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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운업 위기와 오너 리스크

한진 최은영, 현대 현정은 등 경영난 직간접적 원인 제공

2016.05.19(Thu) 11:02:11

“현장에 안 계시니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경제를 생각한다면 나라님이 선처해주시겠죠.”

기업 오너가 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힐 경우 기업 관계자들이 언론·관료를 만나 흔히 제시하는 논리다. 기업의 수장이 없으니 계약과 투자, 신규 수주 등 모든 사업의 ‘결재권’이 동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기업의 모든 결정권은 오너가 쥐고 있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재벌기업에서 오너가 자리를 비우면, 이사회든 월급쟁이 최고경영자(CEO)든, 오너의 자녀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결정은 오너만이 내릴 수 있으며, 그 결정만이 옳다. 이런 조직 운영은 주주 자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재벌 위주의 한국 경제에서는 현실이고 뿌리 뽑기 어려운 관행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지는가. 회사가 온전할 때는 막강한 권력을 누리지만, 정작 회사가 어려워지면 세월호의 선장처럼 가장 먼저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경영 실패의 책임은 국민과 정부, 직원들에게 돌린다. “자금줄이 막혔습니다. 정부와 채권단이 나서서 자금을 지원해주십시오. 인건비 감축 등 구조조정 노력을 단행하겠습니다”라고.

구조조정은 대량 실업, 나아가 지역경제 파탄으로까지 이어진다. 요즘 구조조정 이슈로 뜨거운 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조선업 3사와 현대상선·한진해운 대형 해운회사는 공통적으로 이런 CEO 리스크를 안고 있으며, 경영난의 직간접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최은영 유수로지스틱스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왼쪽부터).

일례로 최은영 유수로지스틱스 회장은 남편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과 사별 후 2008년부터 7년간 한진해운을 이끌었다. 한진해운은 2008년 매출 9조 3558억 원, 당기순이익 3214억 원을 올린 회사였다. 그러나 최 회장 취임 이후 실적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2011∼2012년에는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도 있겠으나, 사업포트폴리오 조정을 못한 전형적인 경영 실패의 결과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최은영 회장은 한진해운 본사를 보유한 건물주로서 회사로부터 거액의 사무실 임대료를 받는가 하면, 2013∼2014년 퇴직금 등 보수로 97억 원을 챙겼다. 이 기간 한진해운은 40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 특히 자율협약 체결 정보를 미리 알고 한진해운 지분을 매각했다는 의혹은 법적 책임은 피할 수 있어도 사회적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대상선도 마찬가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매제인 변 아무개 씨가 지분을 보유한 두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며,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 등 4개 회사에 과징금 12억 8500만 원을 부과했다. 자율협약과 용선료 협상 문제로 한창 시끄러운 시기에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여론의 냉소만 불러일으킨다. 또 현 회장이 그동안 쌓아온 책임경영의 이미지도 상당 부분 깎아 먹었다.

조선업이라고 상황이 다를 리 없다. 세계 최대의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9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침체기에 빠졌다. 적자 규모도 조 단위다. 올 1분기 반짝 흑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의 호실적 덕분일 뿐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은 지난 10년간 3000억 원 이상의 배당을 챙겼다. 채권단과 노조는 정 이사장에게 구조조정에 사재를 출연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 회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비전 없는 경영으로 망가진 사례다. 올해 들어 단 한 건의 수주도 기록하지 못한 삼성중공업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구도에 묶여 현재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회사의 몸집을 키웠다간 자칫 이재용 부회장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 삼성의 경영 승계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진 삼성중공업은 회생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우조선의 경우 주인인 산업은행이 올바른 경영을 통해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줘야 했다. 그러나 산업은행 관계자들은 대우조선을 퇴임 후 자리를 보장해줄 ‘일자리 곳간’ 정도로 생각했다. 새로운 사업과 비전은 없었고, 채권관리 업무만 수행했다. 노조는 경영전략 마련과 요구했지만, 산업은행이 꽂은 CEO들은 현실에 안주하며 산은의 눈치 보기만 급급했다.

조타수 없는 배는 항로를 이탈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구조조정 기업들은 CEO 리스크를 만나 해류를 따라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비즈한국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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