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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현자타임] 연애의 목적

2016.05.30(Mon) 12:05:47

   
▲ 영화 <연애의 목적> 스틸컷.

A군은 최근에 관심이 가는 여성이 있다고 했다. 연락처를 얻는 데 성공했고, 얼마간의 연락 후 저녁 식사를 함께할 수 있었으며, 이번 주말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고 했다. 보통 그쯤이라면 어떤 스타일로 입고 나가는 것이 좋을지,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이 어딘지 하는 것이 고민이겠지 하던 나에게 의외의 질문이 이어졌다. “보통 이쯤이면 손을 잡아야 해, 말아야 해?”

어느 누가 나와 일정 기간 연락 후 n회의 식사 후에 영화를 보러 갈 경우 그날의 데이트에 손을 잡게 될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 데이트할 때도 KPI를 설정하고, ROI가 안 나오는 관계는 정리해야 할까? 아버지께서 경제학 박사 논문으로 연애의 성공 변수와 변인을 공식으로 풀어내셨다면 정년을 보장받는 교수가 되어 우리 가족이 미국에 이민을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헌신하다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고 주장하던 B양은, 연애에 줄곧 실패하는 원인이 자기가 너무 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아무리 잘해줘도 남자들은 고마운 줄을 몰라. 아무래도 내가 나쁜 여자가 되어야 할 것 같아.”

“나쁜 남자가 어디 처음부터 ‘나 나쁜 남자요.’하고 너를 힘들게 하니? 은근히 잘해주는 척하니까 한창 빠져들 땐 모르다가 정신 차려보면 나쁜 남자였지 하고 깨닫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안 나빠 보이면서 나빠질 방법이 뭘까?”

디자이너들이 ‘모던하면서 빈티지하고, 심플하지만 단조롭지 않은 크리에이티브’를 요청받을 때 비슷한 기분일까. 안타깝게도 난 천재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니라 일이 밀리고 쌓여서 야근 식권을 차곡차곡 모으면 탕수육을 사 먹는 게 유일한 낙인 사원이기 때문에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없었고 다음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위로밖에 해줄 수 없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취업 4종 스펙’이라는 말을 지겹게도 들었다. ‘외국어 점수, 자격증, 공모전, 어학연수’가 그것이고, 때로는 인턴 경력이나 봉사활동 경험도 ‘스펙’으로 인정된다고 했다. 분명 그 ‘스펙’이라는 것을 요구하는 회사도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좋은 학교에서 좋은 학점을 받은 사람들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읽힐 기회를 얻고, 많은 것을 이루고 경험한 사람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 중에도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 중에도 기회를 얻은 사람이 있다. 취업 시장의 문제는 좀 더 구조적인 원인이 있긴 하지만, 분명한 건 모든 기업이 전부 같은 기준으로 사람을 뽑진 않는다는 것이다.

연애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자주 듣는다. 왜 내가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는지, 왜 내가 표현하는 만큼 느끼지 않는지. 그럴 때면 되묻곤 한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이고, 어떤 걸 원하는지 생각해봤냐고. 서운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네가 준 건 네가 원했기 때문이지 그 사람이 원한 게 아니다. 네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돌이켜보면, 나의 고민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심이 가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궁금했고,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으면 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연애가 끝나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는 친구들의 위로는 들리지도 않고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서럽게 울던 시절도 있었다. 어느 순간 지나가는 연애에 초연해질 수 있었던 건, 인연이라는 게 그렇게 스펙 쌓기 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였다. 하물며 회사도 수만 가지의 다른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데,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기준으로 결정될 리가 없었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나니, 지나온 연애보다는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마주한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고 이전보다 간절함이 없어졌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와 내 주변인의 연애, 그리고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작은 순간을 보고 배우고 느끼며 내 연애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삶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듯, 연애의 끝도 다양한 방향으로 닿아 있겠지만, 어떤 것이 실패고 성공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경험이라면, 어떠한 연애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일 테니까.

연다인(덴츠이지스 미디어플래너)

 

‘2030현자타임’에서는 대학, 기업체, NGO, 스타트업 등 다양한 분야에 있는 2030 청년들의 생생하고 솔직한 목소리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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