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BMW KOREA 홈페이지 |
남자에게 자동차는 일종의 패션이다. 자동차는 남자의 경제력과 취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 욕망이 투여되는 매개체, 즉 차는 남자에게 자기표현의 하나인 셈이다. 여자가 남자의 차를 보고 그를 상상하는 건 이 때문이다. 아무래도, 수입차를 탄 남자가 국산차를 타는 남자보다 능력 있어 보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남자들도 똑같이 느끼지 않나!) 그런데 수입차를 탄 남자가 모두 멋져 보이는 건 아니다.
“벤츠라고 다 같은 벤츠가 아니잖아. 나는 40대에 벤츠 C클래스를 타는 남자보다는 BMW 5시리즈, 아우디 A6를 타는 남자가 더 좋아. 그리고 BMW 3시리즈를 타는 남자보다는 SM7이나 K7을 타는 남자가 더 좋아. 허세 부리는 남자는 딱 질색이니까. 벤츠나 BMW 등 브랜드에 집착하지 않는 남자가 더 스마트해 보이거든. 같은 가격대면 더 크고 좋은 차를 타는 게 좋지 않니?”
오너드라이버인 30대 여성 A의 말이다. 마이바흐, 람보르기니, 벤틀리 정도 되는 차가 아니면 ‘수입차=부자’의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 시대. 쓸데없는 ‘차부심’ 때문에 수입차에 목매는 남자들이 오히려 우습게 보인다.
그런데 같은 벤츠 C클래스를 타는 남자라도, 차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처음으로 태워주신 차예요. 저도 성공하면 꼭 이 차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죠.”라고 말하는 남자는 어쩐지 로맨틱해 보이지 않나. 또 남자의 나이도 판단의 기준이 된다. 허세를 질색하는 A조차 “그런데, 30대 초반의 남자라면 SM7이나 K7보다 BMW 3시리즈나 아우디 A4를 선택하는 남자가 더 감각적으로 느껴져. 삶을 좀 더 즐기는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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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여자의 본심이 대체 뭐냐고. 개개인의 취향이 다르니 정답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남자의 차가 아니라 차를 탔을 때의 느낌이라는 사실이다.
차 안은 남자의 방을 연상시킨다. 청결 상태, 차 안 냄새, 뒷자리의 물건, 내부 튜닝 상태 등 차 안의 상태에서 남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가 차 안에서 신경 쓰는 것이 이것만은 아니다. “조수석 상비함을 열었을 때 구강청정제와 물티슈가 있으면 어쩐지 기분 나빠!” 30대 중반의 싱글녀인 지인은 이런 말로 나를 웃겼다. 나 역시 상대의 의도와 상관없이 한 남자의 차 속에서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스포츠카를 몰고 나온 남자와 소개팅을 했을 때였다. 때는 여름이었고, 저녁 식사 후였다. 그가 “한강이나 갈까요?”라고 제안할 때까지만 해도 은근히 첫 만남에서의 가벼운 스킨십을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차가 스포츠카였던 게 문제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의자 등받이의 각도가 문제였다. 135도쯤으로 뒤로 젖혀진 등받이! 차에 타자마자 나는 반쯤 누운 자세가 되었다. 처음 만난 남자 옆에서 누워 있는 여자가 된 것이다. 뭔가 불편했다. 등받이를 세우지 그랬냐고? 너무나 편안히 누워 있는 남자 옆에서 등받이를 90도로 세우는 여자가 되라고? 어색한 게 낫지, ‘오바’하는 여자가 될 수는 없었다. 자세가 어정쩡하다보니 대화도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달콤한 스킨십은 없었다. 그가 의자 각도를 90도로 조정했다면? 확실한 건, 그 밤의 대화는 훨씬 즐거웠을 것이다.
반면 차 밖에서는 별로였는데 차 안에서 오히려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근사한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가 그렇다. 벤츠 E클래스에서 ‘멜론 TOP 100’을 듣는 남자보다는 SM7에서 제이미 컬럼의 재즈를 듣는 남자가 더 근사해 보이는 것은 나뿐일까? 멋진 차 안에서 형편없는 음악 취향을 들키는 남자보다는 “주말에 서울재즈페스티벌에 가려고 루퍼스 웨인라이트를 공부하는 중이야”라며 CD 볼륨을 높이는 남자에게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영화 <싱 스트리트>에서도 남녀의 연애에 차보다 음악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눈에 반한 여자 ‘라피나’의 환심을 사려고 밴드를 결성한 고등학생 ‘코너’는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실망하는데, 이때 형의 조언이 기가 막힌다. ‘제네시스 필 콜린스의 음악을 듣는 남자? 너에게도 승산이 있다!’는 것.
취향이 계급을 나누는 이 시대에 진짜 신경 써야 할 것은 차가 아니라 플레이리스트인지도 모른다. 음악을 고르는 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라디오를 켜는 편이 낫다. 여자들은 원한다. 적어도 멜론 TOP 100을 듣는 남자보다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 남자를.
박훈희 칼럼니스트
‘좀 놀아본 언니’라는 필명의 섹스 칼럼니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직업은 콘텐츠 기획자이다. 매거진 <퍼스트룩> 편집장을 거쳐 현재 책뿐 아니라 영상, 오프라인 행사 등 모든 종류의 콘텐츠를 기획-제작한다. 저서로는 <어땠어, 좋았어?>가 있다.
‘왓위민원트(What women want)’에서는 여자가 원하는 남자의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