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까다로운 유럽 선주들을 상대로 용선료 협상을 끝내고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현대상선은 용선료를 21% 인하함으로써 5400억 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용 절감은 곧 수익률 상승으로 이어진다. 현대상선의 협상 성공은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인하폭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그런지 <비즈한국>이 짚어봤다.
▲ 서울 종로구 현대상선 건물. 사진=최준필 기자 |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의 통계를 보면 6800TEU급 컨테이너선의 용선료는 5월 1만 3000달러(일 평균)로 지난해의 2만 2750달러보다 42%나 떨어졌다. 2012년에 2만 9857달러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아래로 내려온 셈이다. 4400TEU급 파나맥스선과 2750TEU급 준 파나맥스선의 용선료도 지난해의 반 토막인 5200달러, 6000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현대상선은 컨테이너선 운송에 주력하는 회사다.
올 들어 초대형원유운반선(VLCC)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탱커선 용선료도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컨테이너선의 용선료도 추가 하락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소비·생산이 둔화되면 에너지 소비도 줄어든다. 탱커선의 용선료 하락은 경기 침체 심화의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일반 물품을 나르는 컨테이너선 용선료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31만DWT급 탱커선의 경우 하루 용선료가 지난해 4만 8433달러에서 올해 4만 4750달러로 떨어졌다. 규모별로 15만DWT는 8.8%, 11만DWT는 2.5% 각각 하락했다. 하림이 인수한 팬오션의 경우 5월 13일 10만 7081DWT 탱커선을 2년간 빌리면서 전년 평균 대비 3000달러 낮은 2만 3000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현대상선이 고액의 용선 계약을 맺을 당시 가격은 현재 시세보다 3배가량 비쌌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운업이 한창 잘나가던 10년 전, 배를 고가에 빌리더라도 노선을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 고액 용선 계약으로 이어졌다. 당시 선주들은 용선료를 무차별적으로 올렸고 해운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가격을 수용했다.
결국 현대상선이 용선료를 깎았다고 해도 현재 시세보다 2배 이상 비싸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21% 인하가 최선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현재 용선료 협상 중인 한진해운도 30% 인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상선이 용선료를 더 깎을 여지는 없었던 걸까? 업계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유럽 선주들과의 협상 자리에서 현대상선에 불리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한다. 금융당국은 최초 용선료 30% 인하를 목표로 제시했고 현대상선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상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유럽 선주들은 뜻밖의 낮은 수치를 제시하며 벼랑 끝 전술을 시도했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용선료 인하 없이는 자금지원도 없다’를 천명한 탓이다. 유럽 선주들로선 현대상선과 한국 정부의 절박함을 아는 덕분에 협상의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정부가 스스로 협상의 카드를 공개해버린 셈이다. 이에 당초 25% 수준의 협상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대상선은 결국 21%밖에 용선료를 낮추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선사들에게 가볍게 보이면, 해운동맹 등에서도 유리한 협상을 끌어내기 어렵다”며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오히려 일을 꼬이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해운사들이 용선을 쓰게 된 것도, 정부가 해운회사의 부채비율을 의무적으로 200%를 맞출 것을 지시하면서 보유한 선박을 모두 처분한 데에서 비롯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용선료 협상 시 앞으로 발생할 비용을 현재가치로 환산해 그만큼의 주식을 선주에게 주는 방식 등 여러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었다”며 “정부는 깊은 고민 없이 행정·성과 홍보 논리에만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