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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한국 인터넷 대중화의 총아 ‘노랑나비 이승희’

2016.04.29(Fri) 09:17:32

   
1997년 당시 이승희 모습(출처=비즈한국DB).

“담배 한 대 피고 올까. 그러면 사진 받을 수 있겠지.”, “그러자. 전화비 많이 나오겠다." 1997년 당시 청장년 시절을 보낸 남성이라면 이러한 대화를 주고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 보급 초기, 전화 모뎀을 활용한 초저속(?)에도 뭇남성들의 눈을 충혈시킨 것은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나는 섹시한 여성들의 알몸이었다. 그 중심에 ‘노랑나비’ 이승희가 있었다. 이승희는 20여 년 전 그 시절을 이해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콘이다.  

이승희는 당시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을 한국에 대중화시킨 총아였다. 세운상가나 청계천 등에서 불법 판매되던 ‘빨간 잡지’를 컴퓨터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남성들은 열광했다.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유니텔 등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서서히 바뀌던 시절 등장한 이승희는 남성들에게 컴퓨터에 ‘sung hi lee’라는 검색어를 치게 만들었다.

팬티엄급도 아닌 486, 586 컴퓨터에서, 사진 한 장 다운로드 받는 데 5분 이상 걸리는 전화선의 느린 전송 속도에도 불편함을 몰랐다. 이승희를 통해 익힌 인터넷 사용법은 인터넷 바다를 항해하는 데 필요충분한 방식이 됐다. 

   
이승희가 표지를 장식한 잡지 〈란제리〉(출처=비즈한국DB).

이승희는 1970년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당시 고양군 신도면)에서 태어나 1978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미국 시민권자다. 대부분 이민자 가정이 그렇듯이 엄청난 고생을 했으며, 학창 시절 아버지 직장 문제로 이곳저곳 전학을 다니면서 도서관을 즐겨 찾는 공부밖에 모르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이승희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의과대학에 전액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수재였지만 1994년 대학을 중퇴했다. 누드모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친구들과 놀러간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플레이보이 사진작가를 통해서였다. 이를 계기로 이승희는 1996년 세계적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자매지 〈란제리〉의 표지 커버를 장식했다. 그녀에게는 ‘노랑나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배꼽 아래 새겨진 나비 문신 때문이었다. 

〈플레이보이〉 최초의 아시아계 모델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달랐다. 당시 아시아계 누드모델은 드물지 않았으며, 〈플레이보이〉에 아시아계 모델이 등장한 것도 1960년대부터였다. 한마디로 국내 황색 언론이 낳은 촌극이었다.

국내에서 ‘이승희 신드롬’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1997년 방한 당시, 언론은 ‘누드 환향’이라는 표현으로 앞 다투어 대서특필했다. 이승희는 지상파 방송은 물론 각종 케이블채널에 잇따라 출연했다. SBS에서 방영된 김혜수의 토크쇼 〈플러스 유〉에 나와 한국말로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누드모델로 성공하기까지 과정을 담은 책 〈할리우드의 노랑나비〉와 사진집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승희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옷을 입고 벗을 자유,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것이다. 나는 누가 벗으라고 해서 벗는 사람도 아니고, 벗지 말라고 해서 벗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나의 누드는 나를 정말로 자유로울 수 있게 한다.”

이승희는 란제리 브랜드 ‘라보라’와 CF모델 계약을 맺었다. “여자의 가슴이 바뀐다”는 이 CF의 카피는 한국 여성들의 ‘가슴관’을 바꿔놓았다. 살짝 성형을 했다는 사실을 이승희가 고백한 후 성형외과에 이른바 ‘이승희 스타일’의 가슴 성형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그녀는 성인콘텐츠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한국에 입증했다. 이승희 이후 여자 연예인들의 누드화보가 쏟아졌다.

   
이승희 이후 여성 연예인의 누드화보붐이 일었다(출처=비즈한국DB).

국내에서 식을 줄 몰랐던 그녀의 인기는 1999년 영화 〈물위의 하룻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조용히 사라져 갔다. 이후 이승희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단역과 조연을 통해 필모그라피를 쌓으며 활동을 이어갔다. 영화 〈너스베티(2000)〉, 〈걸스 라이프(2003)〉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내겐 너무도 아찔한 그녀(2004)〉, 〈아트 오브 워3(2009)〉에선 조연으로 출연했다. 김윤진이 주연으로 나온 인기 미드 〈로스트〉에서도 얼굴을 내비쳤다.

2007년에는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미국의 월간 〈스터프(Stuff)〉가 뽑은 ‘온라인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100명 중 당당히 17위에 랭크됐다. 할리우드 미녀 스타인 샤를리즈 테론(22위)과 린제이 로한(29위)보다 높은 순위였다.

그녀는 2007년 미국에서 제레미 베이커란 남자와 결혼했고 다시 스포츠 의학 공부를 하려 한다는 소식도 들렸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승희는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퍼스널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승희는 음지의 누드를 당당한 예술로 끌어올렸다. 이승희가 물꼬를 터놓았기에 이사비, 이파니 등이 바톤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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