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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덕일기7] 투신, 각성하다

2016.07.22(Fri) 10:38:09

‘스덕주의보’ 조인성 저그 혹은 수박바 저그

프로토스의 시대 이후엔 질레트 세대가 태어났다. 스덕 사이에서 유명한 말이 있(었)다. ‘너 질레트부터 봤냐?’ 한빛소프트배부터 시작한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첫 시기 중 하나가 ‘질레트 스타리그 2004’였다. 임요환으로 대표되는 올드 선수들이 최연성, 박성준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선수들로 갈아치워지는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시기였다.

   
진짜 쓰이는 말이다.

이 시작은 스타리그 전의 듀얼토너먼트(스타리그 진출전)에서 시작됐는데, ‘테란의 황제’ 임요환이 신인 저그인 박성준에 의해 탈락한 리그였다. 60만 임빠들은 좌절하고, ‘이번 스타리그 망했다’, ‘쟤 누구냐’ 식의 말이 스타커뮤니티에 많이 돌았다. 뼛속부터 임빠인 나는 좌절하고 ‘이번 스타리그도 보지 말까’ 하다 ‘임요환의 후계자’로 지목되던 최연성이 스타리그에 진출하자 임요환에 대한 팬심을 최연성으로 전이시켜 그를 ‘지켜봤다’.

이때 박성준이 태어났다. 아직도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1의 저그를 ‘홍진호’ 혹은 ‘이제동’ 혹은 ‘마재윤’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홍진호보다 강력하고 이제동과 마재윤보다 먼저 테란을 무찌르며 전성기를 구가한 선수가 있으니 바로 ‘박성준’이다.

흔히들 스타크래프트를 선사시대(게임아이, PKO 등)―온게임넷 초창기―질레트 시대―SO1시대―리쌍택뱅 시대―리쌍시대 등으로 나누는데, 박성준은 질레트 시대의 첨병이다. 최연성과 함께 새 시대를 이룬 게이머다. 최연성이 본좌로드를 달리며 무적의 괴물 포스를 내뿜을 때 3:2(라고 쓰고 5:0으로 읽는다. 게임 양상 자체가 박성준이 공격해서 뚫리면 이기고, 막히면 짐. 최연성은 박성준 본진도 못 찍었다)로 꺾고, 토스의 영웅이던 박정석을 결승에서 침몰시키고 우승했다.

사실 박성준은 데뷔부터 관심을 많이 받았다. 테란의 황제인 임요환을 PC방 예선에서 탈락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 임요환의 상태가 거시기하긴 했지만, 저그전 하나만큼은 항상 ‘기깔’났기 때문에 신인 저그가 임요환을 잡았단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올라와서 바로 사고를 쳤다. 전태규를 저글링만으로 관광시키고, 괴물을 꺾고, 영웅까지 찢어발긴 재앙 그 자체. ‘조진락’이라 불리던 저그들의 종합판이었다. 홍진호보다 공격적이고, 박경락보다 화려하고, 조용호보다 묵직한 저그였다. 변은종, 박태민과 함께 ‘변태준’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박성준은 앞의 둘과 ‘클라스’가 다르다.

박성준에게 토스란 한 끼 식사에 불과했다. 실제로 박성준은 은퇴 직전까지 김택용과의 토스전마저 자신 있다고 했다. 김택용은 박성준과 도재욱의 결승전에서 나온 박성준의 플레이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감탄했다. 박성준의 테란전은 기념비적이었다. 테란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일으키며 찢어발겼다.

박성준은 러커로 몸을 대고, 저글링으로 마린 메딕을 쌈싸먹는 전술을 보여줬다. 기본적으로 러커 혹은 뮤탈로 어그로를 끌되, 사방에서 저글링이 마린 메딕을 뒤덮는 모양새다. 말은 쉬운데, 컨트롤이 한 번만 훅 가면 게임이 날아가는 저그 특성상 위험 부담이 매우 크다. 실제로 조용호는 이윤열과의 파나소닉 결승전 네오비프로스트에서 저글링이 먼저 돌진해 이윤열의 골리앗에게 병력이 탈탈 털리고 GG를 치기도 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매서운 컨트롤을 보여준 박성준이다.

홍진호가 전투를 바탕으로 멀티를 이어간 반면에, 박성준은 전투로 게임을 찢었다. 한방토스, 한방테란에 이은 한방저그랄까. 타이밍러시라는 게 한두 번 당하면 상대는 막기가 쉽다. 하지만 박성준의 타이밍은 뭔가 달랐다. 전부 맥없이 쓰러졌다. 수비 하면 도가 튼 최연성마저 찢겼으니.

박성준은 로열로더였다. 처음으로 진출한 질레트 스타리그에서 결승까지 진출했다. 결승전의 상대는 박정석이었다. 최초로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펼쳐진, 임요환 없이 흥행이 가능할까라는 물음표에 응답하는 결승전이었다. 신예이자 완성형 저그로 불리던 투신 박성준이 폭풍 홍진호도 이루지 못한 저그의 우승을 이룰 수 있을까와 박정석이 토스 최초로 스타리그 2회 우승을 할 수 있을까라는 온갖 질문이 던져지던 결승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박성준의 우승을 예상했다. 종족 자체가 저그가 유리했고, 맵도 토스가 크게 좋던 맵이 없었다. 그렇게 결승전은 시작됐다.

   
수박바 패션의 로열로더.

1경기는 노스텔지어였다. 박정석은 ‘하늘의 왕자’ 스카우트를 뽑으면서 힘싸움 위주의 자신의 스타일에 변경을 가했다. 박정석은 다크템플러와 하이템플러 그리고 캐논을 이용해 수비를 하면서 멀티를 꾸준히 늘려갔고 박성준의 공격을 다 막았다. 그와 동시에 커세어-다크템플러로 박성준의 멀티를 견제했다. 그렇게 장기전으로 끌고 간 박정석은 배가 고픈 박성준의 병력들을 몰살했고 GG를 받아냈다. 그러나 박성준이 GG를 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1경기의 사투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박정석은 이어진 2, 3, 4경기에서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

   
오랜만에 나온 스카우트다.

질레트 스타리그는 기념비적인 리그였다. 임요환과 홍진호라는 카드 없이 흥행을 이뤄냈고, 최연성과 박성준이라는 카드를 발견했다. 동시에 저그의 최초 우승이 있었고 프로토스는 3연속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질레트 스타리그는 두 명의 걸출한 신인이 나왔다. 한 명은 박성준이요, 한 명은 최연성이었다.

박성준에게 4강에서 패한 최연성은 곧바로 이를 갈고 준비한다.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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