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에 관한 영화다. 여자주인공 클레멘타인은 남자주인공 조엘과의 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기억을 지운다. 클레멘타인이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조엘은, 같은 선택을 한다. 서로를 잊기 위해 기억을 지운다. 각자의 뇌에서 서로의 기억은 그렇게 지워져간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만난다. 조엘의 기억 속에서, 조엘의 기억에 의해 형상화된 클레멘타인은 조엘과 함께 망각에 저항한다. 지워지지 않기 위해 숨고, 도망간다. 망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조엘의 기억 속에서 만난 클레멘타인은 조엘의 관점에서 그려졌다. 클레멘타인을 잊으려고 하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그래서 잊기 싫어하는 조엘에게 비친 클레멘타인이다. 영화처럼 현실의 클레멘타인은 조엘 기억 속 클레멘타인과 조응했다. 둘은 다시 만난다. 결국 잊는 행위는, 잊기는커녕 반복을 불러온다.
▲ 5·18 해외아카이브전. 출처=5·18기념재단 |
2016년 5월 18일에 5·18은 지워졌다. 민주화운동이라는 다섯 글자로 묘사하기엔 너무나 슬프고 비참한 피들이 얽혔다. 시민들이, 시민의 자유를 위해 스스로를 바친 운동이다. 하지만 5·18은 자유를 말한다는 집단과 공영방송 이사가 모인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운동’ 따위로 묘사된다. 시민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운동이, 자유를 주창하는 사람들에게 부정당한다. 보수정권과 그에 찬동하는 수구보수세력은 그렇게 5·18을 잊으려 한다. 전두환 정권이 시행한 서울재개발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따위의 슬로건이 붙은 88올림픽에서 빈민들을 소외시켰다. 공간에서의 소외는 곧 ‘그곳에 그 사람들이 있었다’는 문장 하나를, 사실을 지운다. 그렇게 그들은 잊혔다.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도시 빈민의 이야기고, 시민의 이야기다. 여기 존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5월 17일 새벽 1시, 한 여성이 살해됐다. 애인과 모텔에 있거나, 유튜브로 좋아하는 BJ의 영상을 보거나, 아프리카에서 게임을 보면서 희희덕거리는 그 시각에 한 여성이 그곳에 있는 여자라는 이유로 죽었다. 자신의 존재적 특징이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데에 쓰였다. 몇몇은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로 해석되는 이 행위를 단순히 ‘묻지 마 살인’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 행위는 월북한 작가가 노래의 가사를 썼다는 이유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운동으로 묘사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묻지 마’ 식으로 범죄를 저지르긴 했으나, 그 이유가 ‘여성’임을 감안하면 이는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다.
5·18이나, 강남역 사건이나 다신 일어나선 안 된다. 5·18을 부정하는 이들이 비판받아야 마땅한 이유는, 저렇게 망각하고 오독하는 행위가 결국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라고 명명하는 행위가 본질을 흐린다고 하는 주장 역시 같은 이유로 문제적이다. 세월호를 단순 해상사고로 치부하는 일이 옳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 강남역 출구에 붙은 수많은 쪽지들. |
세월호의 교훈은 사건의 전후에 있다. 침몰한 사실 이전에 있던 정부의 안전불감증과, 침몰 이후 보여준 정부의 무능이 세월호의 핵심이다. 해상사고로 일컫는 행위는 지극히 사건의 한 ‘점’에만 집중한다. 세상은 점보단 선과 면으로 해석해야 한다. 행위에 대한 지극히 기계적인 해석이나 기존 권력에 의한 일방적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그 사회는 결국 그 사건의 본질을 망각한다. 본질이 잊힌 사건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없다. 5·18이 남긴 시민의 자유, 강남역사건이 남긴 젠더폭력을 잊지 않으려면 사건을 축소, 은폐해선 안 된다.
인간은 배운다. 학습한다. 현상을 보고 배우고, 많은 현상에서 공통의 특징을 꺼내 정의 내린다. 도구를 만드는 과정도 비슷하다. 배우는 행위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행위다. 망각은, 그러니까 보기 싫다고 외면하거나 잊으려고 노력하는 일은 인간의 본질을 거스르는 일이다. 망각에서, 외면에서는 어떤 발전도 진보도 없다.
글은 본질적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욕심을 발현하는 도구다. 하지만, 글이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는 아무도 보장 못한다. 오히려 글이 의미 없는 시기다. 페이스북 시답잖은 가계정의 태그게시물이, 유명 기자의 글보다 많이 공유되는 세상이다.
그나마 글이 이 세상에 의미가 있을 때는, 사건을 해석하고 이를 잊지 않을 때다. 그제, 그러니까 5월 18일에는 5·18과 강남역 사건이 인터넷과 사회에 넘쳐흘렀다. 사건·사고로부터 배우지 않는 일은 범죄다. 망각은 그 범죄의 동조자다.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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