겨 폐지한 곳도 제법 있을 정도이다. 학연생 제도 역시 연구보조원 확보가 아니라 인력 양성이라는 본래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일부 정출연과 특정연구기관에서 발생하는 재능기부 형태의 인턴십, 그리고 위험한 장비 사용에 연구보조원을 투입하는 일은 근절되어야 한다. 하지만 포닥은 학연생이나 위촉연구원과 다르게 다년간 집중 연구를 통해 양성된 연구원으로 정규 계약을 하지 않을 뿐, 연구 분야에선 전문가이다. 매체에 보도된 착취당하는 비정규직 연구보조원이 아니라 경력과 능력에 따라 연봉이 차등 책정되는 엄연한 연구원이다.

한데 비정규직은 연구보조원이나 연구원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식으로 위정자와 행정공무원들이 오해한 탓인지 우수 연구인력을 연구보조원급으로 격하하여 내치도록 가이드가 내려감에 따라 일부 포닥들의 계약 갱신이 공중으로 붕 떠버렸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이공계 석박사 유인책인 전문연구요원 제도로 일껏 양성한 박사요원들에겐 정규직 연구원으로 연구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징검다리가 포닥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포닥을 거친 연구원들은 다시 산학연으로 가 연구 인생을 계속 꽃피우게 된다. 그래서 포닥 고용은 정출연에서 많이 해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연구 현실을 오판한 모양이다.

우수 이공계 인력이 ‘기술입국’을 가능하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는 공허한 표어만이 앵무새처럼 반복되고 현장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방치하면 연구계에도 박사학위 후 연구할 기회가 박탈되는 ‘연구절벽’이 나타나는 건 시간문제다. 국회와 해당부처는 다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현명한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

박철완 전기화학자

 

차세대전지 성장동력사업단을 책임 운영하였고, 산자부 지정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센터 센터장을 지냈다. 책 <그린카 콘서트>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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