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 연합뉴스는 국방부가 병력 자원 감소 추세에 대한 대책으로 전문연구요원을 포함한 병역특례요원을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을 보도했다. 현재까지 보도된 바에 따르면 국방부는 전문연구요원 선발 규모를 2018년부터 해마다 줄여 2023년에는 한 명도 뽑지 않을 계획이다.
전문연구요원제도란 일련의 심사과정을 통과한 이공학 분야의 석사 및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병무청에서 선정한 업체에서 연구하거나, 역시 병무청에서 선정된 학교의 이공학 분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는 것으로 복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이다. 전문연구요원제도는 1973년에 처음으로 실시되어 현재까지 40년 이상 유지되어왔다.
국방부가 40년 이상 유지된 전문연구요원제도를 폐지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방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라 군 규모를 52만 명으로 산정하고 병역 자원 수급과 전력증강 계획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출생률의 급격한 저하로 2022년에는 20세 남성 인구가 25만 명에 불과할 전망이며 이에 따른 병력자원의 손실이 연간 2만∼3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국방부는 이 부족한 병역자원을 전문연구요원을 포함한 전체 대체복무요원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수급할 계획인 것이다.
그렇다면 군 규모 52만 명이라는 숫자는 반드시 이뤄야 할 숫자인가. 50만∼60만의 병력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휴전 직후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1954년 한미합의의사록에 의해 국군 병력 상한은 72만으로 정해졌고, 1960년 두 차례의 한미 합의를 통해 60만 명으로 감축되었다. 이는 6·25 때처럼 조·중연합군을 상대한다는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숫자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국제정세의 변화로 이러한 시나리오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게 되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현대전에서는 병력의 절대적 숫자보다는 경제력, 외교력을 포함한 포괄적 전쟁 시나리오에서 비대칭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최첨단 무기 보유량이 더 중요해졌다. 40년간 유지되어온 ‘과학기술 연구진흥’ 정책을 한순간에 폐지하자는 주장에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이유이다.
첨단 기계를 통하여 작전에 필요한 병력숫자를 효과적으로 대체한 실례도 있다. 비무장지대의 소초(GP)를 시작으로 기타 전방으로 확산된 열영상 CCTV 설치사업이 대표적이다. 국방부는 2006년부터 전방 경계 초소를 중심으로 야간에도 적군 움직임을 감지하는 열영상 CCTV를 구축했다. 더 이상 장병이 직접 경계근무를 서지 않고도 모니터를 통한 통합 경계가 가능해졌다. 그 결과로 2014년까지 11개 부대가 해체됐다.
혹자는 전문연구요원제도는 이공계 학위를 소지한 사람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문연구요원 개개인은 군의관이나 군 법무관과 같은 대체복무와는 달리 직접적으로 국방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 개발 과정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생각이다. 일례로 현재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KF-X 사업을 보자. 하나의 최첨단 제트전투기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기술은 수만 가지가 넘는다. 날개를 설계하는 데는 항공유체역학이, GPS를 보강하는 데는 물리학이, 엔진을 설계하는 데에는 열역학이, 연료를 개발하는 데는 화학이, 고온에 견디는 내장재를 만드는 데에는 재료과학이, 제어장치를 개발하는 데는 전자공학이 필요하다. 아주 기초적인 구분만 해도 그렇다는 말이다.
따라서 현대의 첨단 무기란 몇 명의 뛰어난 개개인 소수의 연구성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의 전반적 이공학 수준이 향상될 때야만 얻을 수 있는 보상인 셈이다. 이것이 국방에 대한 1차원적 기여를 기준 삼아 전문연구요원제도를 이공계만의 특혜라고 문제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미국의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 지원 프로그램은 어떠한가. 미국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 과목의 석사 이상 소지자들의 미국 이민을 다른 이민자들보다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Ecybermission, STARBASE, SeaPerch 등은 미국 국방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시민사회 이공학 인력 향상 프로그램들이다.
미국과 같이 이미 최첨단 과학기술을 무수히 보유한 나라에서도 해외 유수 이공계 인력을 이민자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시민사회의 이공계 인력 향상을 지원하는 마당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전문연구요원 폐지는 한국의 우수한 이공계 인재를 해외로 내쫓게 될 것이다. 2011년 과학기술 정책연구원이 서울대와 KAIST, 연세대 이공계 대학원생 1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서울대 43.3%, KAIST 41.4%, 연세대 40.4% 학생들은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폐지될 경우 해외유학을 선택하겠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이 학생들이 미국 유학길에 오른 뒤 STEM 지원 이민정책을 통하여 미국 사회에 편입될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 대체복무 정책에 따라 선발되는 전문연구요원의 숫자는 연간 2500명 수준이다. 이 연구인원들이 2500명의 사병으로 복무하는 것보다 2500명의 과학기술 연구 인력으로 일하는 것이 국방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정도가 월등할 것임은 자명하다. 지금 당장만 보더라도 전문연구요원들은 KAIST에서만 매년 1400여 건(2300억 원)의 위성, 로봇, 국방, 항공 등 국가 R&D 과제와 400여 건(450억 원)의 산업체 위탁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다른 학교의 전문연구요원들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자주국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최첨단 무기의 보유 여부가 전쟁의 핵심 변수가 되는 현대전에서 자주국방이란, 병력의 절대숫자도 중요하지만 비대칭적 첨단 무기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핵심기술들을 독자적으로 보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가장 많은 국방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사업인 KF-X 사업이 난항을 겪는 근본 원인은 첫째, 독자기술로는 5세대 전투기를 만들 수 없다는 우리나라의 첨단 과학기술 수준 때문이고 둘째, 그러한 첨단 과학기술을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쉽게 넘겨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방침 때문이었다. 나는 전문연구요원 폐지로 인해 궁극적으로 우리나라가 자주국방에 이르는 길이 오히려 더 멀어지게 될 수 있음을 염려한다.
한민성 국방과학연구소 전문연구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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