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220년경 쓰인 ‘아우스부르크 연대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1227년 가을, 저녁 서쪽 하늘에서 한 별에 놀라운 징후가 나타났다. 이 별은 남쪽에서 살짝 서쪽으로, 아리아드네의 왕관을 상징하는 별자리에 있다. 원래는 아주 흐릿한 별이었으나 갑자기 아주 밝아지더니 다시 원래대로 어두워졌다. 사제들은 그날 지상 곳곳에 천국을 상징하는 또 다른 징후가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밤하늘에 갑작스럽게 밝아져 사람들을 놀라게 한 별은 북쪽왕관자리에 놓인 아주 어두운 별, 북쪽왕관자리 T 별(T Coronae Borealis)이다. U 자 모양을 하고 있는 왕관 모양의 별자리 살짝 왼쪽에 숨어 있다. 평소에는 해왕성보다 더 어두워서 지구의 밤하늘에서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1227년 갑자기 이 별이 밝은 신성으로 폭발하면서 잠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보통 신성은 한 번 폭발하면 마지막 발악을 하면서 최후를 맞이한다. 그 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에 걸쳐 다시 밝기가 어두워져서 그대로 죽어버린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주기적으로 폭발을 반복하는 신성들이 있다. 북쪽왕관자리 T 별도 그렇다. 560년 뒤인 1787년에도 갑자기 밝아진 현상이 기록되었다. 약 80년을 주기로 신성 폭발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자들은 올해 5월에서 9월 사이, 북쪽왕관자리의 T 별이 다시 신성 폭발을 맞이할 것이라 예측했다. 도시 불빛 광공해가 적은 어두운 하늘이 보이는 곳이라면 신성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2024년 5월에서 9월 사이 폭발할 것으로 예측되는 북쪽왕관자리 T 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보통 신성은 태양 정도로 그다지 무겁지 않은 별이 최후를 맞이하고 남기는 백색왜성으로 인해 벌어진다. 아주 높은 밀도로 반죽된 별의 중심부만 남기고 별은 외곽의 가스 껍질을 날려버린다. 그 흔적은 사방으로 아름답게 흩어진 행성상 성운으로 관측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폭발 직후의 열기로 버티면서 서서히 식어가는 높은 밀도의 핵융합 찌꺼기, 백색왜성만 남게 된다. 백색왜성은 밀도가 아주 높다. 그래서 보통 태양 정도 질량으로도 겨우 지구 정도 지름 밖에 안 되는 크기로 뭉쳐 있을 수 있다.
백색왜성이 곁에 다른 동반성을 거느리고 있다면, 백색왜성의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곁에 훨씬 거대하게 부푼 적색거성과 같은 별이 있다면 상황은 꽤 흥미롭게 흘러간다. 적색거성은 워낙 덩치가 크기 때문에, 적색거성 표면에 있는 물질은 적색거성으로부터 그다지 강한 중력에 붙잡히지 않게 된다. 반면 곁에 있는 높은 밀도의 백색왜성이 더 강한 중력으로 적색거성의 표면 물질을 야금야금 뺏어온다. 이렇게 백색왜성으로 물질이 유입되면서 백색왜성 주변의 온도가 다시 뜨거워진다. 핵융합을 할 수 없는 죽은 상태가 되었지만, 다시 온도가 올라가면서 그 주변에 남아 있던 수소와 헬륨을 다시 한 번 핵융합할 수 있는 온도에 다다른다.
마치 수소폭탄 안에서 벌어지는 연쇄반응과 같은 일이 백색왜성 주변에서 벌어지는 셈이다. 순식간에 폭발적인 과정이 벌어지면서 백색왜성은 한 차례 밝은 섬광을 일으킬 수 있다. 그 모습을 멀리 지구의 하늘에서 바라본다면 원래는 아주 어두운 별처럼 보였거나,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하늘만 보였던 텅 빈 자리에 갑자기 새로운 별이 밝게 빛나며 등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런 현상을 보고 새로운 별이 갑자기 등장한 것 같다는 뜻에서 노바(Nova), 신성이라고 불렀다.
1866년과 1946년에도 이 별의 신성 폭발이 관측되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관측된 것처럼 80년 정도의 주기가 반복되는 것이 맞다면 조만간 2025년을 전후로 별의 신성 폭발을 다시 기대할 수 있다. 특히 흥미롭게도 2023년 천문학자들은 이 별의 급격한 밝기 감소 현상을 확인했다. 이 현상은 앞선 다른 폭발에서도 목격된 적이 있는데, 급격한 밝기 감소 후 보통 1년 안에 신성이 폭발했다. 따라서 지난해의 밝기 감소가 폭발의 전조 현상이라면 2024년 9월 안에는 신성 폭발을 기대해볼 수 있다!
신성이나 초신성이 폭발을 앞두고 왜 급격한 밝기 감소를 보이는지는 아직 명확한 메커니즘이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항성 진화 모델을 통해 분석해보면, 백색왜성 표면으로 무거운 원소들이 계속 유입되면서 별 표면에서 빛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정도, 불투명도가 올라갈 수 있다. 또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별 표면 바깥으로 많은 양의 가스 구름이 분출되고, 그것이 우주 공간에서 빠르게 식으면서 별빛을 가리는 거대한 먼지 구름이 될 수 있다. 앞서 2020년 겨울, 급격한 밝기 감소를 보여 많은 천문학 팬들이 초신성 폭발의 전조 현상이라는 기대를 품었던 베텔게우스도 이런 먼지 구름으로 인한 밝기 감소로 확인됐다.
이번 북쪽왕관자리 T 별의 신성 폭발은 천문학자들에게도 아주 좋은 기회다. 백색왜성이 주변의 동반성에서 어떻게 물질을 빼앗아오고, 어느 순간부터 본격적인 폭발에 이르는지를 미리 기다리면서 지켜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지상과 우주 전역에 다양한 파장의 빛으로 동일한 천체를 겨냥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졌다. 눈으로도 볼 수 있는 가시광선으로 관측하는 것을 넘어 찬드라 우주망원경과 같은 엑스선 관측,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통한 적외선 관측, 지상에 설치된 다양한 거대 전파 어레이를 활용한 전파 관측도 가능하다.
북쪽왕관자리 T 별이 가장 근래에 폭발한 것은 1946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구 대기권 바깥으로 우주 망원경을 올리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이런 다양한 종류의 파장의 빛으로 신성 폭발을 동시에 관측하는 다중 파장 관측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준비가 갖춰졌다. 정말 적기라 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조만간 제임스 웹을 통해 북쪽왕관자리 T 별을 관측하는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
백색왜성이 언제 폭발하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폭발 순간에 이르는지를 실제 관측을 통해 확인하는 것은 정확한 우주의 팽창 속도를 재고 우주의 미래를 내다보는 현대 우주론 분야에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다. 우리 우주가 점점 팽창 속도가 빨라지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보여준 관측적인 증거가 바로 먼 우주의 은하들의 거리를 잴 수 있게 해준 Type 1a형 초신성 폭발 관측 데이터다.
Type 1a형 초신성은 대부분 백색왜성이 인접한 동반성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질량을 흡수하면서 특정한 한계 질량을 초과할 때 벌어지는 현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더 다양한 관측에 따르면 이런 백색왜성의 폭발 메커니즘은 우주의 나이, 또는 은하의 나이나 화학 조성 등 여러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단순하게 백색왜성의 초신성 폭발 순간의 밝기 자체만 갖고 그것을 먼 우주까지의 거리를 재는 표준 잣대로 사용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염려가 조금씩 논의되고 있는 추세다.
물론 폭발을 앞둔 북쪽왕관자리 T 별은 초신성은 아니지만, 백색왜성이 신성으로 폭발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백색왜성의 폭발 메커니즘, 한계 질량을 넘어서는 순간의 메커니즘을 다양한 파장으로 면밀히 지켜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실험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쪽왕관자리 T 별은 밤하늘에서 어떻게 찾을까? 북쪽왕관자리 별자리가 그다지 크진 않지만, 찾기는 어렵지 않다. 우선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찾는다. 그리고 국자의 손잡이 방향으로 쭉 따라가면서 목동자리의 머리를 통과해서 좀 더 옆으로 나아가면, 희미한 별들이 U 자의 왕관 모습을 한 작은 별자리를 만날 수 있다. 이번에 신성 폭발을 앞둔 것으로 예측되는 북쪽왕관자리 T 별은 이 별자리의 왼쪽 아래에 위치한다.
다만 아쉽게도 이 별은 대낮에도 볼 수 있을 만큼 눈부시게 폭발하는 역사적인 초신성은 아니다. 그저 작게 폭발하는 신성이다. 평소 밤하늘을 자주 보지 않았다면 이 별이 신성이 되어 폭발하더라도 밤하늘에서 뭐가 달라졌는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냥 흐릿하게 빛나는 작은 점 하나가 까만 하늘에 하나 더 보일 뿐이니까.
새롭게 터지는 신성을 놀라운 마음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북쪽왕관자리 주변 밤하늘과 친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날이 맑을 때마다 가끔씩 밖에 나가 북두칠성 손잡이 끝을 쭉 따라가면서 북쪽왕관자리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하늘에서 찾아보자. 매일 북쪽왕관자리를 찾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작은 별 하나가 옆에 등장한 것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https://www.aavso.org/news/t-crb-pre-eruption-dip
https://www.stsci.edu/jwst/phase2-public/4607.pdf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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