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인근 플랫폼 P 앞에서 만난 남창우 주식회사 동네서점 대표(남반장)은 다소 곤란해 보였다. 인터뷰하기로 했던 2층 공용공간의 예약이 꽉 찼기 때문이다. 우두커니 선 기자를 데리고 남반장은 경의선 책거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몇 군데 전화를 돌려보더니 한 서점에 들어서 익숙하게 인사를 하며 테이블을 옮겼다.
출판사, 작가, 디자이너, 스타트업 창업자 등 여러 출판문화 관계자들이 입주한 플랫폼 P는 마포구에서 설립한 창작공간이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은 1년 전 이곳에 입주했다. 마포구는 출판사들이 밀집한 데다 경제 인구가 많아 독립서점도 많다. 이 동네엔 이후북스, 헬로인디북스, 땡스북스 같이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독립서점들이 있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은 데이터로 이들을 연결한다. 남반장은 “홈페이지에 소개된 ‘로컬컬처 플랫폼’은 지향점”이라며 “아직은 독립서점 데이터를 기반으로 온·오프라인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도서를 생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독립서점은 일반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중·소형서점을 말한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은 단순히 책만 파는 게 아니라 이웃과 취향을 공유하는 소통의 공간이라는 의미로 ‘동네서점’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전국의 독립서점은 2021년 10월 기준 700개가 넘는다. 독서 인구는 계속해서 줄고 대형서점마저 위기를 말하는 시대지만 독립서점은 유행 지난 문화 트렌드에 머물지 않는다. 팬데믹 시기에도 변화하고 적응하며 굳건히 살아남은 독립서점과 이들을 연결하는 플랫폼, ‘주식회사 동네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웹서비스 기획자가 독립서점에 꽂힌 까닭
남반장은 10년 넘게 웹서비스 기획자로 일했다. 우연히 방문한 도서전에서 독립출판 시장의 가능성을 본 뒤 2012년 창업하면서 SNS 사진으로 포토북을 자동 출판해주는 앱을 개발했다. 하지만 예상만큼 시장은 커지지 않았고, 앱 사업도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 2015년 구글 지도를 활용해 독립출판물 서점 70여 곳을 수록한 ‘동네서점지도'를 만들었고, 그게 반응이 좋아 여기까지 왔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은 1인 기업으로, 프로젝트 단위로 디자이너나 에디터가 모이는 구조다. 메인 서비스인 동네서점지도는 제보가 들어오면 책 판매 여부와 실제 있는 공간인지, SNS는 운영을 하는지 등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해 일요일마다 업데이트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독립서점 외에도 책 읽기 좋은 곳(문화공간), 작은 도서관, 공공도서관 데이터도 모였다.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더욱 디테일한 분류도 가능해졌다.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커피차가 있는 서점, 독립출판물 서점, 인문사회과학 서점, 예술 서점, 술이 있는 서점, 큐레이션 서점, 전시공연이 있는 서점 등의 취향 카테고리를 선택해 검색할 수 있다. 글쓰기 모임, 묵독 모임, 북토크, 공간 대여, 독서 모임 등 활동에 따른 카테고리 분류도 있다.
대부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간을 알리고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독립서점의 특징을 집어 이를 기반으로 한 ‘소통지수’도 만들었다. 인터뷰 날짜 기준 전국의 책방 가운데 소통지수가 가장 높은 서점은 부산 중구의 ‘주책공사’다. 주책공사의 인스타그램 게시글 하트 수는 기본 1000개가 넘어가며, 댓글 100개가 넘는 게시글도 수두룩하다. 유명 브랜드 못지않은 인기다.
이 데이터는 지난 6년간 제주, 인천 등 지역별 접이지도나 가이드북, ‘모여봐요, 동네책방 문화사랑방’, ‘여행자의 동네서점’ 같은 종이책으로 출간됐다. 유명작가의 신간을 한정판 커버로 출시하는 ‘동네책방 에디션’처럼 대형서점과 독립서점의 협업이 늘어난 만큼 출판 업계에서도 인지도와 분위기 등을 파악하기 위해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게 남반장의 분석이다.
#동네서점은 마지막 문화 대피소
주식회사 동네서점이 전국 106개의 책방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21 동네서점지도 수요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전국 독립서점의 평균 매출은 32.3%가량 감소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동네 서점들은 책방 운영 외의 수익사업 활동에 집중하거나 SNS 홍보를 통해 온라인 모객 활동을 강화하고, 큐레이션과 정기구독, 굿즈 상품 개발 등으로 오프라인 서비스에 대한 고민도 풀어냈다.
남반장은 “동네서점은 마지막 문화 대피소 같은 곳이다. 코로나19에도 매출이 하락한 매장 비율이나 폐점률이 높지 않다. 온라인으로, 혹은 소규모 모임 중심으로 고민하고 변화한 까닭이다. 이미 책을 많이 읽는 헤비 유저는 알아서 잘 찾고 읽기 때문에 개입의 여지가 별로 없지만, 그보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독서 인구를 늘리는 것은 모든 출판인의 과제다. 동네서점은 그걸 가장 가까이에서 수행하는 공간”이라고 전했다.
‘돈은 어디서 버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반장은 웃으며 “정부 지자체 용역 사업을 받아 인건비를 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주식회사 동네서점에게 중요한 분기점이다. 다음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회사도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퍼니플랜’에서 법인 ‘주식회사 동네서점’으로 전환했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은 ‘북클럽 커뮤니티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남반장은 팬데믹 이후 이런 소규모 문화 모임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질 것으로 본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수도권 중심으로 유료 북클럽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독립서점은 책을 기반으로 한 오프라인 공간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모임 공간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줌(zoom)과 같은 화상회의 서비스를 활용한 온라인 독서모임과 북클럽을 운영하는 서점도 늘었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은 이들을 한데 모아 중개하고 연결하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어떤 책방이 살아남던가?”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남반장은 “살아남는 게 강한 것”이라고 답했다. “유명인이 운영한다고, 공간을 멋들어지게 꾸며놓는다고 지속 가능성이 생기는 건 아니다. 결국 책방지기가 이 일을 얼마나 하고 싶어하는가, 얼마나 끈기 있게 책방을 운영해나가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책방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손에는 두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남반장이 준 책 ‘여행자의 동네서점’(구선아)과 인터뷰를 한 책방의 책방지기가 쥐어준 철학책 ‘왜 당신들만 옳고 우리는 틀린가?’(다케다 세이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양손에 들린 책 덕분인지 그다지 춥지 않았다. 독립서점이 대형서점과 다른 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책과 함께 건너온 마음’이 아닐까.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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