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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폭주’ 에반게리온도 배터리 때문에…

2016.05.31(Tue) 15:54:11

저패니메이션과 미국의 마블코믹스, DC코믹스를 보면 메카닉 혹은 초인들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이 많다. 히어로들은 대부분 어디서 솟아나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슈퍼파워를 발휘한다. 그 에너지를 갖고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다가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외려 생뚱맞을 정도로 에너지를 클라이맥스에 다시 분출하기도 한다.

저패니메이션 중에서 최근작으로 <진격의 거인>도 여전히 그 패턴이지만, 1990년대 후반에 데뷔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다 보면 생체 메카닉을 운용하는 데 있어 ‘5분’이란 제한 시간을 두는 참신한 사고를 저질렀다. 이전의 그랜다이저, 그레이트 마징가도 이런 적이 없었고 로보트 태권브이도 마찬가지였다.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마블코믹스, DC코믹스에 나오는 슈퍼히어로나 인휴먼, 뮤턴트, 메타휴먼 대부분도 무한 에너지원을 가진 ‘상상 속의 존재’였다. 별별 희한한 에너지원을 다 갖다 대는 무한 에너지원의 캐릭터가 언제나 끝판왕이었다. 최근 개봉한 <엑스맨: 아포칼립스>에서 나오는 진의 피닉스 포스도 코믹스에서 대표적인 무한 에너지원 끝판왕이다. 그래서 에반게리온의 5분이란 제한 시간은 애니메이션의 긴박감을 높이는 동시에 이차전지 산업 강국이며 배터리 제품과 모바일 IT 천국인 일본에서나 나올 법한 아이디어이기도 했다.

이 작품이 나온 지 20년이 가까워지는 사이, 모바일 IT 산업도 눈부시게 발전하여 누구나 가방 속에 배터리로 구동되는 제품을 한두 개씩은 갖게 되었다. 20여 년 동안 배터리 구동 전자제품의 대세가 카세트, C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로 자리바꿈이 이뤄졌으며 근래 들어 가장 대표적인 건 스마트폰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런 걸 그냥 손에 늘 잡고 살다 보니 편해진 게 아니라 외려 ‘배터리 갈증’만 심해질 뿐이다. 내 주변에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아침에 가득 채워 나왔는데 점심시간 지나 얼마 안 되어 배터리가 없어요. 배터리가 녹아요. 녹아.”

나는 종종 “모든 기술과 공학의 병목은 이차전지”란 말을 한다. 반도체 기술 직접도가 18개월마다 2배씩 올라가는 동안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에너지 밀도는 12개월마다 기껏 5%가량 올라간다. 그나마 꾸준히 올라가면 다행. 이젠 이론적으로도 점점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짜내고 짜내 복합화한 전극 활물질을 계속 시도하면 에너지 밀도가 조금 느는 반면 사이클 수명이나 안전성 등 다른 성능이 뚝 떨어져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그래서 리튬이온 이차전지 쪽에선 “몇 배의 에너지 밀도가…” 하는 식으로 시작하는 보도는 십중팔구 오류이거나 사기라 봐도 될 정도이다. 에너지 밀도는 언제나 그대로였다. 소위 미래학 운운하는 사기꾼들이 자주 하는 말이 “에너지 혁명이 있을 것이고 배터리가 혁신적으로 발전하여 배터리 전기차가 대세가 될 거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진술들은 ‘성립하지 않는 전제’하에 던진 가정법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런 허황된 장밋빛 전망에 홀려 실기한 지자체도 한두 곳이 아니었다.

리튬이온 이차전지(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를 포함하여)의 의미 있는 진화는 간간이 있었지만 혁신이나 혁명은 없었다. 혁신과 혁명이 가장 어려운 분야가 에너지 쪽이며 그중 가장 힘든 게 이차전지 쪽이라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전자산업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북이’ 이차전지 때문에 배터리 갈증은 점점 심해질 뿐이다. 리튬이온 이차전지 기술은 달팽이가 기어가듯 천천히 진화할 뿐이다.

박철완 전기화학자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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