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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와 보험의 만남, 어디까지 왔나

2016.05.27(Fri) 15:21:00

   
▲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 출처=삼성전자

#걸으면 보험료 할인

2020년 5월 어느 날, 회사원 정미래 씨(가명)는 오늘도 퇴근 후 걸어서 집으로 간다. 그는 3개월 전부터 대중교통 대신 두 발을 적극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버스를 타면 10분이면 가는 거리지만 매일같이 걸어서 집으로 향한다. 어느덧 걷는 것 자체가 일상이 됐다. 자연스레 살도 빠지고 체력도 좋아졌다.

정 씨가 걷는 이유는 또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에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걷는 것만으로 매달 2만 원씩 벌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매달 2만 원씩 보험료를 덜 낸다. 특정 걸음수를 채우면 하루 1000원, 한 달 최대 2만 원을 보험료에서 면제해주는 보험회사의 제도 덕분이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정 씨가 착용하는 손목 밴드형 웨어러블 기기 덕분이다. 기기에는 그의 걸음수가 정확히 수치로 나타난다. 기기에 기록된 걸음수가 목표치에 못 미쳐, 퇴근 후 동네 한 바퀴를 더 돌고 집으로 향하는 것이 이제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운동하면서 돈을 번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실제 미국 건강보험업체 ‘오스카 헬스케어’는 가입자에게 손목 밴드형 웨어러블 기기를 제공해 목표 걸음수를 달성할 때마다 하루 1달러, 월 최대 20달러의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의료보험 서비스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오스카 헬스케어는 뉴욕 및 뉴저지 의료보험 가입자의 15%를 확보하며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보험업계에서도 정보통신기술(ICT)을 도입·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는 ICT와 결합한 보험 스타트업(Start-up)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보험산업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투자 전문 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영국을 중심으로 ICT와 결합한 보험 스타트업이 이미 수백 개가 넘었으며 이들의 누적 투자금액이 2조 원 이상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집행된 투자는 200건이 넘고 현재 420여 개의 보험 전문 스타트업이 다양한 세부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개인별 행동유형 따라 보험료 차등

그렇다면 ICT와 보험의 만남은 어떤 효과를 낼까. 가장 큰 변화는 웨어러블, 스마트카 등 ICT를 통해 개인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인공지능(AI) 발전에 따라 수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지금까지 보험은 확률통계에 의존해 집단의 위험을 계산·분석했기 때문에 전체 가입자를 대상으로 동일한 보험요율을 적용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ICT를 활용해 개인들의 거대한 정보를 수집, 개개인의 이용량·행동유형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지급할 수 있게 된다. 실시간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수집해 그때그때 보험료를 다시 책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올스테이트(Allstate) 등의 보험사는 가입자의 행동유형에 따라 보험료를 책정하고 있다. 즉 보험업체가 텔레매틱스 기기를 통해 주행거리, 주행 중 평균속도 및 최고 속도, 주요 야간 운전 시간, 주행도로(국도 고속도로 등), 주행습관(급제동, 급가속) 등 운전자의 다양한 자료들을 취합해 적정 보험료를 산출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보험사들이 운전경력이나 연령 등이 비슷한 소비자들을 집단으로 묶어 보험료를 일괄 산정한 것과는 분명 다른 방식이다.

   
▲ 미국 자동차보험사 프로그레시브에서는 텔레매틱스 기기를 통해 운전자별 적정 보험료를 산출한다. 출처=프로그레시브 홈페이지

ICT와 보험의 융합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가장 활발한 쪽은 손해보험업계다. 이들은 가입자의 운전습관을 기반으로 한 ‘이용량 기반의 보험(UBI·Usage based Insurance)’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메리츠화재는 UBI 보험을 위해 KT와 제휴를 맺고 데이터 수집 및 분석 등을 진행하고 있다. KT는 ICT 기반의 차량운행기록(OBD) 장치를 통해 실시간 운행정보를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하고, 빅데이터 기술이 결집된 분석 플랫폼에서 운전자의 운행패턴을 분석한다.

메리츠화재는 KT가 분석한 운행패턴 정보를 토대로 미국, 캐나다 등 보험 선진국에서 적용 중인 최신 분석기법을 도입해 보험료를 산정한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안전운전 습관을 가진 운전자들은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고, 사고확률이 높은 주행습관을 가진 가입자들도 안전운전 습관을 기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해상도 현대차에 장착된 ‘블루링크’와 기아차의 ‘유보’ 등 텔레매틱스 시스템을 활용, 차량의 운행 정보를 수집 및 자동화해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하이카 블루링크·유보 차보험’을 이달 출시해 운영 중이다.

생명보험업계에서도 ICT 기술과 보험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웨어러블 기기를 보험과 접목한 맞춤형 보험상품들이 판매 중이다. 가입자의 운동량을 체크하고 운동량에 따라 보험료 할인 등의 보상을 제공하는 형태다.

지난해 알리안츠생명은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측정된 기록을 바탕으로 일정 금액을 환급해 주는 ‘올라잇(AllRight) 페이백’ 서비스를 선보였다. 올라잇 보험 가입고객은 글로벌 모바일 헬스케어 회사 ‘눔’과 함께 개발한 건강관리 앱을 무료로 제공받는다. 보험 가입자가 해당 앱을 이용해 월 15만 건강 마일리지를 달성하면 보험사는 가입자에게 현금 2000원을 환급해준다. 한 달간 매일 5000걸음 이상 걷고 초록색 음식을 하루에 한 번만 먹으면 건강 마일리지 15만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다.

   
▲ IoT 기반 차량정보 수집장치와 KT의 운전습관 분석 애플리케이션인 ‘k-ubicar’. 출처=KT

 

#아직 걸음마 수준, 개인정보 보호도 숙제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시장은 해외에 비해 걸음마 수준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보험 시장 규모만 따지만 아시아 톱3에 들어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ICT와 결합한 보험은 아직 국내 시장에서 생소하다”고 말했다. 이는 국내 보험사들이 ICT 기술을 연계한 새로운 서비스 도입이 느린 데다가 다양한 규제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련 스타트업도 현재는 전무한 상황이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보험산업에서 ICT 도입은 상품개발 단계부터 보험금 지급 단계까지 보험업 사업방식에 전반적인 변화를 촉발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며 “금융당국은 규제 개선을 통해 보험 산업에서 ICT 활성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ICT와 보험의 만남에서 개인정보 유출 등 보안 문제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유출될 경우 그 피해가 막대해 철저한 보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정보보호 대책은 보험과 ICT 융합에서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수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새로운 편익과 가치 창출을 위해선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을 통해 대량의 데이터가 축적되고 융합돼야 하는데 여기에서 개인정보 유출 및 남용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빅데이터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 이슈도 함께 동반하게 될 텐데 이때 개인정보 유출과 지나친 보호, 두 상황 모두 문제가 되는 규제적 딜레마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ICT 기술이 보험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과 함께 정보 유출 이슈 등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다. 보험사들은 이 같은 대응책을 고려해 ICT를 적용시키는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라며 “보험사들은 ICT 기술 접목에 있어 개인정보의 수집을 법규에 따라 목적과 활용을 분명히 해야 하고 보관 및 처리 과정에서는 유출 방지 등 철저한 관리 체계 마련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상훈 인턴기자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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