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기부금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평가기관인 CEO스코어가 시가총액 100대 기업중 기부금 명세를 공개한 78개사의 기부금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 기부액은 1조4821억 원으로 2012년(1조2168억 원) 대비 22% 늘어났다. 매출 대비 기부금 비율은 2012년 0.112%에서 지난해 0.138%로 0.026% 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주요 기업들이 실적부진으로 영업 이익이 저하되는 상황에서도 기부를 통한 사회적 책임지난해 상장사 1318곳의 평균 기부금은 역대 최대인 14억6888만 원으로 2010년(8억3700만 원)보다 75.5%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기부액은 2353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SK(1385억 원)와 현대중공업(1329억 원)이 뒤를 이었다. 이어 삼성중공업(1105억 원), KT(975억 원), SK텔레콤(813억 원), 포스코(739억 원), 현대차(703억 원) 등의 순서로 기부했다. 그러나 상장사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은 0.92%로 2010년 조사 때(1.69%)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별 기부 현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재계 순위 1위인 삼성그룹의 경우, 17개 상장사의 지난해 기부 총액은 5116억 원으로 전년 3848억 원보다 32.9% 급증했다. 이 수치는 국내 10대그룹 중 가장 큰 규모다. 순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도 1.3%에서 1.6%로 증가했다.
삼성그룹 중에서도 삼성전자가 다른 계열사보다 기부금이 가장 앞섰다. 전년 1728억 원에서 4053억 원으로 134.5% 증가했다. 삼성전자와 제일모직을 제외한 삼성그룹 내 대다수 상장사의 순이익은 전년대비 20~90% 가량 줄었으나,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의 기부금은 전년 대비 증가했다.
◆ 이익 증가 불구 기부금 감소한 기업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9조5060억 원으로 전년대비 5.3% 늘었으나 기부금은 1165억 원으로 1.4% 감소했다. 순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은 0.6%에 그쳐 10대그룹 평균에도 못 미쳤다.SK그룹은 SK하이닉스의 흑자전환에 힘입어 당기순이익이 5조2447억 원으로 전년 대비 35.2% 급증했지만 기부금은 920억 원으로 13.7% 감소했다.
지난해 2조8725억 원으로 흑자 전환한 SK하이닉스의 기부금은 전년 26억 원에서 29억 원으로 3억 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SK텔레콤은 그룹 계열사 중 가장 규모가 큰 598억 원을 기부했으나 전년 대비 22.7% 줄었다.
이밖에도 LG그룹은 순이익이 9.4% 늘었음에도 기부금은 13.8% 줄였고 롯데그룹은 순이익이 13.3% 줄었음에도 기부금은 1.5% 늘려 대조를 이뤘다. 지난해 업황 부진으로 순이익이 크게 떨어진 포스코, 현대중공업의 경우 전년보다 31~66% 줄어든 447억 원, 325억 원을 기부했다.
10위권 밖의 기업으로는 LG화학(214억 원), CJ대한통운(206억 원), 롯데쇼핑(189억 원), 현대모비스(188억 원), 대한항공(166억 원), LG디스플레이(165억 원), 두산인프라코어(140억 원), 에쓰오일(108억 원), CJ오쇼핑(108억 원), KT & G(108억 원 순으로 기부했다.
5억 원 미만 기업으로는 농심(4억9000만 원) 영풍(4억6000만 원) 금호타이어(4억2000만 원)서울반도체(4억1000만 원) KCC(3억1000만 원) 현대로템(2억9000만 원) GS리테일(2억8000만 원) LS산전(1억2000만 원) 순으로 기부했다.
◆ 한샘, 동서, 매출 대비 최하위 기부
매출 대비 기부 규모가 가장 적은 기업은 동서와 한샘으로 나타났다. 한샘은 지난해 매출이 29% 늘었지만 기부금은 전년도 6600만 원에서 41% 줄어든 3900만 원에 그쳤다. 동서는 78개 기업 중 가장 적은 기부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동서는 전년 50만 원에서 2배로 기부액수를 늘렸지만 98만 원 그쳐 꼴찌를 차지했다. 꼴찌 기부 기업은 동서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동서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대비 2.3% 늘어난 4703억6800만 원이었◆외국계 기업 대부분 자린고비 기부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 대부분은 기부에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명품 등 고가의 사치성 소비재와 수입 자동차를 파는 외국계 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도 기부엔 뒷전이다.버버리의 경우 2012년 2220만 원을 기부했으나 지난해에는 880만 원을 기부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옷을 팔아 거둔 매출액의 0.0038%를 기부한 것이다. 프라다는 3510억 원의 매출액에 780억 원의 영업 이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849만 원을 기부했다. 이보다 더 심한 외국계 기업도 있다.
시계 브랜드 스와치는 공시에서 조회할 수 있는 회계연도인 2001년부터 2013년까지 한 푼의 기부금도 내지 않았다. 스와치 스위스 본사는 그 대신 347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 205억 원의 배당금을 챙겼다.정장으로 잘 알려진 에르메네질도제냐코리아도 지난해 30만 원(매출액 대비 0.00084%)을 기부금으로 냈다.
지난해 294억 원의 매출을 올린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는 기부금으로 매출의 0.035%인 1050만 원을 냈다.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는 2009년엔 매출 317억 원을 올리면서 기부금으로 1만 원을 내놓아 비아냥을 산 기업이다.페리가모 역시 107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한 푼의 기부금도 내지 않았다. 공시에서 조회되는 1999년 이후 페라가모 기부금 내역을 살펴보면 2009년 2400만 원과 2010년 2700만 원 딱 두 차례만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루이비통 경우는 명품 업체 중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했다. 2억1100만 원을 기부해 전년보다 1억5300만 원이 증가한 금액을 기부했다. 루이비통의 기부는 영업이익이 전년대비(523억 원)9.7% 증가하는데 그쳤지만 기부는 363% 증가했다.로렉스는 기부금은 4800만 원이지만 전년대비 1130만 원이 증가된 금액을 기부했다,
영업이익 감소에도 불구하고 기부금을 늘린 회사도 있다. 한국얀센은 지난해 20억 원을 기부했다. 전년대비 250% 증가한 금액이다. 한국얀센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6억 원으로 전년대비 27억 원 줄었으나 기부금은 증가했다.한국로슈는 골다공증치료제를 생산·판매하는 제약회사다. 한국로슈는 2710억 원의 매출액에 6억9610만 원의 영업 손실을 봤지만 8억7340만 원을 기부했다.
주방용품업체인 휘슬러의 경우에도 전년대비 10억 원이 감소된 65억 원의 영업 이익에도 기부금은 2012년 350만 원보다 1600만 원이 증가한 1950만 원을 기부했다.쓰리엠의 경우도 영업 이익은 전년대비 438억 원이 감소한 1285억 원을 냈으나 기부금은 764만 원이 증가한 4720만 원을 기부했다.다이소는 지난해 25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기부금은 오히려 3억1000여만 원이 증가한 5억3300만 원을 기부했다.
기부 1위는 홈플러스, 명품업체는 시늉만
국내 진출한 외국계 기업 중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내는 기업은 홈플러스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55억 원을 기부했다. 홈플러스는 2013년에도 63억 원을 기부해 외국계 기업 중 가장 많은 기부를 했다. 금융감독원 공시를 살펴보면 홈플러스의 기부는 1999년 2600만 원부터 시작해 6년 후 5억4000만 원으로 증가했다.2007년에는 1700만 원으로 기부금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으나 다음해에는 23억 원으로 증가했다. 2011년 42억 원, 2012년 63억 원을 기부했다.
유한킴벌리는 지난해 19억 원을 기부했다. 매출액 1조3660억 원에 1634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유한킴벌리는 2012년 영업이익 1657억 원에 25억 원의 기부를 했다.전년대비 영업이익은 1.3% 감소했으나 기부금은 전년대비 24% 감소했다.
사무용품을 전문적으로 생산 판매하는 후지제록스의 경우 지난해 1100만 원을 기부했다. 후지제록스의 경우는 2012년에는 22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으나 지난해에는 2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부금은 750만 원 줄었다. BMW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1조9067억 원에 257억 원의 영업 이익을 지난해 냈으며 총 16억 원을 기부했다.
영업이익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줄인 업체도 있다,한국암웨이는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72억 원이 증가한 779억 원이었으나 기부금은 1억 원이 감소한 11억 원을 기부했다.존슨앤드존슨은 2012년도 48억 원의 영업 손실에도 불구하고 1억8800만 원의 기부를 했다. 그러나 지난해 57억 원의 영업 이익 전환에도 기부는 1억4700만 원으로 오히려 4100만 원을 줄여 기부했다.
한국노바티스는 2012년 16억 원의 영업 손실에서 지난해 47억 원의 영업 이익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부금은 5억 원이 감소한 12억 원을 기부했다.국내 진출 외국계 기업의 짠돌이식 기부 행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치성 명품업체일수록 상류층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을 펼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우리나라 소비자들과 동화할 이유가 없다”고 원인을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