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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여성 서사도, 워맨스도 좋지만…'퀸메이커'의 아쉬움

강렬한 여성 캐릭터 포진에도 기존 남성 캐릭터를 여성으로 대체한 것 외에 '신선함'은 의문

2023.04.17(Mon) 16:39:56

[비즈한국] 김희애와 문소리, 두 배우가 만난다는 소식만으로 기대가 갔다. 두 배우뿐 아니라 주요 캐릭터를 채우는 얼굴도 쟁쟁한 여성 배우들.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최소 2명 이상 포함하고,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남성에 대한 것 이외에 다른 대화를 나눌 것 등의 기준을 충족하는 영화 성평등 테스트인 백델 테스트의 ‘ㅂ’도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러나 ‘퀸메이커’는 여성 서사를 담았다고 무조건 가산점을 줘야 하나 싶은 의문을 남긴다.

 

‘퀸메이커’를 보게 되는 첫 동력은 단연 김희애와 문소리일 것이다. ‘퀸메이커’에서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다른 길을 걸어온 인물들로 분한다. 처음 호흡을 맞추는 두 배우가 걸어온 커리어의 느낌도 그들이 맡은 인물들과 흡사한 느낌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퀸메이커’의 주요 서사는 익숙하다. 돈으로 권력을 사며 무소불위의 힘을 보이는 재벌가 은성그룹에서 전략기획실 실장으로 일하는 황도희(김희애). 황도희는 오너 일가의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전략기획실을 쥐락펴락하는 이미지 메이킹의 천재지만 오너 일가에겐 충성스러운 ‘똥개’에 불과하다. 

 

어느 날 모종의 사건을 겪고 충격을 받은 황도희는 은성그룹을 깨부수고자 결심하고, 그는 ‘정의의 코뿔소’를 자처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온 오경숙(문소리)을 서울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든다. 은성그룹 회장 손영심(서이숙)의 사위 백재민(류수영)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길을 걸어온 황도희와 오경숙의 대립은 사사건건 벌어지고, 백재민 말고 또 다른 여성 후보인 서민정(진경)과의 대결도 만만치 않다.

 

은성그룹 전략기획실 실장으로 일하며 오너 일가의 리스크 관리는 물론 그룹의 이미지 메이킹을 관리하는 황도희(김희애). 드라마 초반, 갑질 논란을 일으키며 검찰의 포토 라인에 선 은성그룹 은채령 상무(김새벽)를 관리하는 황도희의 모습은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재벌가에서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던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고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스토리는 대중문화에서 항상 봐오던 것이다. 당장 작년 말 ‘재벌집 막내아들’도 그런 내용 아니었던가. 절대 섞이지 않을 듯한 물과 기름 같던 두 인물이 손을 잡는 내용도, 온갖 권력과 암투가 벌어지는 정치 비즈니스판의 묘사도 익숙하다. 다른 것은 그 풍경을 채우는 인물의 면면이 대부분 여성이란 점.

 

주인공 황도희와 오경숙 외에도 욕망의 정점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은성그룹 손영심 회장, 상대가 더 많은 것을 가질까 살벌한 공격과 견제를 주고받는 손영심 회장의 딸들인 은서진(윤지혜)과 은채령(김새벽), ‘서민의 종’을 자처하는 3선 국회의원이지만 실은 자신의 욕망에 가장 충실한 서민정 서울시장 후보, 황도희의 자리를 탐하며 백재민 서울시장 후보와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가는 보좌관 국지연(옥자연), 오경숙 선거캠프 멤버이자 황도희의 회사 선배 이차선(김호정), 은성백화점의 횡포에 맞서 활동했던 여성 노동자 복직 연대 숨의 총무 화수이모(김선영), 끝없이 질문하는 IBC 기자 김초롱(심영은) 등등. 천하의 김희애가 “남성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장르물이 많아서 남장하고 나가보고 싶다”고 얘기할 만큼 남성 중심의 작품들(일명 ‘남탕 영화’)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큼 ‘퀸메이커’는 많은 여성 캐릭터가 포진해 있다.

 

모종의 사건을 겪고 은성그룹을 나온 황도희는 은성그룹에 대한 철저한 복수를 결심한다. 그 복수를 이뤄줄 인물로, 은성백화점 옥상 시위를 주도한 인권 변호사 오경숙(문소리)을 낙점했으나 두 사람의 연대는 쉽지 않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러나 그 여성 캐릭터들로 신선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가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퀸메이커’는 ‘본 드라마의 인물, 단체, 지명, 기관, 사건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고지가 무색할 만큼, 그간 대한민국에 있었던 각종 사회문제와 정치 현실을 깨알같이 재연한다. 

 

갑질을 일삼아 세상의 공분을 일으켰던 재벌 3세와 성폭행 문제로 나락에 떨어진 정치인, 위기를 앞둔 정치인이 커터칼 테러를 당해 분위기를 반전하는 장면이라든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정재계 인물들의 표리부동한 모습은 ‘이거 어디서 봤는데’ 정도를 넘는 높은 싱크로율의 묘사를 보여준다. 자칫 식상해 보일 만큼 충실한 재연인지라 재미가 떨어짐은 물론이다. 게다가 6~10화 등 넷플릭스 시리즈가 점점 ​짧아지는 ​것에 비해 11화라는 긴 리듬은 떨어진 재미에 가속을 붙인다.

 

좋은 여자와 나쁜 여자의 단순한 선악 구조를 넘어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은 분명 진일보한 부분이지만, ‘퀸메이커’가 기존 남성 캐릭터들을 여성으로 대체한 것 외에 더 큰 발전을 이뤄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욕망의 분신이자 악의 축으로 그려진 은성그룹 손영심 회장(서이숙),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프로 정치꾼 3선 의원 서민정(진경), 더 높은 곳을 위험하게 갈망하는 전략기회실 출신 보좌관 국지연(옥자연), 여성이자 노동자로 연대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키를 쥐고 있는 화수이모(김선영) 등 ‘퀸메이커’는 그간 남성들로 채워졌던 곳에 여성을 배치해 새로운 모습을 연출해 내고자 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권력을 쥐고 흔드는 손영심 회장이나 서민정 의원이 색다른 모습을 풍기는 것도 잠깐, 자기 캠프의 정책국장이자 황도희의 전남편인 마중석(김태훈)에게 “같이 살던 계집애(황도희) 하나 어쩌지 못해서”라고 힐난하는 서민정 의원의 모습은 이 캐릭터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아찔한 킬힐과 화려한 스카프 등으로 여성성을 상징하지만 권력과 능력을 쥔 여성 캐릭터들이 수시로 담배를 입에 물며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모습은 명예 남성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사, 연출, 미장센과 음악, 심지어 연기까지 너무 과하게 힘이 들어가 보는 입장에서 피로가 느껴진다. ‘저렇게까지?’ 싶을 만큼 주요 인물은 내내 화가 나 있고, 그 화를 과도하게 표출한다. 모두가 힘이 들어간 연기를 하고 이를 받아주는 사람은 적으니 피로감이 누적되는 건 당연하다. 빼어난 연기력의 김희애와 문소리 또한 이 피로감에서 자유롭진 못한데, 특히 드라마 초반에 물과 기름 같이 대립하던 황도희와 오경숙을 연기할 때는 한 사람은 오페라에 출연하고 한 사람은 마당극에 출연하는 것처럼 이질적인 모습이 연출된다. 

 

욕망에 분연한 여성 캐릭터들 사이에서 그나마 큰 역할을 맡은 백재민(류수영)과 칼 윤(이경영).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로 잘못된 욕망에 사로잡힌 백재민은 사실 손영심 회장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역할. 칼 윤 또한 나름의 이유는 있으나 손영심 회장의 지시로 백재민을 돕는 상황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전혀 다른 연기가 부딪치며 시너지가 날 때도 있지만 아쉽게도 초중반까지는 시너지보단 마찰이 더 느껴진다. 예상 가능한 캐릭터에 예상 가능한 연기를 보여주는 백재민 캠프의 킹메이커 칼 윤(이경영)은 많이 아쉽고. 이경영은 좋은 배우지만 창작자들이 이 배우의 쓰임을 더 고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은성그룹 은채령 상무 역의 김새벽은 눈에 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벌새’ 등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던 김새벽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재벌 3세를 모티프로 한 은채령의 다면적인 얼굴을 잘 표현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과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본능에 충실한 모습으로 현실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진경도 기억에 남는다. 

 

총 러닝타임 728분에 달하는 11부작 ‘퀸메이커’. 연기 잘하고 무게감 있는 여성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고 싶다면 괜찮은 선택이다. 12시간가량을 오롯이 투자할지는 1, 2화를 보고 판단할 것.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처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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