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50일 넘게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상징하는 표현이라면 단연 ‘상식이 파괴된 전쟁’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군이 보여주는 수많은 실패와 추태는 그야말로 상식을 뒤흔드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문장은 사실 러시아군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한 것만큼이나 우크라이나 군과 우크라이나의 군사과학 기술을 업신여긴 생각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시절 소련 연방의 곡창지대이자 공장 역할을 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군의 선전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애국심, 희생정신, 그리고 그동안 우크라이나가 투자한 국방과학 기술의 결실이라는 것이지, 러시아가 무조건 멍청한 작전이나 실수를 해서 우크라이나가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4월 14일 일어난 ‘모스크바함 침몰사건’은 우크라이나의 국방과학기술의 큰 쾌거이자, 그야말로 진정한 ‘최초의 21세기 해전’이라 할 만하다. 여러 군사전문가가 상상만 했던 전략인 일명 반 접근 전략’(A2/AD, Anti-Access, Area Denial)을 21세기 최초로 실전에서 달성한 대단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반 접근 전략은 2000년대 들어 중국군이 크게 성장하자 중국군의 태평양 작전 전략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그 개념 자체는 사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해군 전략이었다. 상대방의 군함과 함대보다 약하다면, 함대와 함대가 정면 대결을 하지 않고 함대가 대응하기 힘든 땅이나 하늘에서 적 함대를 공격하여, 적이 함부로 우리의 바다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는 개념이다.
물론 이것은 절대 쉬운 개념이 아니며 대부분 해전에서 전투력이 약하고 규모가 작은 함대는 규모가 큰 함대에 일방적으로 공격받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스텔스, 극초음속, 그리고 인공위성과 레이더 기술이 발달하자 ‘지상에서 바다를 요격하는’ 개념이 현실화한 것이 이번 모스크바함 침몰 사건이다.
모스크바함은 구소련의 슬라바급 순양함 중 한 척으로, 배수량이 1만 1490톤으로 미국 해군의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급 이지스함보다 크고 우리 해군의 세종대왕함과 거의 같은 대형 전투함이다. 3M70 불칸(Volkan) 초음속 대함미사일 16발, 각종 대공 미사일 100여발을 장착한 그야말로 ‘바다의 요새’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강력한 공격력을 지녔다.
그런데 이런 ‘흑해 최강’ 모스크바함을 격침하는 데에는 불과 트럭 1대에 실린 미사일 4발로 충분했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RK-360MC 넵튠(Neptune) 미사일이 그것이다.
넵튠 미사일은 우크라이나의 우크로보론프롬(Ukroboronprom)사가 개발하여 2021년부터 배치가 시작된 최신 미사일로, 미사일 발사대와 탐지 레이더, 지휘차량이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해군은 원래 5세트 구매를 요청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3세트만 구매 계약을 맺을 수 있었고, 그나마 COVID-19로 회사 직원들 70%가 주 1일 근무하여 현재 시점에는 오직 1세트만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1세트, 즉 미사일 4발이 쉽게 말해 ‘대첩’을 이뤄냈다. 미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모스크바함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약 12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하며, 우크라이나는 바이락타르(Bayraktar)TB-2 드론으로 모스크바함의 주의를 끄는 사이에 미사일 4발을 발사했고 그중 2발이 모스크바함에 명중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미사일 트럭 1대가 1만 톤짜리 군함 하나를 격침한 것이다.
이는 엄청난 성과로, 최초의 대함미사일이 발명된 이후 가장 큰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1982년 포클랜드 분쟁 등 과거에도 대함미사일이 군함을 침몰시킨 사례는 많지만 1만 톤급 군함이 미사일로 격침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우선 미국 해군의 정보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미국 해군은 피격 이후 흑해에 P-8A 포세이돈(Poseidon) 해상초계기로 모스크바함이 불에 타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대 해전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위치를 숨기는 것이 가장 좋은 전법인데, 기초부터 어긋난 셈이다.
또한 모스크바함에 탑재된 100발 가까운 대공미사일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스크바함은 냉전 시대에 건조된 함선으로, 대규모 미사일 공격에 대비는 되어 있으나 넵튠 미사일과 같은 저공비행 표적에 잘 대응하지 못했고, 전투함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방위산업의 부족한 실력이 치명적인 결과를 만든 셈이다.
이제 전 세계의 그 어떤 군함도 접근 거부 전략의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은 명백하다. 실제로 북한이 공개한 적 있는 KN-19 지대함 미사일은 미사일의 크기와 형태, 사거리와 속도가 우크라이나 넵튠 미사일과 거의 비슷하고,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우크라이나 기술로 이 미사일을 만들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해군 함대도 반접근 대응능력(Anti-A2/AD)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핵심 능력은 지상의 적 대함미사일을 찾아내고 공격 가능한 무인 비행기 혹은 고정익 함재기로 적 해안의 미사일 트럭을 공격하고, 인공위성 및 우주작전 능력을 갖춰 기습공격을 막는 것이다. 또한 현재 배치된 초음속 지대함 미사일 등 ‘한국형 접근 거부 전략(Korea A2/AD)을 발전시켜 주변국 항공모함이 우리 바다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숙제도 안게 됐다.
우리 군과 국방부가 이번 사건에서 큰 교훈을 얻고, 적절한 전투력을 갖추어 우리 바다와 함대를 수호할 힘을 가지길 바라본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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