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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뒷북수사 “그때 제대로 했다면…”

검찰, 5년 전 남상태 비리 의혹에도 ‘정치권 인사’ 잡느라 수사 접어

2016.07.01(Fri) 14:07:16

야심차게 출범한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사법연수원 21기)의 첫 수사 타깃은 대우조선해양이었다. 과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활’이라는 기치 아래 출범한 반부패수사단은 ‘수사 명분’과 ‘성공 가능성’을 놓고 신중하게 수사 대상을 선정했다. 올 2월부터 6월 초까지, 4개월여의 준비 기간을 거친 탓에 수사 성과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하다.

   
 

감사원도 발맞춰 대우조선해양과 대주주인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대우조선해양이 수조 원대 손실을 속여 실적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한 정황이 있으며, 남상태,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무리한 투자를 결정하고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이를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임원뿐 아니라, 직원들 역시 썩을 대로 썩었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차장은 8년에 걸쳐 회사 돈 180억여 원을 빼돌렸다. 수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들과 억대의 외제차를 구입하는 등 ‘호화 생활’을 누렸다. 혈세만 8조∼9조 원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 수사를 놓고 응원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하지만 검찰은 과거 대우조선해양 수사팀의 선택이, 지금의 방만한 대우조선해양을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2009∼2010년 중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사장이 연임을 위해 정치권 등에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상황이었다. 검찰은 수사 도중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다. 대우조선해양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회사 주식을 천신일 회장의 자녀 3명이 대량 보유한 사실을 포착한 것.

검찰은 남상태 사장 대신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이자 당시 정권 실세 기업인이던 천신일 회장을 수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기업인’보다 ‘정치인’ 수사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검찰 내 성과 문화 때문이었다. 당시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의 각종 비리를 수사할 수 있음에도 남상태 사장에게 면죄부를 줬다. 지금 수사 중인 혐의들은 당시부터 비롯됐다.

남상태 사장은 러브하우스로 유명한 건축가 이창하 씨를 전무로 임명했고, 계열사 디에스온(이창하 씨 지분 67%)을 설립해 일감을 몰아줬다. 국정감사에서도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검찰은 ‘천신일만’ 잡았다. 당시 이를 결정한 특수1부 부장검사는 지금 반부패범죄수사단을 이끌고 있는 김기동 단장. 김 단장의 선택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당시 제기된 의혹은 이뿐이 아니었다. 남상태 사장이 협력업체를 통해 뒷돈을 조성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천신일 회장을 목표로 설정하면서, 내부고발자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남 사장의 회사 장악력이 더 높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 심지어 회삿돈 69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던 이창하 씨는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자마자 대우조선해양으로 복귀했다.

남상태 사장은 기다려다는 듯이 오만 선상호텔 사업 등의 책임자로 이창하 씨를 임명했고, 선상 호텔 내부 인테리어 공사 명목으로 디에스온에 수백억 원의 일감을 몰아줬다. 선상호텔 사업은 2년 만에 접어야 했고, 감사원은 오만 관광 사업으로만 13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한 차례 검찰 수사에서 살아남은 남상태 사장은 무서울 게 없었다. 대학 동창을 동원해 뒷돈을 챙겼다. 연세대 동문 정 아무개 씨가 운영하는 해운회사 등에 수십억 원의 특혜를 주고 수억 원을 받은 것. 정 씨 회사 주식 중 일부를 차명으로 소유한 사실도 최근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 2015년 9월 21일 산업은행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는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

“지금 이 모든 혈세 낭비는 2009년 검찰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전직 대우조선해양 고위 관계자의 지적이다. 그는 “2009∼2010년 당시 검찰이 남상태 사장을 구속해 처벌했으면, 대우조선해양 내부에서 경각심이 생기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며 “당시 남 사장이 무혐의 처분 직후 한 차례 더 연임(2011년)하기 위해 무리하게 회사들을 인수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손실이 발생했다. 정치적인 검찰의 수사 대상 선택 탓에 엄청난 혈세가 낭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2009년 기소됐던 대우조선해양 임원들의 비리 사건(배임 횡령 등)을 담당했던 한 판사 역시 “대우조선해양은 주인 없는 회사가 얼마만큼 방만하게 운영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본”이라며 “각자 위치에서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기고 안 챙기면 바보로 여기는 회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 차례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제 와서 검찰이 다시 수사를 하는 것은 스스로 앞선 선택이 얼마나 실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를 의식했는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이번 수사가 전 사장진에 대한 수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앞선 9년 동안(남상태, 고재호 전 사장 재임기간)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의 회계 조작 여부와 경영진 비리 의혹을 확인 중”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전에, 혈세 대신 정권 비리로 수사 목표로 설정했던 과거의 결정이 얼마나 ‘정치적’이었는지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남윤하 언론인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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