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 청와대는 이란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정부와 456억 달러, 한국돈 약 52조 원의 양해각서(MOU)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잭팟을 터트렸다’ ‘단군 이래 최대 성과’ 등의 보도로 정부의 성과 홍보에 보조를 맞췄다.
MOU 성과 홍보는 국무회의와 경제단체의 성명서 등을 통해 열흘 동안이나 이어졌다. 1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외교 성과확산을 위한 토론회’에선 중소기업인들이 대거 참석해 ‘정부가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MOU는 서로 앞으로 사업을 진행해보겠다는 의향서에 불과할 뿐, 아무런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 박근혜 대통령이 5월 3일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출처=청와대 |
먼저 이란이 과연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집행할 재정적 여력이 있느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란은 2006년부터 국제연합(UN)의 강한 경제 제재로 교역이 막히며 경제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또 원유 생산량도 과거 매일 300만∼400만 배럴에 달했던 것이 최근에는 100만 배럴 수준으로 줄었다. 더구나 10년 전에 비해 유가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재정 집행 능력에 의문이 든다.
한국은 이란과의 MOU 체결의 조건으로 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 등 국책 금융기관을 통해 250억 달러 규모의 융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이란의 MOU 체결 규모의 절반이 넘는 돈이다. 정부가 이런 금융 조건을 제시한 것은 이란의 재정능력이 실제 떨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키운다.
특히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국책은행이 실제 이란과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돈을 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현재 정부와 국책은행 모두 돈이 없어 한국은행의 발권력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도 “이란이 금융지원을 희망하고 있지만 (국책은행의) 증자가 필요한 부분이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불확실성을 인정했다.
여기에 이란이 당장 필요로 하는 사업은 건설과 화력 등으로, 조선·해운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국과는 생각이 다르다. 이란과의 MOU가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지 불투명한 상황인 셈이다.
MOU 홍보를 과도하게 한 점이 오히려 국내 기업의 중동 사업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중동은 화약고 같은 곳이며,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 등과는 심각한 갈등 관계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다툼 속에 ‘한국이 이란에서 큰 성과를 이뤘다’고 국제 사회에 알리는 것은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대이란 강경주의자인 무하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를 최근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최고위원회 의장에 앉혔다. 알사우드 의장은 왕위 계승서열 2위이자 국방장관과 제2부총리, 왕실 수석 경제개발 담당 이사회의장 등을 겸하고 있는 최고 실세다. 이라크 역시 테러 위험에도 많은 한국 기업이 들어가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란과의 MOU 체결은 조용히 진행했어야 했다.
여러 사람이 명당의 땅을 사려고 경쟁하는데 “내가 땅 주인과 양해각서를 맺었다. 이 땅은 이제 내 것이다”라고 떠벌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나친 홍보는 오히려 본 계약을 흐리기 마련이다. 축구에서 스트라이커가 골을 넣기 위해선 간결한 패스와 정확한 어시스트가 필요할 뿐, 지나치게 화려한 개인기는 필요 없다.
과도한 ‘친박 마케팅’이 4·13 총선에서 여당에 패배를 안겼듯, 지나친 ‘MOU 마케팅’이 어렵게 잡은 기회를 허공에 날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김서광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