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미친 고딩’ 이윤열이 본좌에 올랐다. 그렇게 스타판은 멸망했다...
가 아니라, 이윤열의 천하는 그리 길지 않았다. 파나소닉 스타리그에서 미친 괴물의 포스를 뿜어낸 이윤열이었지만, 신흥 강자들의 기세를 꺾진 못했다. 신흥 강자들의 데뷔무대는 올림푸스 스타리그였다.
▲ CJ엔투스 소속 서지훈 |
스타리그에는 고유명사가 있다. 바로 ‘DSL’. 어원은 Death + Star League다. 스타리그에서 ‘죽음의 조’를 뜻하는 단어다. 2011년 ABC마트 MSL(MBC에 기원하지만, 원조는 올림푸스 스타리그다. 올림푸스 스타리그 A조는 그야말로 ‘죽음의 조’였기 때문이다).
이윤열은 ‘우승자 징크스’를 극복하기 위해 자진해서 죽음의 조를 만들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듯이, 우승자 징크스를 뚫기 위해 죽음의 조를 만들었다. 언젠가 극복해야 할 산인 임요환을 지목했다. 임요환은 테란킬러인 이재훈을, 이재훈은 박경락을 지목했다. 이윤열의 선택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역대급 죽음의 조를 만든 셈이다. 그리고 그는 장렬하게 죽음의 조에서 전사했다(…).
이윤열은 명실상부 당시 최고의 선수였다. 임요환 역시 비록 전성기급 기량은 아니었으나 이윤열과 함께 테란의 투톱이었다. 이재훈은 테란 하나는 손쉽게 발라먹는, 테란을 순살치킨으로 만들어버리는 테란전 킬러였다. 박경락은 ‘공공의 적’이란 별명을 가진 선수였다. 역상성 종족인 테란에 강했고, 상성에서 유리한 프로토스전도 잘했기 때문이다. ‘경락 마사지’라는 별명도 있었다.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들어오는 드랍, 멈추지 않는 공격, 테란과 프로토스를 가리지 않고 씹어 먹는 바람에 생긴 별명이다.
▲ MSL 경기 중인 서지훈. 방송화면 캡처. |
앞에서 말했다시피 뚜껑을 열어보니 이윤열은 이 죽음의 조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1승 1패인 상태에서 만난 박경락과의 단두대 매치에서 벼가 베어졌다. 반대쪽 단두대 매치인 임요환과 이재훈의 대결에선 지금까지 회자되는 ‘MC용준’의 그 유명한 “일부는 시즈모드, 일부는 퉁퉁퉁퉁” 장면이 나왔다.
박정석과의 결승전 이후에도 토막 기질을 고치지 못한 임요환과 게임은 못해도 테란은 잘 잡는 귀신이던 이재훈의 경기는 임요환의 ‘바카닉(바이오닉+메카닉)’으로 승부가 났다. 토스 잡는 괴물이던 이윤열마저 실신시킨 이재훈이라 토막인 임요환이 이길 가능성은 도저히 없어보였다. 마치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구도가 생길 확률과 비슷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장기전이 되면 불리할 것이라고 예상한 임요환은 본인의 승부수인 ‘전략’을 들고 나왔다. 마린과 메딕 그리고 탱크로 타이밍 러쉬를 했고, 이재훈은 패배했다.
전용준 캐스터가 MC로 전직해 랩을 하는 동안 다른 조에서는 3대 테란으로 거론되는 ‘퍼펙트 테란’ 서지훈이 전승으로 8강에 진출했다. 사실 완벽한 운영으로 ‘퍼펙트 테란’이란 별명을 얻은 것 같지만, 서지훈의 완벽한 운영은 ‘네오 비프로스트’ 한정이었다. 이전 리그인 파나소닉 스타리그에서도 비프로스트에서 유독 강한 모습을 보이며 3대 테란의 새싹다운 면모를 보인 바 있다.
사실 파나소닉 스타리그부터 ‘서지훈이 3대 테란이냐 아니냐’라는 논쟁은 많았지만, 그건 그야말로 논쟁이었고 본격적인 즉위식은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 있었다. 더군다나 그 즉위식이 기존의 최강 임요환과 홍진호를 꺾었기에 그야말로 ‘노다웃’이었다.
▲ 서지훈이 우승한 올림푸스 스타리그. 방송화면 캡처. |
4강에서 한쪽은 임요환과 서지훈이, 반대쪽에선 홍진호와 박경락이 맞붙었다. 많은 팬들의 기대는 결승전이 ‘임진록(임요환과 홍진호의 라이벌대전)’이 될 것인가에 맞춰졌다. 그런 기대와 다르게 이 스타리그는 박경락의 3연 4강의 시작, 서지훈의 왕좌 등극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물론 그 후폭풍은 비교할 게 못되지만 올림푸스 스타리그는 김택용의 2007년 3·3 혁명이 있었던 곰TV MSL 시즌 1과 닮았다고 본다. 당대 최고의 테란으로 불리던 임요환을 가차 없이 3: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한 서지훈과 당대 최고의 토스던 강민을 3:0으로 꺾은 김택용을 닮았고, 당대 최고의 저그던 홍진호와 마주작 역시 닮았다.
어쨌거나 임요환을 3:0으로 셧아웃한 서지훈은 이후로도 유독 티원(SK텔레콤 T1) 테란(임요환-최연성)에게 강한 모습을 보였다. 이윤열에게는 빌빌댔지만 임요환과 최연성만 만나면 진짜 ‘가두고 팼다’.
▲ 전설의 장면 |
서지훈이라는 신성을 확인하게 된 올림푸스 스타리그. 2002 네이트 스타리그부터 2003 올림푸스 스타리그까지 프로토스는 그저 거들 뿐, 결승은 테란과 저그가 다 해먹었다. 전국의 100만 토스들이여 서러워 말라. 이제 토스의 시대가 열리니….
서지훈
1. 정석지수 별 5개: 같은 곳에 건물을 짓고 맨날 같은 빌드를 쓰는 수준. 최연성 말로는 “너무 단단해서 심리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2. 효도지수 별 5개: 결승전에서 울면서 “엄마, 사랑해요”라고 하는 수준. 이 글을 보는 우리들은 평소에도 사랑한다고 말 안하는데!
3. 꽃미모 별 5개: 팬미팅에서 여장까지 했다
4. 야동지수 별 무한개: 서지훈의 팀숙소에선 “서지훈 DDR 안하면 3회 우승!”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DDR이 무엇인지는 독자에게 맡기겠다.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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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1을 좋아하는 흔한 20대. 브런치 @jonnaalive 운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