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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속 ‘죄악주’만 고공행진

2016.06.02(Thu) 18:41:18

경제가 어려우면 술·담배 소비가 늘어난다. 돈벌이가 팍팍하고 경기침체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사람들은 미래를 위한 저축·투자보다는 현재의 안위를 살피고 욕구를 해결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특히나 한국처럼 40년간 고성장을 일궈오다 저성장에 접어든 나라라면 국민들의 상실감은 더욱 커 현세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나타난다. 지난 몇 년 전부터 TV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크게 성공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예체능이 아니면 신분 상승이 어렵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은 증시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한국 경제의 모멘텀 부재로 증시는 1900∼2000선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있다. ‘박스피(박스권+코스피)’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이런 흐름은 미국의 양적완화가 중단되기 시작한 2011년부터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술·담배·도박·성·게임 등 이른바 ‘죄악주(Sin stock)’는 천정을 모르고 뛰어오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그랜드코리아레저(GKL)·KT&G 등 10개 죄악주의 주가는 지난해 말 대비 9.29%(5월 31일 종가 기준) 상승했다. 지난해 말에 죄악주 100만 원어치를 샀다면 현재는 110만 원이 돼 있단 얘기다. 이 기간 코스피가 불과 1.12% 오른 것과 비교하면 두드러지는 수익률이다.

업종별로는 도박주가 8.45%(GKL 16.53%, 파라다이스 -1.98%, 강원랜드 10.8%) 올랐고, 담배주인 KT&G는 22% 뛰었다. 도박주는 중국 정부의 규제 강화로 한국의 경쟁 상대인 마카오·싱가포르의 방문객이 줄며 앞으로 반사이익을 더욱 누릴 전망이다. 담배 역시 담뱃값 인상 이후 줄었던 흡연인구가 다시 회복되는 추세라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

   
▲ 지난해 말 대비, 강원랜드 주가는 10%, KT&G는 22%나 올랐다.

주류는 6.94%(하이트진로 7.26%, 한국알콜 11.19%, 풍국주정 2,38%), 게임은 8.25%(엔씨소프트 12.91%, 컴투스 10.29%, 네오위즈게임즈 1.54%) 각각 상승했다. 주류는 세금 인상이 앞으로 관건이겠으나, 소비가 줄어도 다시 돌아오는 관성이 강하고, 게임주는 스마트폰의 확산 덕분에 앞으로 성장이 더욱 기대된다.

콘돔 생산업체인 유니더스의 경우는 연초 대비 300% 가까이 올랐다. 경기침체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지카 바이러스가 성관계를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데 모았다.

죄악주의 이런 주가 흐름은 연초부터 예상됐던 바다. KDB대우증권은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주식시장의 경직된 흐름 속에서 변동성이 강한 죄악주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또 술·담배·도박 등은 소비가 줄어도 중독성 때문에 쉽게 끊지 못하는 특성도 있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이런 흐름은 올 하반기를 넘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일반적이다. 최근 경기가 불황이란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있고, 개인의 실질소득이 감소하면서 통장보다는 지갑이 열리는 횟수가 더 잦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경제에 큰 위기는 없지만, 이렇다 할 성장동력도 없다”며 “증시 역시 박스권을 유지하면서 죄악주 등 일부 테마 종목만 선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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