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무기 국산화 실패 경험에 비춘 '우물 안 개구리' 식 비판…산업 파급효과 및 현대전 양상 감안해야
[비즈한국] 지난 3월 2일, 호주의 국방 싱크탱크인 ASPI(Australian Strategic Policy Institute)에서는 매우 도발적인 글이 실렸다. 바로 한국의 항공모함 보유 계획에 대해서 호주 군사 전문가가 원색적으로 비판한 내용이 실렸기 때문이다. ‘한국 해군이 국가에 필요 없는 항공모함을 노린다.’(South Korea aims to build aircraft carrier the country doesn’t need)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은 내용 역시 격렬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15년간 미국의 항공우주 전문지 에비에이션 위크(Aviation Week)아시아 태평양 편집장을 맡아온 브래들리 페렛(Bradley Perrett)은 기고문을 통해 한국의 항공모함 보유가 그야말로 필요 없는 사치품에 돈 낭비를 한다고 지적했다. 기사에서 그가 비판한 한국의 항공모함 무용론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항공모함은 북한에 대응할 수 없는 무기라는 점이다. 한국은 북한이 수도권을 겨냥하는 장사정포나 핵무기를 막아야 하는데, 항공모함은 이를 방어하는데 불필요하다는 논리다.
두 번째로, 항공모함과 한국 함대는 중국과 일본의 미사일, 항공기, 잠수함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므로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중국과 일본의 해군력이 한국보다 강한데, 항공모함을 보유해봤자 중국과 일본 해군을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 해군은 그저 떼를 쓰듯이 남들이 가진 항공모함을 자기도 가지고 싶은 것일 뿐이라 비판했다. 또한, 한국의 방위 산업은 효율이나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기술 민족주의’(techno-nationalism) 때문에 진행하는 것들이 많아서, 항공모함은 물론 KF-X 전투기나 국산 로켓 개발 사업들이 예산 낭비이며 한국 정부가 불필요한 세금을 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이런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당신이 한국인이 아닌 것에 감사하십시오.”(Just be thankful you’re not South Korean.)라는 문장이다. 대한민국은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그의 생각은 평범한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화를 낼 만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러한 주장을 하는걸까.
수십 년의 경력을 갖춘 군사전문가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면에는 그의 조국인 호주가 엄청난 세금을 사용하면서도 방위 산업 육성에 실패한 아픈 역사를 가진 경험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는 광대한 영토의 축복받은 자연환경을 가진 농업 대국이자 자원 부국이다. 그래서 호주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부분은 매우 미약하다. 대표적으로 2017년 호주가 자랑하는 자동차 브랜드 홀덴(HOLDEN)이 철수한 이후 제조업을 되살리려는 호주의 노력은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문제는 호주의 제조업이 붕괴하다보니, 자국 무기를 만드는 방위산업도 역량이 부족해서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 최초의 국산 잠수함 건조 프로젝트인 콜린스(Collins class) 잠수함은 예산은 계획보다 2배는 늘어났으면서도 잠수함의 성능이 기대에 못 미쳤다. 호주 해군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호바트(Hobart class)는 우리 해군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보다 70% 정도의 크기에 예산은 세종대왕함의 2.5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호주 내부에서 크게 비판받았다.
호주의 차세대 재래식 잠수함인 어택(Attack Class)은 아직 조립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처음 계획된 예산을 훌쩍 넘어 1척에 6조 원의 가격이 예상되며, 2014년부터 진행된 이 차세대 잠수함 개발 프로젝트는 2034년에야 1번 함 건조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한심한 프로젝트로는 캔버라급(Canberra class) 다목적 상륙함이 있다. 스페인의 설계를 도입하여 호주에서 건조된 캔버라급은 스페인 버전보다 가격이 3배로 뛴 것도 모자라, 원래 캔버라 급의 목표였던 F-35B 수직이착륙 전투기의 운용을 위해서는 대규모 개량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져 결국 반쪽짜리 배가 되었다. 즉, 호주는 2조 5000억 원을 들이고도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조국의 방위 산업이 수십 년 동안 100조 원에 가까운 세금을 낭비하고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본 군사전문가 입장에서, 인구 5000만의 신흥 국가가 2조 5000억 원으로 항공모함을 만드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호주인 입장에서는 방위산업 육성과 무기 국산화의 장점으로 이야기하는 산업 파급효과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돈 낭비로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밀리터리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조차 방위 산업의 산업파급 효과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많다. 군인은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는데, 성능이 검증된 수입품 대신 국산 무기를 쥐어주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전투나 결투가 아니고, 무기는 단일 성능이 아닌 총예산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산 무기가 있으면 전쟁이 날 때 무기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고, 국산 무기가 없으면 전쟁이 날 때 무기를 수입해야 한다는 1차원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 필요한 무기가 무엇인지, 그 무기의 적절한 성능이 어떤 것인지 결정하고 만들 수 있는 국가 만이 수입할 때에도 가장 적합한 무기를 선택할 힘이 있고, 우리가 진짜 필요한 작전 성능을 내기 위한 무기를 만들고 쓸 수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조업과 첨단산업 기반이 없는 나라와 한국을 비교하여 방위 산업의 산업 파급효과를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은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요소가 세계 최고의 선진국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객관적으로 봐도 세계 정상급의 전자산업, 조선산업, 자동차 산업을 갖춘 나라이다.
국산 항공모함과 국산 전투기를 만들어 방위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세금 낭비가 아니라 우리의 발달한 첨단산업을 활용해서 나라를 지키는 힘을 키우고, 첨단 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상대하는데 항공모함이 필요 없고, 잠재적 위협에 대응이 불필요하다는 것 역시 지나치게 극단적인 주장이다. 현재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작전개념에는 미군 항공모함을 필수 전력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한반도가 아무리 좁아도, 북한이 전쟁에 대비한 수많은 지하시설과 대량파괴 무기를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타격하여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북한의 영해에 근접하여, 남한의 지상 공군기지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많은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항모 항공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인근에서 공군 전투기가 해군 함대를 완벽히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공군 전투기가 한반도의 모든 영토와 영해에서 작전할 수 있고, 공중 급유기가 있으면 아무리 먼 곳에서도 작전할 수 있지만, 공중급유기를 사용할 경우 공중급유 작전 과정에서 소비되는 시간과 준비 과정을 무시하기 어렵다. 4대의 공중급유기는 이론상 동시에 8대의 비행기에 공중급유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급유 준비 시간을 위해서 비행기가 공중 급유기 근처에서 오래 대기하고 떠 있어야 하는 시간도 따져봐야 한다.
이 때문에 지상의 공군기는 해군 함대와 연합작전은 가능하지만, 24시간 밀착 호위를 통해서 적의 항공력이 기습공격을 하는 것에는 대응하기 매우 어렵다. 공중급유기를 사용한 공군 전투기로는 긴급 대응도 어렵다. 전투기가 수십 분 만에 한반도를 횡단한다고 하지만, 현대의 해상 항공전에서 초음속 대함 미사일과 같은 발달한 무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협을 탐지하고 수 분 만에 즉각 조치할 수 있는 항공전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초음속 대함미사일이나 대함 탄도탄 같은 발달한 미사일에 크고 둔한 항공모함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항공모함 건조 예산 대신 이지스함을 더 구매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현대 해상전의 오해에서 나온 생각이다. 물론, 이지스함은 초음속 대함미사일이나 대함 탄도탄을 요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지스함의 레이더로는 수평선 안에서만 미사일을 추적할 수 있어, 미사일이 어디서 누가 발사했는지 알 수 없다. 이지스함에는 지상공격용 미사일이 있지만, 미사일을 발사하는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항공모함의 함재기는 함대 상공에서 비행하다가 수평선 밖 지상에서 적 차량이나 항공기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으므로, 항공모함과 이지스함은 서로 대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미사일이 발달했으니 항공모함이 무용지물인 것이 아니라, 미사일이 발달할수록 항공모함의 중요성이 오히려 더 커지는 것이다.
항공모함은 과거에는 대규모 식민지를 갖춘 강대국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초음속 대함 미사일 같은 발달한 신무기들은 항모 없는 함대의 생존을 점점 위태롭게 하고 있다. 물론 우리 해군의 경항공모함으로 숫자도 많고 크기도 큰 중국 항공모함을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반대로 중국은 미국 항공모함 전단을 상대하기 위해서 미사일 기술을 개발하면서도, 항공모함을 동시에 건조하고 있다. 이는 해군이 전쟁 발발 시 해전에서 승리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비 전시 상황에서 국가 이익을 수호하는 현시의 가치, 그리고 적의 도발을 예방하고 기습공격을 막는 방패의 역할이 필요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 군과 전문가들이 항공모함 보유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고 가치 있는 토론을 진행하길 바란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writer@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