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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근대로의 시간여행, 군산

2016.06.22(Wed) 15:18:54

   
군산은 도심 일대에 근대문화유산이 몰려 있어 천천히 걸으면서 시간여행을 즐기기에 좋다.

현실과 영화, 역사와 상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곳. 80∼90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2016년에도 여전히 생기를 간직하고, 품고 있던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과 귀로 전해지는 곳. 1980년대의 모습조차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만한 여행지가 또 있을까? 1900년대 초중반 우리가 살던 모습과 가슴 저린 역사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군산 말이다.

#작은 어촌에서 ‘신도시’로 재탄생

1899년까지만 해도 군산은 갈대 무성한 해안에 한가로이 배 몇 척 드나드는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 군산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1876년 강화도 조약 때문. 외세에 ‘강제로’ 곳곳의 항구들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조약 체결 23년 만에 군산에도 개항의 파도가 밀어닥친 것이다. 금강 하구에서 바다로 나가기 쉽다는 이유로 ‘낙점’된 군산은 그때부터 근대의 빠르고 세찬 바람을 맞게 된다.

호남의 풍부한 곡물을 빼가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거대 항구도시로 거듭나면서 한적하던 어촌에는 근대식(당시로서는 현대식)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군산 내항을 중심으로 하는 원도심은 순식간에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과 물자가 분주히 오가는 거리로 탈바꿈했다. 신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1934년에는 연간 반출량이 200만 석을 넘어, 그 허울 좋은 ‘거래’ 규모가 전국에서 첫 번째로 꼽힐 정도였다.

   
<탁류>와 군산의 현재를 비교해보자.

이를 위해 일본 제18은행과 조선은행 군산 지점이 내항 가까이 들어서고, 통관 업무를 감시 감독할 세관도 번듯하게 자리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미곡창고와 일본인 부호들의 사무실과 집이 채워졌다. 3000톤급 증기선이 정박해 쌀과 물자를 실어 나를 목적으로 세웠던 뜬다리(부잔교)들은 지금도 내항에 남아 당시를 증언한다.

일종의 선물거래소인 ‘미두장(米豆場)’도 세워지고, 투기성 곡물 거래로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통에 내항 주변은 늘 돈과 사람이 넘쳐나는 번화가가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조선인은 일본인의 농간에 넘어가거나 정보 부족으로 알거지가 되는 일이 허다했다.

군산의 이러한 모습은 1937년부터 약 7개월간 일간지에 연재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그 사실성과 현장성, 시대성이 뛰어날뿐더러 지금 군산 원도심을 거닐어도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들이 여전하다.

만약 아이들과 함께 미리 <탁류>를 읽어보고 여행을 떠난다면 그야말로 군산 근대문화유산 가이드북이자 군산 여행의 필독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도 이 고전을 만날 수 있으니, 아이와 아빠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거리를 책과 일일이 대조해보는 게 새로운 여행법이 될지 모른다.

#은행은 미술관, 쌀창고는 공연장으로 변신

군산이 근대문화유산 여행지로 인기를 얻게 된 데는 이러한 식민의 역사가 그 출발점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근대문화유산을 두고 보존이냐 철거냐 논쟁도 뜨거웠다. 결론은 보존 혹은 복원으로 이르렀다.

쇠락해 외관만 겨우 지탱하던 옛 일본 18은행과 옛 조선은행의 군산지점은 옛 건축 요소와 외관을 그대로 살리고 편의를 더해 근대미술관과 군산근대건축관으로 쓰인다. 적산 가옥을 복원해 갤러리로 활용하는가 하면, 옛 미곡창고는 쌀을 저장하던 곳이란 뜻을 그대로 담아 ‘장미공연장(藏米公演場)’이 되어 사람들을 맞이한다. 일본업체 미즈상사가 쓰던 건물은 복원되어 근대풍의 독특한 미감을 전하는 ‘미즈카페’로 변신했다.

   
1 근대건축관 내부, 2 군산 세관, 3 근대미술관, 4 근대역사박물관 내부.

옛 군산 세관 옆에 자리해 군산의 근대 문화를 집대성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으로 향하면 군산 시간 여행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국제무역항 군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군산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1층을 둘러본 뒤 2층에서 ‘1930년 9월, 군산의 거리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꾸며진 옛 군산 거리를 거닐고 상점과 살림집 등을 기웃거리며 그 시대와의 만남은 조금 더 생생해진다. 기획전시실과 기증자전시실, 어린이체험관 등도 시간의 흔적을 담은 물건과 도구, 소장품에 스토리텔링을 더해 군산의 근대 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항구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충분히 걸어갈 만한 월명동, 신흥동, 해방동, 금광동 일대에는 군산항을 중심으로 쌀과 물자 거래를 통해 큰돈을 벌던 일본인 부호들의 집과 고급 관리의 관사 등이 여전히 남아 당시를 생생히 떠올리게 한다. 보존 상태도 상당히 좋다. 신흥동의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은 <타짜>를 비롯해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의 촬영장으로 쓰였다.

히로쓰 가옥에서 머지않은 금광동에 자리한 동국사는 1909년 일본 승려에 의해 창건된 후 현재까지 제 모습을 잃지 않은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전형적인 일본 사찰의 건축 양식과 정원 조경을 볼 수 있어 이채롭다. 동국사 주변으로는 옛 일본식 가옥과 근대풍의 오랜 건물들이 개조되어 문화예술 활동가들의 공간으로 재탄생해 더욱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대웅전.

#아이들과 옛 아픔 되새겨보는 시간으로…

이렇듯 군산 도심 일대에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근대문화유산이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군산 내항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기에 여유를 두고 천천히 걸으며 다 볼 수 있다. 오히려 전형적인 도심 걷기 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아울러 이 길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이라고 알려진 이성당과,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해 익숙하고도 이색적인 내외관을 자랑하는 빈해원 등을 들른다면 이색적인 경험까지 맛볼 수 있다.

더불어, 아이들과 함께 이 옛 건물들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번듯하고 멋스럽게 지어졌는지, 역으로 조선인의 삶은 얼마나 피폐해졌는지를 되새기면 더욱 뜻깊은 여행이 될 듯싶다. 근대풍의 거리와 건물들을 이색적인 볼거리로만 대하지 않고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여보는 것. 군산 근대문화유산 여행의 ‘유일한’ 주의사항이다.

찾아가기

*자가용: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논산고속도로와 서천공주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나 군산IC로 나와 해망로를 따라 군산항 방면으로 이동한다.

*대중교통: 용산역에서 경부선을 타고 군산역으로 이동할 경우 새마을호로 3시간 10분, 무궁화호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버스는 서울 출발 기준 2시간 30분 소요.

맛집: 빈해원

문을 연 지 60년이 넘은 건물의 내외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군산의 대표 맛집 중 하나. 1층 중앙홀과 테라스처럼 난 복도를 따라 개별 룸을 따로 둔 2층의 구조는 옛 중국풍 그대로이다. 숱한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했기에,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장면을 떠올리며 반가움은 커질지 모른다. 오랜 역사와 맛, 분위기에 더해 가격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군산시 장미동 21-5, 전화 063-445-2429

   
중국풍으로 꾸며진 빈해원 내부와 짜장면.

이색 숙박지: 고우당 게스트하우스

일본식 옛 가옥의 구조를 그대로 이용해 이색적인 숙박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 내에 찻집과 편의점, 돈가스와 우동을 파는 대포형 사케 주점이 있어 특이하다. 군산시 월명동 16-6, 전화 063-443-1042, www.gowoodang.com

글·사진 남기환 여행작가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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