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조건부 자율협약 개시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지만 유동성 확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을 요구하고 있다. 조 회장 측에서는 더 이상의 사재출연은 없다는 입장이면서도, 한진해운의 위기 상황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쏠릴까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한진해운은 지난 5월 4일 산업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 회의를 통해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당시 한진해운은 대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포기 각서와 함께 4100억 원 규모의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구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채권단에서는 자구안으로 내놓은 유동성 외에 6000억 원가량을 더 투입해 총 1조 원가량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2년 동안 1조 2000억 원의 운영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판단한 것.
문제는 한진해운 내부에서 상표권과 해외부동산 등 자산 매각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유동성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이다. 이미 채권단에서는 신규 자금지원은 없다는 방침을 세웠다.
결국 모든 이목은 조 회장의 사재출연으로 쏠리고 있다. 자구안 제출 당시에도 조 회장의 사재출연 여부가 관심사였지만, 사재출연은 자구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채권단에서도 조 회장의 사재출연은 특별히 요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2년 전 부실해진 한진해운을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에게 넘겨받은 ‘구원투수’인 데다, 이후 대한항공 등 그룹 계열사를 통해 1조 원 상당을 쏟아 부은 노력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현재로서는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조 회장의 사재출연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CEO 조찬 간담회’에서 “한진그룹과 채권단이 한진해운 지원에 대해 잘 얘기할 것”이라며 “기업의 적극적인 구조조정 의지가 중요하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금융 지원과 제도적 지원으로도 기업을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임 위원장의 발언은 한진그룹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 회장은 여전히 사재출연이나 그룹 차원의 지원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 사재출연 여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더 이상의 자금 지원은 조 회장이나 한진그룹에도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 역시 올해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이미 931%에 달할 정도로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조 회장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유동성 확보에 실패해 법정관리 등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모든 비난의 화살은 자율협약 당시 대표이사였던 조 회장에게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며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 회장 입장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것”이라고 전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 한진해운을 처음부터 맡아서 경영하다 경영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미 어려워진 회사를 한번 살려보겠다고 ‘구원투수’로 넘겨받아 급여도 안 받고 노력했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사재출연이나 오너의 책임을 요구하니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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