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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출신 금감원장 기대했건만…' 사모펀드 피해자들, 다시 거리 나서는 까닭

구제 안 된 피해액 5.5조에도 수사 진전 '난망'…피해자모임, 남부지검 찾아 수사 촉구 예정

2022.07.01(Fri) 15:10:55

[비즈한국] 6월 초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하면서 각종 사모펀드 피해자들은 희망을 품었다. 검찰 출신인 이 원장이 적극적으로 조사를 지시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 하지만 취임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피해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환매 중단으로 투자금이 묶인 펀드의 피해액은 5조 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자들이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내건 ​현수막. 사진=심지영 기자

 

#환매 중단 사모펀드 수십 개, 수사 진전 더뎌

 

이복현 금감원장은 취임 이후 두 차례 부실 사모펀드 사태에 관해 언급했다. 먼저 취임 직후인 6월 8일 기자실에서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를 두고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는데, 시스템을 통해 볼 여지가 있는지는 점검해보겠다”라고 말한 것이 최초다. 이 때문에 재조사 여부에 눈길이 쏠렸지만, 실제 진행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6월 28일 금융투자권역 CEO 간담회에서 이 원장이 “사모펀드 시장감시체계를 견고히 해 제2의 사모펀드 사태를 예방하겠다”고 발언하면서, 기자단에 “8일 발언은 원론적인 것으로, 사모펀드 관련 진행 중인 전수조사 외에 특별히 할 것은 없다”라고 부연해 김을 단단히 뺐기 때문.

 

검찰 출신 금감원장의 취임이 사모펀드 논의로 이어지는 이유는 투자자-금융사 간 분쟁 중인 부실 펀드가 많아서다. 피해 규모가 큰 5대 펀드에는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이탈리아 헬스케어·독일 헤리티지 펀드(DLS·파생결합증권)가 있다. 이 중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는 어느 정도 분쟁조정이나 보상 절차가 진행됐지만, 이탈리아 헬스케어·독일 헤리티지 펀드는 피해자 구제까지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더불어 5대 펀드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피해 규모가 큰 펀드도 많다. 피해자들은 금융기관, 검찰, 판매사·운용사 등으로부터 답을 듣지 못한 채 속만 태우고 있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는 2017년 10월부터 2019년 9월에 판매한 해외 재간접 펀드로, 이탈리아 병원이 지방정부에 청구할 진료비 매출 채권에 투자한 펀드에 다시 투자하는 상품이다. 문제는 부실 채권인 데다 펀드 돌려막기, 마피아 자금줄 의혹까지 있다는 점이다. 환매 중단된 하나은행의 헬스케어 펀드 판매액은 1536억 원, 계좌 수는 504개에 달한다. 

 

금감원은 6월 13일 헬스케어 펀드의 분쟁조정 결과를 발표했다. 5월 한 차례 조정을 미룬 후 나온 결과다. 금감원은 투자자 2명을 대표 사례로 정해 하나은행이 이들에게 ‘불완전 판매’를 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 피해자들은 ‘사기에 의한 계약 무효’ 또는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요구하며 결과 수용을 거부하고 나선 상태다. 피해자들은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서 배상 범위가 40~80%로 결정됐다. 나머지 피해자는 자율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배상 기준에 따라) 분조위를 생략하고 하나은행과 협상을 벌여야 한다. 피해자의 자존감을 짓밟는 것”이라며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고 집단 민사소송, 고소·고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헬스케어 펀드의 조정 결과를 본 독일 헤리티지 펀드 피해자들은 초조하다. 헤리티지는 5대 펀드 중 아직 한 번도 분조위가 열리지 않았다. 분쟁조정은 하반기에나 진행될 것으로 점쳐진다. 헤리티지 펀드는 독일 정부가 지정한 고성·수도원 등의 문화재를 현지 시행사가 매입해 고급 주거시설로 개발하는 사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시행사는 독일 돌핀트러스트, 운용은 싱가포르 반자란자산운용이 맡았다.

 

그런데 독일 현지 조사에서 시행사는 투자 건물에 소유권이 없었고, 인허가도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상 사기였던 셈이다. 시행사는 현재 파산한 상태다. 이 펀드는 2017년 6월부터 2018년 12월 사이 신한금융투자, 하나은행, NH투자증권, 우리은행 등에서 판매됐다. 판매액 중 약 5072억 원이 미상환됐는데, 이 중 신한금투 판매액이 3796억 원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2020년 판매사 등을 고소했지만 진척은 없는 상황이다.

 

임원효 독일 헤리티지 펀드 피해자연대 고문은 “투자자들은 계약할 때 이게 사모펀드인 줄도 몰랐다. 해외 부동산 투자라고 생각했다”라며 “알고 보니 지원사업이나 기초자산 같은 건 없었고, 시행사는 부실한 곳으로 처음부터 문제가 있는 상품이었다. 엉터리로 설명한 데다 사모펀드 모집 인원 49명을 맞추기 위해 18차례 쪼개서 팔았다”라고 역설했다. 

 

피해자들은 ​헤리티지 펀드 ​판매사가 책임을 회피한다고 지적한다. 임 고문은 “설명서부터 거짓이었던 셈인데 판매사들은 ‘판매만 했을 뿐 자료를 만들지 않았다’, ‘우리도 몰랐다’며 발뺌한다. 반면 독일의 파산관재인은 ‘한국에서 사기성을 알고 투자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신한금투 측에서 직접 확인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듣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5대 펀드에 들어가지 않지만 환매 중단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무려 1조 원이 넘는 펀드도 있다. 홍콩계 사모펀드 운용사인 젠투파트너스의 DLS(젠투펀드)를 둘러싼 분쟁이다. 젠투파트너스가 채권형 펀드를 만들어 국내 판매사를 거쳐 판매했다. 문제는 젠투파트너스 측이 2020년 7월부터 1년씩 두 차례 환매를 연기하면서 사실상 중단 상태에 놓였다는 점이다. 두 번째 환매 연기 기간은 7월 2일까지다. 

 

젠투펀드는 투자자 중 70%가 법인·기업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외국계 운용사라는 점까지 겹쳐 피해자들이 법적 대응을 하기 쉽지 않아, 진행 중인 민사소송이나 형사고발 건이 없는 상태다. 황윤식 젠투펀드 피해자 모임 대표는 “판매사에 아무리 항의 방문하고 면담을 요청해도 반응이 없다. 법인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영향도 있는 것 같다”며 “그렇다고 개인 투자자의 피해 금액이 적은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억대고, 5억~10억 원까지도 묶여 있다”라고 토로했다. 황 대표는 “운용사가 계약서대로 자금을 운용했는지 투자자는 알 길이 없었다”며 “판매사는 운용사 집행에 관여하지 못한다며 자신들도 상황을 몰랐다고만 한다. 법적 조치도 했다는데, 피해자들은 진행 상황을 공유 받지 못했다”고 답답해했다.

 

#노후자금 넣은 피해자들…가족에 말 못하고 ‘끙끙’

 

이 밖에도 피델리스, 아름드리, 알펜루트, 교보로얄클래스 등 환매 중단된 펀드는 수십 개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사모펀드 관련 구제받지 못한 피해액은 5조 5025억 원에 달한다. 

 

지난 2월 16일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 대책위원회와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디스커버리펀드 사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모펀드 피해 구제가 시급한 이유 중 하나는 개인 투자자 다수가 고령의 은퇴자라는 점이다. 개인이 펀드 하나에 수억 원씩 자금을 넣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이들은 복합점포나 은행에서 PB의 추천으로 투자한 경우가 많았다. 퇴직금이나 평생 모은 노후 자금을 조금이라도 불리기 위해 투자했건만, 손쓸 도리 없이 돈을 잃은 셈이다. 피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기 어려워 심적인 고통까지 겪는 사람도 있다. 

 

판매사를 향한 사모펀드 피해자들의 배신감은 크다. “은행과 오랜 시간 거래해왔고 작은 기업도 아니니 PB 등이 위험한 상품을 추천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계약 당시 어렵고 복잡한 계약서를 세세하게 읽진 못했다. 돌이켜보면 판매하는 직원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무턱대고 팔았던 것 같다. 연령대가 높고 목돈을 가진 충성 고객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게 아닐까. 아직도 피해자 중엔 ‘설마 돈을 떼먹을까, 사정이 있겠지’ 하며 막연하게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을 향한 불신도 높다. 임 고문은 “우리나라는 독일, 싱가포르, 영국 등의 수사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라며 “형사 고발, 민사 소송도 진행 중이지만 진척이 없다”라고 답답해했다. 금감원의 분쟁조정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황 대표는 “금융계·법조계 출신 분조위원 중엔 판매사와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이 많다”라며 “객관적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피해 보상 범위를 결정할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사모펀드 투자의 위험도가 높은 만큼 아예 개인 투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한 개정 자본시장법이 사모펀드 종류를 투자자 기준(일반·기관 전용)으로 나누고 일반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했지만, 부족하다는 평이다. 이의환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사모펀드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인 데다 정보는 금융사에 쏠려 있다. 이런 시장에선 투자할수록 피해자만 늘어난다. 해외에선 전문가만 투자 가능하다. 진입 장벽을 높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한편 미해결·부실 사모펀드 피해자들은 7월 7일 오전 서울남부지검을 찾아 수사를 촉구할 예정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부활했으니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며 “피해자들의 절망과 분노가 큰 상태다. 합수단 부활을 환영하면서 수사를 재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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