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해외 대중음악계에선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 미국의 ‘TLC’, 일본의 ‘SPEED’와 같은 걸그룹들이 신화를 써가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여성 걸그룹은 가요계의 비주류였다. 이런 가운데 1997년 혜성처럼 등장한 S.E.S.와 1998년 데뷔한 핑클이 쌍벽을 이루면서 국내 걸그룹 전성시대의 막을 열었다. 여기에 원조 한류 걸그룹 베이비 복스를 포함해 ‘1세대 걸그룹’으로 칭하고 있다. 오늘은 이들 1세대 걸그룹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1세대 걸그룹이 등장하기 전 1990년대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여성 가수들의 포지션은 박미경, 엄정화, 김현정, 이소라, 강수지, 하수빈 등 솔로 가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그룹도 김지현이 메인보컬을 한 ‘룰라’, 황혜영이 있었던 ‘투투’ 등 혼성팀이 대세였지 여성들로만 이뤄진 걸그룹 활동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국내에도 여성 걸그룹의 명맥은 있었다. 1960년대 ‘펄 시스터즈’, 1970년대 ‘바니 걸스’와 인순이가 활동했던 ‘희자매’, 1980년대 바스트 40인치의 비주얼 쇼크 방실이가 이끌던 ‘서울 시스터즈’, 일본 걸 그룹풍의 ‘세또래’ 등이 있었지만 대중음악계를 쥐락펴락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S.E.S.는 한국 걸그룹 시대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는 점에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 S.E.S. |
S.E.S.는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가장 많은 앨범 판매고를 올린 여성 그룹이자 여성 가수다. 지금처럼 다양하게 음원을 접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대 걸그룹 음반 판매량 순위를 보면 1위 S.E.S., 2위 소녀시대, 3위 핑클에 이어 4위가 베이비복스다. 소녀시대를 제외하곤 모두 1세대 걸그룹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스파이스 걸스의 성공에 주목한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은 오랜 오디션 끝에, 세 명의 10대 소녀들을 선발했다. 안양예고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최성희(바다, See), 괌 교포 출신 김유진(유진, Eugene), 재일 교포 출신 유수영(슈, Shoo)을 최종 선발했다. 그리고 팀 이름은 이들의 이니셜로 결정됐다. 특히 이수만은 메인보컬인 바다가 아버지의 병환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대학 학비 전액을 지원해주며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는 등 각별한 정렬을 기울였다.
1997년 11월 SBS <충전! 100% 쇼>를 통해 ’m Your Girl>로 데뷔한 S.E.S.는 등장과 동시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성공은 예견된 것이었다. 가창력과 외모, 춤 실력은 물론 외국어 구사 능력까지 고려된 결과였다.
당시 세 소녀의 아름다운 외모, 달달한 가사와 감각적인 곡, 그리고 세련된 뮤직 비디오는 사춘기 소년, 대학생, 군인, 나아가 넥타이 부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바다는 당시 인기 절정의 탤런트 최지우를 닮아 ‘리틀 최지우’로 불렸고, 유진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히로인 미녀 배우 올리비아 핫세를 닮아 ‘한국의 올리비아 핫세’로 불렸다. 슈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모로 각광을 받았다. S.E.S.로 인해 ‘누나 부대’ 또는 ‘삼촌 팬’이란 신조어까지 탄생될 정도였다. 후속곡
S.E.S. 신드롬이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2집 역시 대성공이었다. 핀란드의 여성 듀오였던 나일론 비트의
1999년 출시된 3집
빌보드는 S.E.S.를 “당시 남성 지배적이던 가요계에 태풍을 몰고 왔다. 중독적인 비트에 따라 하기 쉬운 가사, 스쿨걸 이미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고 극찬하고 있다.
현재 바다는 자신의 꿈이었던 뮤지컬 배우로 분주한 활동을 하고 있고, 유진은 TV에서 주역 탤런트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슈도 예능을 통해 1남 2녀를 키우는 엄마란 새로운 모습이 부각되면서 활발한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핑클 얘기를 해보자. 핑클은 SM의 H.O.T에 대항해 젝스키스를 만들었던 대성기획(현 DSP미디어)이 S.E.S.의 대항마로 만든 그룹이다.
▲ 핑클 |
대성기획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핑클의 데뷔는 1998년 5월 R&B 발라드곡
1999년 2집
2000년 출시된 핑클 3집 앨범
핑클은 2002년 4집 앨범을 발표하며 타이틀곡 <영원>을 빅히트시켰다. 하지만 4집 활동을 마친 뒤, 핑클은 그룹을 해체하지 않고 <따로 또 같이>라는 개인 활동을 선언했다. 그리고 2005년 10월 디지털 싱글인
핑클의 리더인 이효리는 솔로 활동에도 성공하면서 2003년 <10 Minutes>, 2008년
옥주현은 최고의 뮤지컬 여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성유리는 연기 활동 초반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지만 최근 연기력이 많이 좋아졌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현재 MBC 월화 드라마 <몬스터>에서 여주인공 오수연 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진 역시 주·조연 연기자로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1세대 걸그룹이 있다. 베이비복스는 한국의 스파이스 걸스를 표방하면서 시대를 앞서간 1집의 실패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세대 걸그룹 중 가장 빠른 1997년 7월에 데뷔한 최고참 걸그룹이다. 이후 전열을 정비한 베이비복스는 <야야야>,
▲ 베이비복스 |
베이비복스는 한류 걸그룹의 원조였다. 1999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태국에 진출한 한국의 1호 가수였고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도 활약했다. 멤버 교체를 통해서였다.
베이비복스 전성기 시절 라인업은 이희진과 간미연의 메인 보컬, 심은진과 윤은혜의 서브 보컬과 김이지의 랩 파트로 구성돼 있었다. 메인과 서브 보컬 및 램으로 이어지는 현재 걸그룹 편성은 베이비복스 때부터였다. 특히 S.E.S.와 핑클은 전문적인 랩 구사를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베이비복스 김이지는 걸그룹 랩 파트의 원조로 기억돼야 할 것이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