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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장의 글 “우린 세월호 선장이 아니다”

대한항공 사건 관련 온라인커뮤니티에서 화제

2016.06.02(Thu) 13:59:35

지난 27일 12시쯤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던 KE2708편이 비행기 이륙 중 왼쪽 엔진에서 연기가 나 이륙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승객들은 8시간 정도 기다려 다른 비행기 편으로 김포공항으로 입국해야 했다. 여행 혹은 출장에서 돌아오는 승객들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기장들 나름의 속사정도 있었다.

   
▲ 대한항공 홈페이지 캡처

지난 28일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한항공 사건에 관한 어느 기장님 글’이라는 게시물이 공유됐다. 몇몇 기장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공감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한 저비용항공사 기장은 “글의 내용이 틀리지 않았고, 기장으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라고 말했다. 많은 기장들이 공감한 이 글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하네다-김포공항 편이 이륙 도중 엔진에 화재가 발생했다. 신문에 실린 기사 등을 종합 유추해보면 관제타워에서 비행기 이륙 중 왼쪽 엔진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즉시 조종사에게 알렸으며, 이쯤이면 조종석 내부에서도 사이렌이 울리면서 빨간 경고등(Warning light)이 들어온다. 조종사들에게는 지금까지 비행기를 타면서 매 6개월마다 조건반사적으로 교육받은 액션을 취하게 된다.

보통 V1이라고 하는 이륙단념속도가 되기 전에 화재나 기타 엔진 고장이 발생하면, 조종사의 기장 중요한 임무는 활주로 중앙선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비행기를 빨리 세우는 것이다. 활주로 중앙선 유지가 왜 힘드냐고 묻거든 다음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면 시속 260km로 운전하다가 왼쪽 바퀴가 펑크 났다고 생각해보자. 방향유지하기 쉽지 않다. 1~2초만 이거 왜 이러지 하면 바로 풀밭으로 고꾸라진다. 조금 전 말했듯이 시속 260km면 1초에 72m를 나간다.

승객들 인터뷰를 들어보면 비행기가 쿵쿵 하면서 비행기가 정지하는 것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이 되면 기장, 부기장이 매 6개월마다 시험을 보는 진가가 나온다. 기장은 STOP이라 콜 하면서(시험 볼 때 STOP이란 말 안하면 바로 지적받고, 잘할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한다) 바로 조종간을 인수하고, Thrust lever Idle(한마디로 액셀러레이터에서 발 떼고), Speed brake lever(표현이 적절하진 않지만 사이드브레이크) 당기고, Thrust Reverser(역추진장치)를 당긴다. 갑자기 타이어 펑크가 난 시속 260킬로 달리던 차를 방향유지하면서 이 모든 걸 1초 내에 해야 한다. 그것도 입으로는 STOP이란 말도 동시에. 어찌 됐든 비행기는 위 모든 조작과 함께 Auto Brake라는 장비(자동차에 있는 ABS)의 도움으로 최대한 빨리 정지한다. 

항공기가 정지하게 되면, 조종사는 빨리 제정신을 차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떤 액션을 취할 것인지 상황을 분석해야한다. 가장 좋은 건 관제탑에 물어보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타는 B747은 조종석에 앉아서 날개 끝이 안 보인다. 물론 화재감지기가 있지만, 외부에서 보는 게 최고다.

일단 기본조치로 관제사에게 물어보기 전에 아직도 화재감지기에 불이 들어와 있다면 지상이기 때문에 소화기(엔진에 장착된 2개의 Fire extingusher)를 모두 다 터트린다. 그리고 기장은 기내 방송을 한다. 화재이기 때문에 일단 객실 승무원과 약속된 This is captain speaking, Crew at station으로 이건 아직 탈출하란 얘기는 아니다. 만약을 대비해 정위치에 있으라는 얘기고, 조종사는 안 죽고 살아 있으니까, 후속 지시를 기다리라는 거다. 

그리고 타워와 교신을 하고, 더 이상 화재의 증상이 없는지, 앰뷸런스와 소방차를 대기해달라고 교신을 한다. 아직까지 기장 임의대로 탈출 지시를 할 수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B747, A380 등은 조종석에서 날개 끝이 안 보인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벌써 소방차와 앰뷸런스는 정신없이 비행기로 달려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도 3명 중 한 명은 비행기충돌, 화재가 아니라 앰뷸런스에 치어서 사망했다. 

승객 인터뷰에선 빨리 탈출하고 싶은데, 승무원들이 머뭇거려서 불안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상황을 모르는 소리다. 따라서 조종사가 살아 있는 한 사무장 임의로 비상탈출 시키지 못하고, 승객들만큼이나 객실 사무장도 상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승객들과의 차이는 침착함이다. 승객들에게 앉아서 웃어줄 때도 그들은 사고가 나면 본인들이 해야 할 임무에 대해 30초간 리마인드를 한다. 

   
▲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고 관련 공지글.

비행기에 달려 있는 2개의 fire extinguisher bottle을 모두 터뜨렸는데도 아직까지도 불이 꺼졌다는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면 기장은 비상탈출을 지시한다. 왼쪽 엔진에 불이 났으니 오른쪽으로 대피하라고 방송한다. Evacuation, Evacuation Right side only. Right side only.

이제까지 천사의 미소를 보이던 객실승무원들이 악다구니를 지른다. 승객 인터뷰에서 봤다. 승무원들이 더 흥분해서 정신없어 보였다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다. 객실 승무원들은 그렇게 하라고 교육을 받는다. 나긋나긋하게 웃으면서 자 이쪽으로 대피해주세요. 그러면 누가 대피할까. ‘아 잠시만요 여권도 꺼내고 아까 산 핸드백도 좀 가져갈게요.’ 실제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진 일이다. 친구들이 가방이나 뾰족한 물건을 가지고 나가다 다른 사람이랑 부딪치게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슬라이딩 튜브가 찢어지면 다음 사람은 3층 높이에서 그냥 아스팔트 바닥 위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제발 기내 안내방송 할 때 영화 뭐 하는지 살펴보지 말고 1분만 투자해서 들었으면 좋겠다. 

일단 탈출하면 빨리빨리 비행기에서 멀어져서, 대피할 공간을 확보해줘야 한다. 뒤에 300명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언제 타이어의 퓨즈가 녹아서 누군가의 옆구리를 관통할지 모른다.

비 오는데 인원 파악한다고 대피한 승객들을 풀밭에 세워놓았다고 불평한 글을 봤다. 역시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다. 거의 대부분 비행기에서 화재가 나면 비행기 내부가 깜깜해질 가능성이 많다. 그중에는 기절해서 아직 탈출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결코 승객들 군기 잡으려고 줄 세워 놓은 거 아니다. 이왕 고생한 거 살아남은 거에 감사하고, 승무원들에게 조금만 더 협조했으면 한다. 승무원들도 참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도 운이 조금만 더 좋았으면, 퍼스트클래스나 비지니스석 타고 다녔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항공사 직원들은 세월호 하고는 다르다. 제발 승무원들 말 잘 들어달라. 비행기를 타고 있는 동안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시는 분들이다.

앞서의 저비용항공사 기장은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다. 그 절차라는 것은 수많은 오류를 통해 발생한 희생을 토대로 생긴 최적의 결과물이다”라며 “하지만 관련없는 사람들에겐 그냥 늑장 부리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기장들이 세월호 선장은 아니다. 조종사들은 매년 두 번씩 비정상 상황 회피 훈련을 한다. 믿고 따라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태현 기자

to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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