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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민사소송과 공정위 신고, 어느 쪽이 피해자에게 유리할까

공정위, 적용범위 좁고 시간 오래 걸리지만 피해자 권리 구제엔 유리…개별 사안마다 상황 달라

2023.07.17(Mon) 11:18:01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불공정한 일을 겪었을 때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보다 공정위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불공정거래행위를 신고하는 것이 좋을까? 상담을 할 때 항상 받는 질문이다. ‘공정’과 ‘정의’는 마치 유행어처럼 쓰인다. 일상에서도 불공정하다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거래법은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는 법이고,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의 주요 집행기관이다. 따라서 불공정한 일을 당했을 때 공정위에 신고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국민신문고에 올라와 공정위에 이첩된 대부분의 민원이 이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불공정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 공정위에 신고하더라도 공정위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이유를 이론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 양측에서 알아보자.

 

먼저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안이 공정거래법 등의 적용(규제) 대상이어야 한다. 공정거래법 제1조에선 법의 목적 중 하나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촉진’을 들고, 같은 법 제45조 제1항은 ‘부당하게 공정한 거래를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금지한다. 다수의 학설은 이 조항을 기반으로 공정거래법의 적용 대상인 불공정거래행위란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경쟁 제한성)’와 ‘부당한 거래행위(불공정성)’로 해석한다.

 

‘경쟁 제한성’이란 특정 행위로 인해 시장 경쟁의 정도나 사업자의 수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감소할 수 있는 경우를 뜻한다. ‘불공정성’이란 △상품·용역의 가격과 질 이외에 바람직하지 않은 경쟁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 △거래 상대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저해하거나 불이익을 강요하는 등 경쟁 수단 또는 거래내용이 정당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이때 경쟁 제한성을 중시하면 공정거래법의 적용 대상이 축소되고, 불공정성을 중시하면 공정거래법의 적용 대상이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즉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관련 시장에서 경쟁조건의 내용이나 경쟁사업자의 수에 유의미한 변동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 사건은 경쟁 제한성이 존재하지 않아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닌 게 된다. 그래서 불공정거래행위를 신고한 사건의 상당수는 ‘민원에 대한 회신’이라는 형식으로 “해당 사건의 본질은 경쟁 제한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적 주체 간의 분쟁에 불과하므로, 민·형사 절차에 따라 해결하기를 바란다”라는 답변을 받는다. 

 

공정위가 불공정거래행위를 제재한 사례를 살펴보면 위법성의 근거로서 담합·실력행사 등 바람직하지 않은 경쟁 수단을 쓰거나, 이른바 ‘갑질’로 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를 저해했다는 점을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경쟁 제한성보다는 불공정성에 주목한 것이다.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법, 하도급법 등은 ‘을’의 위치에 있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러한 개별법령은 불공정성을 구체화한 것이므로 경쟁 제한성 요건은 그다지 중요한 쟁점으로 여기지 않고, 불공정성을 구체화한 법령의 개별 조문 상 요건 충족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정리하면 경쟁 제한성과 불공정성을 모두 충족한 사안만이 공정거래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 경쟁 제한성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건 접수조차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맹사업법 등 개별법령은 ‘을’을 보호하는 법령이므로 개별법령이 적용되는 사안에서는 경쟁 제한성 요건이 쟁점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공정거래법에 적용되는 사건이더라도 인력 부족 등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공정위가 본격적으로 조사를 개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다음으로 현실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공정위의 인력과 설비는 우리나라의 모든 불공정거래행위 사건을 조사·규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법원이나 검찰처럼 전국에 지방사무소라도 있으면 모를까, 공정위 지방사무소는 서울·부산·광주·대구·대전 5곳에 불과하다. 과거 갑-을 관계 논란으로 신고 건수가 폭증했을 때 담당 부서는 업무량 폭증과 민원 다발로 어려움을 겪고, 신고인은 조사가 진행되지 않거나 적절한 답변을 받지 못해 불만을 느끼는 등 모두가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신고인 입장에서는 억울한 노릇이지만, 신고 사건은 환영받기 어렵고 공정거래법 적용 조건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본격적인 조사 개시까지는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공정거래법령 규제 권한을 지자체에 일부 위임하거나 공정거래조정원의 조정절차를 적극 활용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절차를 보면 공정위에 신고하지 않고 민사소송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수의 신고자가 어떻게든 공정위 조사를 받으려는 이유는, 현재의 사법 시스템에선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보다 공정위에 신고하는 것이 피해자의 권리 구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0다278873 판결을 보자. 본사가 대리점에 지급하는 수수료 조항을 변경했는데, 대리점이 바뀐 조항을 두고 “본사가 계약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불이익을 준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로서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라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위 사안에서 1심 및 원심(2심)은 모두 수수료 변경이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보고 대리점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런데 상고심(3심)은 변경한 수수료 조건에 따르면 동일 실적 대비 수수료가 감소하므로, 본사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대리점에 불이익을 준 공정거래법 위반 사례로 판단해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여기서 1심·원심과 상고심의 판단이 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원심판결 이후 공정위가 본사를 조사해 본사 행위의 불공정성을 입증해 제재 처분을 했고, 이와 관련한 행정소송에서 공정위의 제재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증거의 구조적 편재, ‘디스커버리 제도(소송 전에 양측의 증거를 공개하는 것)’ 미도입 등으로 민사소송에서 피해자가 상대방 행위의 불공정성 요건을 완벽하게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공정위가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면 불공정성을 입증해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다 보니 같은 사안에서 민사소송의 법원은 불공정하지 않다고 보았지만, 공정위는 불공정하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사적 분쟁의 성격을 가진 불공정거래행위에 공정위가 적극 개입하는 것에 비판적인 의견이 있으나, 가해 사업자와 피해자 사이에 경제적 지위와 정보력의 격차로 인한 증거의 구조적 편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효적 제도를 도입하기 전까지는 공정위가 불공정거래행위 등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허승, 최근 공정거래 관련 민사판결의 회고와 분석)”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은 사례를 기반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에 불과하다. 실제 사건에서 구제 방법을 선택할 때는 사회 분위기, 언론 동향, 담당자의 성향 등 훨씬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검토해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고려할 요소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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