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량진 명물’ 컵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의미하는 ‘공시생’. 단군 이래 최대 취업난이라는 지금, 공시생은 끊임없이 늘고 있다. 지난 1월 모집한 9급 공무원 시험에 역대 최다인 22만 2650명이 지원했을 정도다. 전체 인원의 90% 이상, 20만 명이 넘는 인원이 20∼30대. 이들 중 상당수는 ‘공시의 메카’라고 불리는 서울 노량진에서 미래를 위해 책장을 넘기고 있다.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줄여가며 공부에 열중하는 공시생들이지만, 혈기왕성한 청년들인 만큼 매일 매시간을 공부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 그만큼 독특한 놀이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그 현장을 가봤다.
노량진은 고시텔, 고시식당, 독서실 등 그들만을 위한 문화·산업이 발달해 독특한 지역색을 띠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시생들의 편의를 돕는 복사·인쇄 전문점, 그들의 얇은 지갑을 겨냥한 저렴한 가격의 분식집, 마트 등이 모여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기에’ 노량진에는 점점 더 많은 공시생들이 몰리고 있다.
이처럼 노량진은 공부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듯 보이지만 ‘가장 놀기 좋은 곳’이라는 이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독서실 지하에는 PC방이 있고 분식집 옆에는 오락실이 있는 등 공부를 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 ‘가까이 해야 할 시설’과 ‘멀리 해야 할 시설’이 혼재돼 있다.
먼저 성인 남성들의 놀이 문화에 당구가 빠질 수 없다. 특히나 노량진 공시생에게 당구는 더욱 특별한 놀이다. 공시생은 아니었지만 방송인 정준하가 “노량진에서 재수 생활을 할 때 1년 반 만에 500을 치게 됐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량진과 당구는 전통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노량진 공시생인 고향 친구를 여럿 두고 있는 지방 출신 직장인 김 아무개 씨(29)는 “공부를 위해 노량진에 간 친구들이 당구만 늘었다. 노량진에 가기 전에는 당구를 치지 않던 친구들도 실력자가 돼서 돌아왔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공부가 힘들다보니 전에 흥미가 없던 일에도 열정이 생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노량진에는 길거리 어디서든지 흔하게 볼 수 있는 편의점만큼이나 당구장도 많이 있다. 그런데 점포 수가 많다는 것 외에도 노량진 당구장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포인트는 게임비를 받고 음료수 등을 서빙하는 아르바이트생에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세 곳의 당구장 중 두 곳은 키 크고 늘씬한 여성들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몸에 달라붙는 짧은 치마와 블라우스를 유니폼으로 입고 친절한 미소로 손님을 맞고 있었다.
▲ 플스방 입구에 있는 사진 촬영 금지 경고문. |
비디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플스방’ 또한 이와 유사한 전략으로 공시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플스방에서는 천장 곳곳에 달린 대형 모니터에서 인기 걸그룹들의 무대영상인 ‘직캠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일반 방송에 비해 걸그룹 멤버 한 명에게 더욱 근접해서 촬영한 직캠 영상의 특성상 혈기왕성한 남성 공시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보였다.
노량진 플스방의 또 한 가지 특이점은 입구에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업소 아르바이트생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세히는 모른다”며 “평일 저녁이나 주말엔 다소 짧은 의상을 입은 여성이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경고문을 붙여 놓은 것 같다”고 답했다. 이 플스방은 다소 자극적인 의상인 가터벨트까지 착용한 여성이 일을 한다는 방문 후기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김상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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