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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흑인 노예들의 처절한 삶 ‘뿌리’와 ‘만딩고’

2016.05.24(Tue) 14:40:56

요즘에야 흑인 대통령이 등장하고 인종차별도 많이 사라져 격세지감이나, 불과 150년여 전만 해도 미국에선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인간 이하의 잔혹한 대접을 한 암울한 역사가 있다. 

흑인 노예들의 처절한 삶을 다룬 1977년 작 미니시리즈 <뿌리(Roots: The Saga of an American Family)>가 40년여 만에 리메이크 돼 이달 말 국내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송된다.

1978년 3월 동양방송(TBC)을 통해 국내에 첫 전파를 탔던 <뿌리> 열풍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이런 신드롬 속에 국내에 1980년에야 지각 개봉한 1975년 작 영화 <만딩고(Mandingo)>에서 다룬 흑인 노예들의 실상은 더욱 참혹하다. 필자에게 자유와 인권의 존엄성을 돌아보게 했던 두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뿌리>(왼쪽)와 <만딩고> 포스터.

<뿌리>는 1976년 출판돼 퓰리처상을 수상한 알렉스 헤일리의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977년 1월 미국 ABC를 통해 첫 방송된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인구의 절반 이상인 1억 4000만 명을 TV 브라운관 앞으로 모은 공전의 히트작이다. 1977년 에미상에서 9개 부문을, 1978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베스트드라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원작자 알렉스 헤일리는 <뿌리>의 주인공 쿤타 킨테(Kunta Kinte)의 외가쪽 7대손이다. <뿌리>는 1750년쯤 현재 아프리카 서부 감비아 지역 주푸레 마을에서 태어난 ‘만딩고족’ 쿤타 킨테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된다. 청년으로 성장한 쿤타 킨테는 어느 날 노예사냥을 온 백인들의 손에 붙잡혀 강제로 노예선을 타게 된다. 만딩고족은 아프리카 흑인 민족 중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고 노예 시장에선 명품 노예로 취급돼 고가에 거래되는 수난을 당한 민족이다. 당시 노예무역에 불문율이 있었는데 노예상들은 아프리카 동부 케냐와 탄자니아 등에 거주하는 장신 민족인 ‘마사이족’만은 노예로 잡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너무나 용맹하고 자존심 강한 마사이족 특성상 잡히는 순간 즉각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의 사학자 하워드 진은 흑인 노예들이 노예 시장에 도착할 때까지 장기간 항해와 부족한 음식, 비위생적 환경 속에서 수없이 죽어갔다고 밝힌다. 당시 미국에서 흑인 노예선이 입항하고 노예무역이 성행한 대표적인 항구는 미국 남동부 조지아주 사바나였다. 

다시 <뿌리>로 돌아가보자. 구사일생으로 미국에 도착한 쿤타 킨테는 월러가로 팔려간다. 쿤타 킨테는 주인이 준 토비(Toby)라는 이름을 거부하다 채찍질 고문을 당하면서 결국 그 이름을 받는다. 토비는 네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지만 모두 붙잡히고 마지막엔 더 이상 탈출을 못하도록 오른쪽 발가락을 주인의 명에 의해 절단 당한다. 이후 토비는 ‘벨’이라는 흑인 노예와 결혼하면서 현실에 순응한다. 토비가 벨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키지(Kizzy)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점도 그의 현실 순응을 드러낸 단면이다. 키지는 만딩고족 언어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키지는 성장해 월러의 조카 앤의 시중을 들게 되고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지만, 동료 노예의 탈출을 도왔다는 이유로 톰 리에게 팔려가면서 부모와 생이별한다. 키지는 새 주인 톰에게 겁탈을 당하고 혼혈아 조지를 낳는다. 조지는 주인과 함께 투계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며 치킨 조지로 불리게 되지만, 한 투계 시합에서 패배하면서 주인에 의해 영국에 남게 된다. 조지 일가는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승리로 자유를 얻게 된다. 그러나 남부에서는 아직도 인종 차별이 심한 데다 미국 인종차별 집단인 큐 클럭스 클랜(KKK)단의 습격까지 당하자 테네시에 땅을 사놓은 조지는 일가를 데리고 그곳으로 향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조지의 넷째 아들 톰의 아이 중 하나인 신시아가 원작자 알렉스 헤일리의 할머니다. 알렉스 헤일리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12년이나 걸친 조사를 통해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 노예 시장에 끌려 온 쿤타 킨테(왼쪽), 키지는 묘비명에서 토비라는 글자를 지우고 쿤타 킨테를 새겨 넣는다.

필자가 <뿌리>에서 가장 명장면으로 꼽는 장면이 있다. 키지가 고인이 된 아버지 토비의 무덤을 찾아, 묘비명에 적힌 토비(Toby) 글자를 훼손하고 쿤타 킨테(Kunta Kinte)를 새겨 넣는 장면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겠다는 시도 아니겠는가. <뿌리>의 후속작으로 조지 일가가 테네시 주에 정착해 알렉스 헤일리에 이르는 <뿌리 그 다음 세대>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두 작품은 미국에서 흑인들의 입지 변천사를 그대로 드러낸다. 

<만딩고>에서는 흑인 노예들의 인권 유린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참으로 맘 편안히 보기 어려운 영화다. 무하마드 알리와의 시합에서 알리의 턱뼈를 부숴서 유명한 당시 헤비급 현역 복서 켄 노턴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에서 켄 노턴(미드)은 노예격투시합에서 승승장구를 하며 주인의 아들 해몬드(페리 킹)로부터 총애를 받는다. 격투 장면은 지금 봐도 너무나 끔찍한데 심지어 이빨로 물어뜯고 할퀴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나와 그야말로 야수들의 사투를 연상시킨다.

해몬드는 부인 블량슈(수잔 조지)가 숫처녀가 아니라고 구박한다. 해몬드는 흑인 노예 엘렌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다. 이러던 중 엘렌이 해몬드의 아이를 임신하자 블랑슈는 엘런을 채찍질하며 아이를 유산시킨다. 블랑슈는 해몬드에 대한 보복으로 미드를 불러 불륜을 저지르고 그 결과로 아이를 낳자 해몬드는 아이를 죽이고 블랑슈에게도 독을 탄 차를 마시게 해 죽게 한다. 해몬드가 미드를 물이 끓는 솥에 빠트려 죽이고 보다 못한 동료 노예가 해몬드 아버지 워렌을 총으로 쏴 죽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 노예 시장에 끌려나온 미드(왼쪽), 참혹한 라스트 씬.

<뿌리>와 <만딩고>는 당시 암울한 미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미국 백인 사회에서는 흑인 노예들을 “그저 의사가 통하는 짐승”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지적한다. 흑인 노예들은 영혼도 없어 천국에 갈 수 없으며, 애완동물인 개나 고양이만도 못하게 여겼던 게 그 시대의 현실이었다. 미국인들이 노예 문제로 북부와 분리독립을 추진하려던 남부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를 해방시켜 진정한 미합중국을 탄생시킨 에이브러햄 링컨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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