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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이 우리에게 남긴 것

넷플릭스가 유영철 사건을 주목한 이유…'악마' 이야기 대신 그를 쫓던 사람들과 당시 사회상 반영

2021.11.12(Fri) 10:25:44

[비즈한국] 넷플릭스에서 처음으로 한국 범죄 소재를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만들어 내놨다.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레인코트 킬러)는 2004년 붙잡힌 연쇄살인사건 범인 유영철을 소재로 한다. 한국에 사이코패스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20명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에 충격을 준 인물이다. 영화 ‘추격자’의 모티프가 되어 지금까지도 대중에게 생생하게 각인된 인물을, 왜 넷플릭스는 주목했을까?  

 

넷플릭스 최초로 한국 범죄를 소재로 다룬 다큐멘터리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 한국인 스태프도 참여했으나 주요 스태프진이 외국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특유의 기승전결이나 강렬한 신파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미국 다큐 전문 감독 겸 프로듀서인 롭 식스미스가 시리즈의 총책임(쇼 러너)을 맡고, 한국계 캐나다인 존 최 감독과 공동 연출한 다국적 프로젝트 ‘레인코트 킬러’는 익숙한 느낌의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우선 유영철을 소재로 하여 그의 진술과 기록을 1인칭 관점으로 내레이션으로 담기도 하지만, 레인코트 킬러는 유영철이라는 범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를 쫓던 당시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유영철이란 존재가 대한민국에 출현한 의미와 당시 사회 시스템의 허점에 더 주목한다. 흔히 말하는 ‘악마의 서사’ 같은 건 없다는 소리다. 악마의 이야기 대신 당시 그를 쫓던 담당 형사들, 프로파일러, 과학수사대 요원, 기자, 검사, 변호사, 피해자 유족, 심지어 유영철의 주 타깃이었던 성 노동자의 육성을 바탕으로 유영철 사건은 물론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6·25 이후 짧은 시간 안에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 사회. 유영철이 범죄를 저질렀던 2000년대 초 한국 사회는 빈부 격차와 계급 문제가 심화하며 이전에 볼 수 없던 묻지 마 연쇄살인이 등장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롭 식스미스 감독은 유영철을 소재로 다큐를 만든 이유에 대해 “이 작품을 에워싸는 수많은 테마가 있다. 프로파일링 기법의 탄생, 경찰 수사 기법, 정의, 사회학, 계급 문제, 그리고 밀레니엄의 시초에 아주 흥미로운 도시였던 서울에 관한 이야기”라며 “그로테스크하거나 범죄를 추앙하는 것이 아닌 지적인 이야기를 통해 유영철 사건과 관련한 이슈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나 그를 체포하기 위해 노력한 관계자, 사건의 뒤에 실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3부작으로 구성한 ‘레인코트 킬러’는 그의 의도에 명확히 부합한다. 지독하게 부패해 지문이 훼손된 사체에게 혼신의 염원을 담아 말을 걸며 161번이나 지문을 채취한 끝에 결국 신원 확인을 한 과학수사대 요원, 유영철에게 살해당한 큰형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죽을 시도까지 여러 번 했던 피해자 유족 등, ‘사람’에 주목한 것은 분명 이 다큐의 남다른 점이다. 악명 높은 사건이 일어나면 언제나 세간의 시선은 범죄자에게 쏠리지, 그를 잡기 위해 오랜 시간 고생하는 사람들, 평생 갈지 모를 아픔을 안은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전무하니까. 

 

유영철을 직접 면담해 심리를 분석했던 권일용 프로파일러와 한국 최초 여성 과학수사대 요원으로 당시 유영철 사건 현장의 감식을 담당했던 김희숙 현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장. 레인코트 킬러에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여러 당사자가 출연해 생생한 증언을 들려준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러나 짧은 3부작 안에 너무 많은 사람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기 때문일까. 범죄자에 가려진 사람들을 담아냈다는 의미 외에는 뒤죽박죽 모호한 느낌이 강하다. 특히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경찰들의 실수담을 보다 보면 이 다큐가 당시 경찰의 무능함을 극적으로 풍자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프로파일링 기법은 물론 사이코패스라는 개념도 희박했던 데다 지금과는 비교하기 힘든 허술한 시스템의 2000년대 초반임을 감안하더라도, 보도방 업주의 제보로 우연히 검거한 유영철을 홀로 두었다가 그가 탈출한 뒤 11시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붙잡은 에피소드를 영웅담처럼 늘어놓는 모습이나 유영철 탈출 뒤 실수를 감추기 위해 담당 검사에게 풀어준 것으로 석방 영장 심사를 부탁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날 지경이다. 

 

유영철 사건 이후로 체계화된 수사 시스템 변화가 이 사건이 준 업적(?)이라고 봐야 한다는 점이 씁쓸하기 그지없다. 인터뷰이로 출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날의 감정에 맞춰 진솔하게 담아내고자 했던 의도는 알겠으나 저마다의 관점으로 하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다 보니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인지라 섬세한 편집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CCTV가 많지 않았던 2000년대 초였으나 극적으로 발견된 유영철의 뒷모습. 이 뒷모습과 현장에 남긴 족적의 내용이 공개 수배되면서 유영철은 부유층의 집에 침입해 살인을 저지르던 것에서 자신의 집으로 출장 마사지사 등 젊은 여성을 불러 살해하는 것으로 패턴을 바꾸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현장 검증에서 입고 있던 우비를 별칭으로 부여한 자극적인 제목과는 달리 ‘레인코트 킬러’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범죄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워낙 유영철의 살해 수법과 유기 방식이 끔찍했던 만큼 참혹했던 현장 사진과 자료 영상들이 불편하게 여겨질 수 있다. 또 3부에서 도드라지는 경찰의 무능함 때문에 기승전결이 확실한 이야기를 원하는 시청자들은 혼란을 느낄 법하다. 

 

전례 없던 형태의 연쇄살인사건에 경찰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범인이 우리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는 허탈한 목소리도 들린다. 다만 유영철 사건이 시스템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모두 같은 의견. 요즘 서울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 대부분은 해결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란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물론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레인코트 킬러’를 시청할 만한 의의는 있다. 다큐를 본 뒤 늦은 새벽까지 유영철 사건처럼 시대를 관통한 한국의 강력범죄 사건(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지존파 사건, 막가파 사건,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등)들이 궁금해져 다시 들쳐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그 사건들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또는 피해자 유족에 대한 배려나 제도가 허망할 정도로 미비하다는 걸 알게 됐다. 자극적인 키워드로만 기억하던 강력범죄사건에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고 보완해야 하는지 상기시킨다는 점이 ‘레인코트 킬러’에서 내가 찾은 의의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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