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 암이 나았습니다.”(아이디 maan****).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이 영화 보고 눈이 떠졌어요.”(아이디 then****).
어느 영화들에 대한 평일까. 벌써 눈치 챈 독자도 있겠지만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며 컬트적 인기를 누리는 <클레멘타인(2004)>과 <주글래 살래(2003)> 얘기다. 두 영화 모두 김두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김 감독은 남기남 감독(<영구와 땡칠이> 등)과 함께 ‘한국의 에드 우드’로 일컬어진다.
▲ 영화 <클레멘타인>(왼쪽)과 <주글래 살래> 포스터. |
필자는 3년 전쯤 인터넷을 통해서 <클레멘타인>을 봤다. 오로지 평점이 높다는 이유로 선택했다. 이달 8일 기준 네이버에서 <클레멘타인> 평점은 10점 만점에 9.29점. 무려 1만 5700여 명의 네티즌들이 평점 주기에 참가했다. 네이버에서 개별 영화 평점 응답자가 300명 이상인 15만여 개에 달하는 영화 중 이 영화는 당당히 평점 높은 순위로 69위에 랭크돼 있다. 개봉 12년이 지나도록 평점이 계속 상승중인 매우 드문 영화로 매일 10점을 꽉 채운 추천 일색 평점이 올라오는 등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수년 내 톱10 내지 대망의 1위에 등극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러한 네티즌들의 유희는 다음으로 옮겨지고 있다. 다음에서 이 영화 평점은 8일 현재 8.82로 조만간 9점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흥행 성적은 어땠을까.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이 영화 최종 관객 수는 6만 7000여 명에 그쳤다. 주인공 김승현 역을 맡은 이동준은 2014년 11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브래드 피트 주연 흥행작 <트로이>와 개봉일(2004년 5월 21일)이 같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연 그 이유뿐일까.
영화를 본 후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는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태권도 선수 김승현이 부정 판정에 연루돼 은퇴 후 불법 격투기를 하더니 갑자기 경찰이 된다. 그러더니 과잉 수사 문제로 조직에 들어가고 두목에 충성을 다하면서 다시 격투기에 나선다. 영화 초반부는 승현의 애인 민서(김혜리 분)가 승현과 사이에 딸 사랑을 낳고 죽은 것으로 처리된 것처럼 보이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민서는 세월이 흘러 열혈 검사가 돼 있고 다른 동료 검사(임호 분)와 러브라인도 형성돼 있다. 민서는 사랑이를 두고 승현과 양육권 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조직으로부터 잭 밀러(스티븐 시걸 분)와 대결에서 지라는 명령을 승현이 거부하자 조직은 사랑이를 미국으로 납치한다. 결국 승현은 잭 밀러와 대결을 하면서 시종일관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쓰러지기 연속이다. 사랑이가 링 철창을 붙잡고 한국 영화 최고의 명대사(?)로 꼽히는 “아빠 일어나! 아빠 빨리 일어나!”라고 절규한다. 승현은 갑자기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면서 뒤돌려차기 한 방에 잭 밀러를 제압한다. 승현은 사랑이와 민서를 되찾는다.
이보다 훨씬 많은 사건들이 상영시간 100분짜리 영화에 몽땅 담겨 있다. 20부작 드라마에서 다룰 양이다. 시종일관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상황을 설명하는 듯한 주인공 승현의 내레이션과, 개그코드로 보이지만 극 전개와 전혀 무관한 남포동, 황기순, 김보성 등 수많은 카메오들이 툭하면 나와 몰입을 심하게 방해한다.
영화에 쓰인 음악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음악 거장 <글래디에이터>, <다크나이트>의 ‘한스 짐머’나 <스타워즈>, <슈퍼맨>의 ‘존 윌리엄스’를 연상시킨다. 다만 장면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소 싸움’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잔잔한 발라드이니 더 말할 필요 있겠는가.
▲ <클레멘타인>은 네이버 영화 평점 랭킹 69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
주인공 이름이 ‘김승현’ 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년 앞서 개봉(2003년 3월 7일)한 김두영 감독의 또 다른 작품 <주글래 살래>의 주인공 이소룡 역을 맡았던 배우가 당시 청춘스타 김승현이었다. <주글래 살래> 흥행 참패와 숨겨둔 딸을 공개해 큰 타격을 받은 김승현에 대한 김두영 감독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액션 스타 스티븐 시걸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그의 출연 시간은 10분 안팎으로 대사는 몇 마디도 안 된다. 그는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나오는데 출연료로 100만 달러(한화 12억 원) 이상을 받아갔다고 한다. 스티븐 시걸을 쓰지 않는 대신 그 비용을 스토리와 구성 내실화, 제작에 공을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클레멘타인>은 당시 국내영화로는 블록버스터급인 52억 원의 제작비(마케팅비 포함)를 들였지만 개봉 후 회수된 돈은 단 2억 원에 불과했다. 이동준은 이 영화에 아낌없이 투자했고 한동안 말도 못할 고생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전 재산 30억 원 외에도 10억 원을 더 빌려서 투자했다고 했다. 제작비의 80% 가까이를 부담한 셈이다. 그는 흥행 참패로 재산을 탕진하고 10억 원의 채무까지 생겨 모든 방송 활동을 접고 급전 마련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몇 년 동안 밤무대를 전전했다고 했다. 영화 대사 “아빠 일어나!”처럼 그는 결국 빚을 다 갚고 재기했다.
밤무대 출연 당시 이동준이 ‘똥꼬쇼’에 출연한다는 루머도 돌았다. 이동준이 <라디오스타>에서 해명하기를 그가 출연 전 다른 밤무대 배우가 했던 쇼인데 현수막을 재활용한답시고 똥꼬쇼 부분을 지우지 않고 한쪽에 자신 사진을 붙인 것이라고 했다.
필자의 지인은 <클레멘타인>을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하고 있다. 영화를 봤냐고 물었더니 아직 안 봤다고 했다. “나중에 암 걸릴 때를 대비해 저장해두고 있다”고.
이제 <주글래 살래> 얘기를 해보자. 이 영화를 필자가 본 시기는 2004년 초다. 늦은 나이까지 고시 준비를 하는 친한 후배들을 데리고 비디오방에 갔다. 후배들의 스트레스도 풀어줄 겸 화끈한 액션 코미디라는 비디오방 주인 말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후배들은 영화 보는 중간중간 도무지 몰입이 안 된다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거나 심지어 담배를 피러 나갔다. 후배들의 한결같은 평은 “영화를 보고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였다.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는 중국집 배달부 이소룡(김승현 분)이 전설의 액션 스타 이소룡 영혼이 빙의돼 연변처녀 장옥란(곽진영 분)과 철거민들을 구해내고 조폭 개기름(박남현 분)과 소대가리(조상구 분)를 응징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일관 낯 뜨거운 장면들과 대사들로 점철돼 있다. 개봉 전 제한상영가를 받기도 한 이 영화의 코드는 엽기와 하드코어다. 중국집 사장이 여성 알몸에 밀가루를 뿌리고 반죽을 만들어 먹는다든지, 개기름이 여성들을 옥상에 집합시켜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가슴이 작다며 변기 뚫는 기구를 여성 가슴에 대고 잡아당긴다든지, 여성이 화장실을 못가자 주인공 소룡이 준 컵에 소피를 보는 등등. 더 심한 장면들도 극장개봉작인 이 영화에 고스란히 나온다. 도대체 심의 과정에서 삭제된 부분들이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궁금할 지경이다.
이 영화는 구타와 폭행 장면에서 대역을 쓰지도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개기름이 소룡을 돼지고기를 들고 구타하는 장면이 있는데 진짜 세게 때리고 돼지 내장을 집어 던지기까지 한다. 개기름이 옥란을 흙탕물 웅덩이에 첨벙 첨벙 빨래하듯 담그는 장면도 있다. 남녀 주인공을 맡은 김승현과 곽진영은 이런 장면들을 대역 없이 그대로 소화해 내는 투혼을 보인다.
▲ 주글래 살래 스틸 컷. 개기름(박남현 분)이 돼지고기를 들고 이소룡(김승현 분)을 구타하고 있다(사진 왼쪽). 개기름이 장옥란(곽진영 분)을 흙탕물 웅덩이에 첨벙첨벙 담그고 있다. |
촬영도 엉성하다. 분명히 같은 상황임에도 검은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던 개기름이 갑자기 다음 장면에서는 화려한 와이셔츠를 입고 나온다. 옷 갈아입는데 1초도 안걸리나. 여자 출연진이 헤어스타일만 바꾸어 1인 2역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NG장면도 고스란히 나오는데 영화 촬영진이 내려가라고 손짓하자 엑스트라가 이를 보고 길을 내려가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개기름 역을 맡은 박남현은 김승현 대역을 맡아 조폭들을 무찌르는 장면까지 찍었다. 악역으로 출연하면서 주인공 스턴트 대역까지 맡는 한국 영화사상 전무후무한 획을 그은 셈이다. 이런 상황이니 영화소재로 쓰인 재개발, 달동네 철거 문제와 남북통일 같은 정치·사회적 문제들이 제대로 보일 턱이 없다.
결말도 파격적이다. 소룡이 개기름을 무찌르고 이소룡 영혼이 빠져나가면서 복면을 내던지고 공중 발차기를 시도하면서 “소대가리도 골로 가다”는 자막이 뜨는 게 끝이다. 에필로그로 피자집 주방장 역의 개그맨 김용이 등장해 껄쭉한 욕설을 하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주글래 살래>는 <클레멘타인>처럼 네이버 영화 평점은 높지 않다. 8일 현재 5.36에 그치지만 <클레멘타인> 김두영 감독 작품으로 부각되면서 최근 2~3년새 10점 만점을 주는 네티즌들이 쇄도하고 있다.
동명의 만화도 있다. 총 6권으로 구성된 만화 <주글래 살래>는 김두영 감독이 글을 쓰고 장 아무개 화백이 작화를 맡았다. 영화와 만화를 모두 본 사람에 따르면, 만화는 영화에 비해 상당히 개연성 있게 진행되어 영화의 뜬금없는 장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단다.
김두영 감독의 컬트적 인기는 그가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2011년 미개봉작 <9시 뉴스>에서도 드러난다. 이 영화는 미개봉 상태임에도 8일 현재 네이버 평점이 무려 9.69다. 총 213명의 네티즌들이 평점 주기에 참가했는데 대부분 김두영 감독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10점을 주고 있다. 다만, 아직 참여인원이 300명을 넘지 않고 개봉하지 않은 상태임에 따라 네이버 영화 평점 순위엔 이름을 올리지 못한 상태다.
<클레멘타인>과 <주글래 살래>처럼 ‘괴작’으로 회자되는 영화가 적지 않다. <납자루 떼(1986)>, <복수혈전(1992)>,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긴급조치 19호(2002)>, <낭만자객(2003)>, <다세포 소녀(2006)>. <맨 데이트(2008)>…. 틈나는 대로 이런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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