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 붐을 타고 일본에서는 ‘네코노믹스’까지 등장했다. 출처=영화 <고양이사무라이> 스틸컷. |
“개보다 고양이가 더 좋아요.”
최근 일본인들 사이에서 고양이의 인기가 뜨겁다. 고양이를 찍은 사진집이 불티나게 팔리는가 하면, 고양이에게 마음을 뺏긴 애묘인이 급증해 ‘가장 많이 키우는 반려동물’ 1위 자리도 조만간 개에서 고양이로 넘어갈 기세다.
공전의 고양이 붐이 불면서 ‘네코(고양이)노믹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네코노믹스는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빗댄 말로, 고양이 신드롬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를 지칭한다. 이와 관련, 간사이대학의 미야모토 가쓰히로 명예교수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5년 고양이경제 효과가 총 2조 3162억 엔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0조 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다.
추산 내역은 이렇다. 우선 1년간 고양이 한 마리에 드는 사료값이 평균 30만 원, 병원비와 보험료가 50만 원, 모래와 간식비 등을 합하면 총액은 110만 원가량이다. 여기에 일본 전국에서 사육되고 있는 고양이 수 987만 4000마리를 곱하면 무려 11조 원이라는 금액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고양이 관련 서적과 상품 매출액이 300억 원에 육박한다. 와카야마현의 기시역은 사람 대신 고양이를 역장으로 임명해 전국 각지에서 ‘고양이 역장’을 보러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관광객 유치에 따른 직접적 효과만 400억 원대로 추산될 정도. 더욱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고양이 카페 등이 성황을 이루고 있어 그 파급효과까지 전부 고려하면 20조 원을 훌쩍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도쿄 디즈니랜드의 경제효과가 연간 10조 원 안팎, 오사카시에 소재한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USJ)가 연간 5조 원쯤이니, 네코노믹스가 이들의 2∼4배에 달하는 셈이다. 한 마디로 ‘고양이 파워’가 대단하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고양이 붐이 일어난 이유는 뭘까. 미야모토 교수는 “고령화가 진행되고 맞벌이가 증가하는 추세 속에 산책도 필요 없고, 큰 소리로 짖지도 않는 고양이의 특성이 사회 환경과 맞아 떨어지면서 고양이 붐이 일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은 80세 이상 노인 수가 이미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개를 키우려면 산책 등 체력이 필요한데, 주인이 나이가 들수록 그만큼 부담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반면 고양이는 산책과 배변관리 등에 손이 덜 가기 때문에 혼자 사는 노인도 키우기가 쉽다. 그래서 “머잖아 가장 많이 키우는 반려동물 수가 개에서 고양이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일본 애완동물 사료협회에 따르면, 2015년 개 사육 수는 991만 7000마리, 고양이는 987만 4000마리로 각각 추산됐다. 주목할 것은 지난 5년간 통계에서 개는 계속 감소한 데 반해 고양이는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고양이를 선호하는 건 고령자들만이 아니다. <산케이신문>은 “고양이와 사는 젊은 독신남성들이 증가 중”이라고 보도했다. 교토에 사는 20대 회사원 이토 아쓰시 씨도 그 가운데 한 명. 이토 씨는 “혼자 지낼 때보다 훨씬 위안이 될뿐더러 설령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집에서 기다리는 고양이를 보면 스르륵 마음이 풀린다”고 전했다. 덧붙여 그는 “젊은 층 사이에서는 개보다 고양이를 키우는 쪽이 ‘세련된 이미지’가 강하다”면서 “특히 여자친구들이 호의적으로 바라본다”고 귀띔했다.
일본에서는 애완동물 붐이 일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에는 소형 개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당시 키우기 시작한 개들이 최근 수명을 다하면서 후속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세이난가쿠인대학의 야마네 아키히로 교수는 그 이유를 “사회적 분위기가 변한 것”에서 찾는다.
호황기 때는 정년이 보장돼 안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리 회사에 충성을 다해도 정리해고 등으로 회사를 옮겨야만 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고양이처럼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 이러한 이유로 주인에게 충성하는 개보다, 자유분방하고 쿨한 고양이의 습성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주인에게 아첨하지 않지만 가끔은 응석도 부릴 줄 아는, 그러다가도 새침하게 저 놀던 곳으로 가버리는 도도한 고양이의 모습이 현대인의 감성을 묘하게 자극하고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 80년대 유행한 폭주족 고양이(왼쪽)와 <고양이자신> 등 고양이 관련 책들. 출처=구글/코분샤 |
이 같은 고양이의 인기를 고스란히 입증하는 곳이 바로 출판계다. 2014년 일본에서 발행된 애완동물 사진집은 총 86권이었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45권이 고양이 사진집이었다. 반면 개는 19권에 그쳤다. 고양이 잡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여성주간지 <여성자신>이 만든 고양이 무크지 <네코자신>은 당초 7000∼8000부 판매를 예상했지만, 증쇄에 증쇄를 거듭하면서 약 한 달 반 만에 총 9만 2000부라는 이례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한편 조금 다른 시각으로 고양이 붐을 바라보는 전문가도 있다. 다쿠모리 아키요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인들에게 고양이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하다는 걸 반증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요컨대 “경기침체와 불확실성 등을 배경으로 ‘치유받고 싶다’는 생각이 고양이 붐으로 연결된다”는 주장이다. 확실히 과거 일본을 돌이켜보면 고양이 붐과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진 시기가 몇 번이나 겹친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일본에서는 폭주족 차림의 고양이 캐릭터, 일명 폭주족 고양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 시기는 제2차 석유파동 직후라 경제적으로 앞날이 매우 불투명한 때였다. 또 에도 막부시대 말기(19세기) 풍속화 ‘우키요에’에도 고양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메이지유신이 벌어지던 격변기였던 터라 당시 서민들의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야모토 교수는 “경기가 좋을 때는 개, 경기가 나쁘면 고양이의 사육이 늘어나는 게 통설”이라고 말했다. 수입이 늘어나면 넓은 마당이 딸린 단독 주택을 짓고 개를 기른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지면 가족 모두가 일하러 나가느라 산책 등이 필요한 개를 부양할 수 없게 된다. 종합해보자면 사회적 구조변화와 불안감, 그리고 불경기가 고양이의 인기를 상승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와는 대조적으로 당분간 네코노믹스 열풍은 지속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강윤화 외신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