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저작권 위반 교재에 칼을 빼들면서 학원가에 비상이 걸렸다. ‘수능특강’ 등 EBS에서 발간하는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계 교재의 변형 자료를 배포하지 못하도록 집중 단속하면서다. 이는 정부의 사교육 억제 정책에 따른 것으로, EBS는 법적 조치를 예고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정부와 EBS는 사교육 업계의 불법 행위와 과도한 마케팅을 잡는다는 취지지만, 사교육 업계에선 “현실을 모르는 방안”이라며 거세게 반발한다.
온라인에서 중·고등학교 영어 내신·수능 자료를 판매하는 E 업체는 지난 14일 2025학년도 EBS 수능 연계 교재와 관련한 자료 제공을 중단했다. 이 업체는 영어 강사뿐만 아니라 학원에 다니지 않는 수험생도 학습 자료를 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교과서·학력평가 등의 변형 문제와 분석 자료를 제공하며 연간 이용권을 결제하거나 개별 구매해 이용할 수 있다.
E 업체는 안내문을 통해 “EBS가 정부 사교육 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수능 연계 교재를 변형해 인터넷 등에 유통하는 행위를 저작권 위반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EBS 내 사교육 억제 특별 대책단을 발족해 수능 연계 교재를 변형해 불법으로 유통하는 사교육업체의 사례를 수집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코스닥 상장사이자 교과서·문제집을 출간하는 N 교육업체도 부가 학습 사이트를 통해 2025학년도 EBS 수능특강 변형 문제 교재의 미출간 소식을 알렸다. 두 업체 외에도 여러 교재 제작·유통 업체가 수능 대비용 EBS 자료 배포를 중단하면서, 당장 올해 수능 대비를 위한 수업 자료를 구할 길이 막힌 강사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현직 영어 강사 A 씨는 “EBS의 수능 연계 교재는 입시뿐만 아니라 내신에도 쓰인다. EBS 교재는 문제 난도는 높은데 풀이에는 한계가 있다. 학생이 교재만으로 학습하기 어려워 학원에서 변형 교재로 수업하는 것”이라며 “자료 배포만 안 하면 되는 건지, 지문 분석은 되는지 등 제재 범위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 학교에서 EBS 수능 교재의 진도조차 못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교육만 억제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 의문이다”라고 토로했다.
학원 및 과외 강사가 모인 커뮤니티 또한 “올해 고3 수능특강 수업은 EBS 책으로만 해야 하냐” “수업에 쓸 보조 자료도 만들면 안 되나”라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EBS에 문의하거나 법적으로 맞대응할 방법을 찾는 등 대책을 찾는 움직임도 일었다.
이 같은 EBS의 집중단속 배경에는 E 업체가 지적했듯 윤석열 정부의 사교육 억제 정책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사교육 카르텔 철폐’를 목표로 수능에서 초고난도 문항인 이른바 ‘킬러문항’을 배제하고, 강력한 세무조사로 학원가 스타강사의 탈세를 적발하는 등 사교육 업계를 압박해 왔다. EBS도 2023년 6월 사교육 억제 특별 대책단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리고 불법 사교육 운영, 학부모 타깃의 ‘공포 마케팅’ 등을 막으러 나섰다.
EBS는 TF 활동의 하나로 지난 1월 2025학년도 수능특강을 발간하면서 2개월 집중 단속을 실시했다. EBS는 “무분별한 문제 도용과 변형으로 수험생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단속 기간 동안 온오프라인의 교재 불법 유출 의심 사례와 변형 교재 발간 사례에 대해 자체 모니터링을 실시한다”라고 밝혔다.
EBS는 자체 모니터링과 더불어 ‘변형 교재 신고방’을 열고 외부 신고도 받고 있다. 지난 2일까지 접수된 신고 건수는 34건을 기록했다. 내부 기준에 따라 검토해 변형 교재로 확인되면 경고 또는 법적 조치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단속은 사교육 시장의 한 축인 변형 교재의 유통을 막았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현직 강사 사이에선 “현실을 모르는 대책”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어 불만이 크다.
EBS는 저작권 위반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밝히지 않고 있다. EBS 관계자는 “일단 자사 교재를 변형한 자료가 맞는지 확인하고, 교재에 있는 지문을 활용했다면 위반이 될 수 있다”면서도 “내부 판단에 따르며 세부적인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변형 교재가 저작권 위반 대상일 수 있지만 개별 문제의 창작성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고 짚었다. 공우상 특허사무소 공앤유 변리사는 “학습 교재는 ‘편집 저작권’이 발생한다. 자료의 선택과 배열에 창작성이 있는 편집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내용의 배치와 구성을 베낄 경우 저작권 침해를 물을 수 있다”며 “문제 자체만으로는 저작권 여부를 따지기 어렵다. 변형에 한계가 있고, 유사한 문제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EBS는 자사 교재를 심하게 베낀 업체에 소송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EBS는 ‘2021학년도 수능 연계 교재 수능특강 국어영역 독서’의 문제, 해설, 구성 등을 유사하게 만든 교재를 판매한 업체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2022년 11월 승소했다.
패소한 업체들은 EBS 국어 교재의 일부 지문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해 문제가 됐다. 재판부는 패소한 업체에 베낀 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면 교재를 판매하지 못하게 막고, EBS에겐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했다. 문제가 된 업체와 대표는 EBS뿐만 아니라 여러 출판사의 저작권을 침해해 징역과 벌금형을 받은 이력이 있었다.
한편 2014년 EBS가 수능 영어교재에 사용한 지문의 저작권료를 내지 않았다는 점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EBS는 영미권의 저작권 대리 단체와 저작권료를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협상을 거쳐 저작권료 지급을 완료했는지 물었으나 EBS 측은 답변하지 않았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
동네 병원은 CT·MRI 못 찍는다? 복지부 '특수의료장비' 칼 빼들었지만…
·
[단독] '땅콩회항' 조현아 전 부사장, 국세 체납해 60억 원대 자택 압류
·
낚시질 넘어 사기 수준…논란의 '테무' 앱 들어가보니
·
'1년 학비 천만원'에도 사립초등학교로 몰리는 이유
·
'EBS는 다 계획이 있구나' 펭수가 한정판 콜라보만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