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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콩콩팥팥', 연예인들끼리 땅 파고 밭 가는 게 이렇게 웃길 일이야

유쾌한 웃음 유발하는 '관계의 시너지'…익숙한 나영석표 예능 공식의 핵심은 '진정성'

2023.11.17(Fri) 13:31:57

[비즈한국] 농사 짓는 ‘찐친’들의 모습이 이렇게나 재밌을지 몰랐다. ‘친한 연예인들이 모여서 뭔가를 하는 것’이란 요즘 예능의 관성은 그대로인데, ‘그 밥에 그 나물’인 얼굴들이 아니어서 꽤나 새롭다. 시골을 동화 속 공간처럼 낭만범벅으로 칠하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든다. 프로그램 전반의 무드는 엄청나게 큰 웃음보단 소소한 웃음 정도인데, 그 웃음을 자아내는 출연진들의 모습에서 내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가 오버랩되는 묘미가 쏠쏠하다. 나영석 PD의 새로운 예능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콩콩팥팥) 이야기다.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만 해도, 연예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 내려와 몇 시간 농사 짓는 게 뭐 그리 큰 일이겠냐는 삐딱한 시선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매번 영상통화로 농작물에 대한 회의를 하더니, 촬영일이 아니어도 비료를 주러 떠나는 등 열의를 보이며 진정성을 확보했다. 사진=tvN 제공

 

‘콩콩팥팥’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그대로 농사를 짓는 프로그램이다. 연예계 소문난 절친들인 4인방에게 500평의 땅이 주어지고, 그 안에서 원하는 작물을 길러 수확하는 것.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농알못’들이 좌충우돌할 것은 당연지사.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서 처음 하는 미션을 ‘맨땅에 헤딩’ 하듯 완수하라는 것은 나영석 PD의 여러 전작들에서 익숙하게 마주한 공식이다. ‘삼시세끼’ ‘윤식당’ ‘강식당’ 등이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익숙한 공식이 재미난 건 역시 출연진들의 관계성 덕분이다.

 

농사만큼이나 이들이 진심을 보이는 것은 메뉴 선정. 매번 진심으로 메뉴를 정하는데, 심지어 많이 먹는다. ‘맛있어서 화가 날 지경’이라는 이광수의 말을 들으며 인제군에 두부 먹으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나만은 아닐 것. 사진=tvN 제공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 그리고 맏형 김기방으로 구성된 4인방은 일명 ‘조인성팸’으로 분류되는 ‘찐친’들. ‘콩콩팥팥’ 자체도 김우빈이 이광수에게 같이 모여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예능을 하면 어떨까 제의하면서, 이를 이광수가 나영석 PD에게 제안하며 만들어진 것이라고. 81년생인 김기방부터 93년생인 도경수까지 나이 차는 나지만 오랜 시간 다져진 우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에 빚어지는 웃음이 유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서로 만나는 출연진들은 웃음과 예의 사이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할 때가 많다. 프로그램 안에선 상대에게 버릇없이 굴다가도 카메라가 꺼지면 바로 달려와 사과하는 것처럼. 때문에 단련된 희극인이거나 어지간한 프로페셔널이 아닌 이상 예능 안에서 어느 정도로 자신을 내보이고 어느 정도로 활약해야 모두가 불쾌하지 않은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지 ‘선’을 가늠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콩콩팥팥’의 출연진들은 서로의 가족 근황은 물론 함께 여행하는 지경으로 친한지라 서로의 장단점을 적재적소에 웃음 포인트로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학습적인 예능이 아니라 본능적인 예능인 셈이다.

 

농사 지으러 올 때마다 그전에 자신들의 노고가 얼만큼 자라났나 확인하며 기뻐하는 출연진들. 농사엔 전혀 관심이 없지만, 먹고 남은 수박씨를 심어 열린 작은 수박을 보며 환호하는 이들의 마음은 화면 너머로도 잘 전달된다. 사진=tvN 제공

 

‘본격 리얼 코믹 다큐 좌충우돌 쌩초보 농사일지’를 표방하는 만큼 기존의 예능과 달리 스태프와 카메라를 대거 축소, 유튜브 브이로그를 찍는 듯한 느낌도 출연진의 관계성에 집중시키는데 한몫 한다. 기존보다 앵글 안에 덜 출연(?)하는 나영석 PD도 그렇고, 시골스러운 감성을 ’연출‘한 티가 역력하던 ’삼시세끼‘의 일련의 장치들을 배제하고 등장한 텅 빈 밭과 다큐에서 나올 법한 농막도 현실적인 느낌을 부여하기 때문.

 

제작진의 개입이 덜하니 출연진들의 활약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사석에서 항상 애용하던 스톱워치 계산법이 프로그램의 재미로 자리잡은 것도 그 때문.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면 무조건 스톱워치를 두 번 돌려 소수점 둘째 자리의 숫자를 곱하여 가장 낮은 수가 나온 멤버가 돈을 내는 방식인데, 막내인 도경수가 연달아 걸리거나 ‘김우빈데이’로 불릴 만큼 짠 것마냥 김우빈만 걸리는 상황이 웃음을 피어낸다. 제작진의 개입이 아니라 이들이 원래 쓰던 방식인지라 강압적인 느낌도 없고 그저 누가 걸리든 웃음만발일 뿐이다.

 

출연진들에게 여러 모로 도움을 주는 일반인 출연자들과의 교류도 프로그램을 빛나게 한다. 전천후로 도움을 주는 ‘망치 회장님’을 비롯해 술을 마셨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확연한 ‘농사의 신’ 동근 아버님, 종묘사 사장님 등 재미난 일반인 출연자들이 많다. 사진=tvN 제공

 

촬영지인 강원도 인제군에 거주하는 일반인들과 출연진들의 교류도 따땃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녹인다. 농사에 생 초보이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출연진들은 이웃에 사는 ‘농사의 신’ 동근 아버님과 그의 친구, 나영석 PD가 ‘1박2일’ 때부터 도움을 받아왔다는 ‘망치 회장님’ 등에게 도움을 받으며 서서히 농사꾼으로 성장해간다. 도움을 받고,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그러면서 허물없이 장난을 치는 모습으로 가까워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방송의 일환일지라도) 어느덧 그 옛날의 몽글몽글한 추억을 환기하게 된다. 이웃과 일절 교류가 없는 것이 당연시된 현대사회지만, 가까운 사람들끼리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정(情)을 그리워하는 마음마저 사라진 건 아니니까.

 

‘콩콩팥팥’의 수확 중 하나라면, 예능인 이광수의 재확인일 것. ‘런닝맨’으로 입지를 확고히 다진 이광수지만 ‘콩콩팥팥’에서는 유재석 없이 처음으로 홀로 리더 역할을 맡으며 물오른 폼을 자랑한다. 사진=tvN 제공

 

잘 알고 있다 생각했던 출연진들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재미. ‘런닝맨’으로 ‘예능 짬바’가 다져진 이광수의 활약은, 그가 더 이상 ‘유재석 라인’ ‘유재석 동생’이란 수식어 없이도 예능에서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동생들이 다큐를 찍고 있을 때 그 순간순간의 포인트를 잡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폼’이 그야말로 물이 올랐다. 이광수의 호들갑이 아니었다면 도경수가 뱀을 잡아 치운 사실이 그렇게 웃긴 일이 되진 않았을 터. 매사 스윗해 보이는 김우빈이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의외로 깐족거리는 타입이라는 것도, 아이돌 출신이라 애교에 최적화되었으리라 여겼던 도경수가 의외로 애교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김기방이 동생들 사이에서 정말 격의 없이 귀여운 형의 포지션이란 점도 ‘콩콩팥팥’에서 발견한 의외의 모습들이다.

 

배우 김우빈, 가수 겸 배우 도경수는 물론 감초배우로 활동해 온 김기방까지, ‘콩콩팥팥’의 출연진들은 대중에게 익숙한 얼굴이지만 예능 출연은 적었다. ‘콩콩팥팥’은 이들이 가감 없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관계성으로 인해 자연스레 출연진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며 호감을 산다. 사진=tvN 제공

 

tvN에서 금요일에 방영되는 ‘콩콩팥팥’은 전날인 목요일에 방영되는 ‘어쩌다 사장3’와 일종의 유니버스를 이루며 시너지 효과까지 낳고 있다. ‘어쩌다 사장’ 시리즈에서 알바생으로 출연했던 이광수, 김우빈이 ‘콩콩팥팥’의 고정을 맡은 가운데 ‘콩콩팥팥’의 게스트로 역시 조인성팸의 일원인 임주환이 출연했는가 하면, 뒤이어 11월 17일 방영하는 6화에서는 차태현, 이후에는 조인성이 출연할 예정이기 때문. 재미나게도 ‘어쩌다 사장’은 나영석 PD과 ‘1박2일’을 함께했던 친한 후배 유호진 PD의 작품인지라 은연중 묻어나는 공통적인 무드도 느낄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와 교류를 중요시하는 무드 말이다.

 

당분간은 목, 금요일 저녁이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프로그램에서 쉴 새 없이 등장하는 먹거리들 때문에 야식이 늘어 체중계에 올라서는 일이 두렵다는 부작용은 있지만(‘콩콩팥팥’ 멤버들은 왜 그리 먹을 것에 진심이란 말입니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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