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 코리아에서도 다이내믹하기로는 손꼽히는 언론이 평소답지 않게 꾸준하게 읊조리는 레퍼토리가 있다. 상품의 원가 얘기인데, 그중에서도 집요한 것이 바로 스타벅스 커피원가에 대한 기사다. 너무 자주 접해서 전 국민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의 원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이 기사(링크) 역시 그간 쏟아진 수백, 수천 건의 기사와 똑같은 내용이다. 커피원두의 국제 거래가격을 스타벅스 한 잔에 들어가는 원두량으로 계산해서 400원 남짓이라는 내용과 함께 ‘원가에 비해 판매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결론 내린다.
이런 기사는 4000원대 커피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그 파급력이 막강했다. ‘역시 물장사’, ‘날강도’라는 말과 함께 ‘바가지’라는 말이 대중적인 공감을 얻었다. 원가, 그중에서도 눈에 보이는 것만 원재료라니 얼마나 투박한 개념인가. ‘원두값=원가’ 식으로 치면 사람의 원가는 정자와 난자다.
스타벅스 커피 가격에는 원두값뿐 아니라 임대료, 인건비, 인테리어비용 등도 포함돼 있다. |
그러나 요즘은 반응이 사뭇 다르다. 임대료와 인건비, 인테리어 비용은 생각하지 않느냐며 기자를 나무라는 댓글들이 달린다. 원가, 무형자본에 대한 인식이라는 대중적 각성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 작은 진전을 대한민국 경제의 위대한 도약으로 만들기 위해 혁명적인 사고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않고 있거나 평가절하했던 ‘사람값’을 제대로 주는 방향으로 의식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근래 ‘응답하라’ 시리즈는 지상파 드라마를 누르고 압도적인 브랜드파워와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지상파도 아닌 케이블채널 tvN이 거둔 쾌거다. tvN은 철저히 콘텐츠의 값을 받는 정책을 유지해왔다. 지상파를 포함한 대부분의 콘텐츠 공급자들은 IPTV에서 방송 후 1주에서 3주면 VOD를 무료로 제공했다. 하지만 tvN은 유료공급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치사하다(?)’, ‘돈밖에 모른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철저한 유료화 정책은 군소방송사에 불과했던 tvN에 안정적인 수입원을 제공해줬다. 이렇게 수년에 걸쳐 안착된 수익구조를 바탕으로 tvN은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퀄리티 높은 콘텐츠를 생산해냈고 이를 바탕으로 수익을 거둬 재투자를 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tvN의 품질 좋은 콘텐츠의 수혜자는 비단 tvN뿐일까? 아니다. 질 높은 콘텐츠를 소비하며 사회 전체의 효용이 높아졌음은 물론이고 소비활동을 통해 GDP도 증가시켰다.
포부도 당당히 ‘혁명적’이라는 말을 썼으므로 더 불편한 문제를 지적해보자. 아이폰 이전 아이팟 열풍이 불던 시절 한국인들을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성공신화가 바로 아이튠즈였다. 당시 번역서들은 1곡당 1달러로 판매하는 플랫폼인 아이튠즈를 아이팟 성공신화의 핵심으로 꼽으며 상찬했다. 하지만 1곡당 1달러라니? 월 5000원이면 ‘무제한’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 가요계에 비판적인 이들은 왜 대한민국은 죄다 퍼포먼스 중심의 아이돌밖에 없는가 한탄한다. 왜 외국처럼 컨트리가수나 록가수처럼 마이너 장르의 가수가 성공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아쉬움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1회 스트리밍으로 1원 남짓을 버는 대한민국에선 노래만 잘하는 가수로는 먹고살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그들이 먹고살 만한 값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tvN 사례와 정반대로 이해할 수 있다. 대중이 돈을 쓰지 않기 때문에 공급자는 투자는커녕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시장은 획일화, 하향평준화된다. 음원뿐 아니다. 몇만 원을 호가하는 생산성 SW에 인색한 풍토, 예술작품을 ‘종이값+물감’로 이해하는 낡은 생각까지. 원가타령은 다시 말해 ‘사람값’을 간과한 결과다.
혁명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당장 제안한다. P2P, 토렌트, 인터넷 스트리밍 사이트를 엄격히 규제하고 배포자뿐 아니라 ‘이용자’에 대한 저작권법에 근거한 처벌을 강화하자. 지금까지처럼 공급자만을 처벌하는 방법으로는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유통채널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다. 멜론, 벅스와 같은 과점적 공급자 우위로 고착화된 음원업계의 구조개선을 위해 표준약관을 도입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
‘총기가 미국인의 매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세련된 매너는 낭만적인 대중계몽만으로 이룰 수 없다. 이는 재산권에 기반을 둔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의 본령을 지키는 일이다. 즉, 지적재산권을 이류 재산권이 아니라 나의 물건, 부동산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재산권으로 인정하고 이를 훔치는 일을 ‘절도’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웹소설, 웹툰의 번성 뒤에는 레진코믹스 같은 플랫폼과 더불어 지적재산권 소송을 무자비하게 벌인 로펌들의 서슬 퍼런 칼날이 있었다.
성공한 로커가 드문 건 우리가 그들의 콘텐츠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누군가의 지출은 누군가의 소득이다. 자본주의는 모두가 근검절약, 청빈을 미덕으로 믿던 신화를 깨부수고 대중소비시대를 열었다. 외국이었다면 냈어야 할 콘텐츠 이용료를 얼마 아꼈다면, 이는 외국이었으면 콘텐츠 창작자의 수입이었을 돈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다. 수입이 존재하지 않으면 공급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투자는 유보된 소비라고 정의한다. 역으로 소비는 당장에 실행하는 투자다. 한글95를 망하게 만들었던 잔혹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소주 한 병에 3000원이 넘는 세상에서 1500원짜리 VOD가 비싸다고 하는 현실은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아닌가?
단호하게 선언하고 고쳐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공짜는 없다고.
남궁민(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2030현자타임’에서는 대학, 기업체, NGO, 스타트업 등 다양한 분야에 있는 2030 청년들의 생생하고 솔직한 목소리를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