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Story↑Up > 라이프

[신짜오 호찌민] '그 많던 오토바이 어디로' 외출 금지 봉쇄령에서 살아남기

아들의 자작 생일 케이크에 뭉클…천신만고 끝에 맞은 백신은 '시노팜'

2021.09.21(Tue) 14:22:37

[비즈한국]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빠(남편)의 생일 축하합니다.” 

 

지난달 말, 외국 땅에서 생일을 맞았다. 아내와 아들은 잊지 않고 내 생일을 축하해줬다. 독특한 생일 케이크가 식탁 위에 놓여있었다. 커다란 팬케이크 위에 엄청난 양의 생크림과 엠엔엠(m&m)이 장식돼 있었다.

 

“웬 케이크?” 

 

코로나로 인한 도시 봉쇄 상태라 케이크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호찌민의 도시 봉쇄령으로 일반인은 외출 자체가 금지 상태다. 사진=김면중 제공


“아들이 아빠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만들자고 보채서 오늘 아들이랑 함께 만들었어.” 

 

알고 보니 아들의 온라인 수업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하루 종일 만든 ‘사랑의 케이크’였던 것이다. 고마운 마음에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케이크를 한입 물고는 더 이상은 먹지 못했다. 차게 식은 웰던(Well-done) 스테이크처럼 질기고 퍽퍽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음, 맛있는 걸?” 하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는 조용히 포크를 내려놓았다. 대신 생일을 맞아 아내가 차려준 홍합 미역국과 오징어 볶음은 후딱 해치웠다.

 

아들은 자기가 만든 케이크라고 나름 케이크를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워낙 큰 케이크라 거의 4분의 3 정도가 남은 상태. 빵과 크림이 귀한 때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과 나눠 먹으려 했는데 보기에도 좋지 않고 많이 퍽퍽해 포기하려던 찰나, 그 이웃은 “뭔 소리냐?”며 받아가서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분은 식재료를 구하기 힘든 일종의 식량난에 처한 상황이었다.​ 

 

아들이 아빠의 생일을 위해 직접 만든 케이크. 사진=김면중 제공


8월 18일 마침내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외국인이어서 ‘과연 우리에게 백신 맞을 기회가 올까’라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특별히 신청해서 접종할 수 있게 해 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파트 거주민 중 백신을 신청한 사람은 우리 부부뿐이었다고 한다. 백신 맞을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런 봉쇄 상황에서 택시 예약도 해주고, 전담 동행 직원까지 배정해줬다.

 

“아, 밖으로 나와 본 게 정말 얼마만이야?” 

 

강력한 도시 봉쇄가 진행 중인 이 도시를 택시를 타고 누비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 많던 오토바이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건지, 거리는 한산했지만,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감격적이었다. 거리 중간 중간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경찰들이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별문제 없이 접종 장소까지 도착하나 싶었는데, 우리의 택시도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무서운 표정의 공안이 뒷자리의 우리 부부를 가리키며 뭐라고 했지만, 다행히 동행한 직원이 우리의 백신 접종 관련 서류를 준비해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백신을 접종하는 훙브엉(Hung Vuong) 고등학교에는 백신을 맞으려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괜히 백신 맞으려 왔다가 여기서 코로나 걸리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차이나타운이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중국인들이 많았다. 그래도 외국인도 차별하지 않고 백신을 접종해주는 베트남 정부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중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여서였을까? 우리가 맞은 백신은 중국산 백신인 시노팜(Sinopharm)이었다.

 

중국산 백신 시노팜을 맞았다고 하자, 지인들은 SNS에 걱정 어린 코멘트를 남겼다. 사진=김면중 제공


시노팜을 맞았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적지 않은 친구들이 살짝 걱정 어린 코멘트를 남겼다. ‘물백신이라던데 괜찮겠냐’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긍정적 인간형이다. “부작용도 거의 없고 좋지 않냐”며 스스로 정신승리를 했다. 주사기가 팔에 들어올 때조차도 따끔한 느낌이 없었을 정도였으며, 이후에도 부작용 비슷한 증상은 느끼지 못했다. 2차 접종까지 다 마쳤는데, 접종 당일 휴대전화 문자로 접종 증명서를 보내줬다. 봉쇄가 해제되면 ‘비장의 무기’가 될 증명서라고 생각해 잘 캡처해 보관해 뒀다. 우리 부부의 백신 접종은 실로 무난하게 이뤄졌다. 아내의 접종 증명서에 국적이 ‘북한’으로 나온 것만 빼고는 말이다(이후 바로 수정 신청해 해결했다).  

 

호찌민의 강력한 도시 봉쇄는 아날로그 인간인 나를 완벽히 ‘디지털화’시켰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줌(Zoom)’을 이용해 재택근무 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던 나는 이제 줌은 물론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즈(Teams), 구글의 미트(Meet)까지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줄 안다. 이번 달부터 호찌민외국어정보대학교 한국학과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아직 캠퍼스에 가본 적이 없다. 대신 집에서 팀즈를 이용해 약 50명 규모의 3개 반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엔 ‘내가 과연 온라인 수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며 수업 전날 잠도 설쳤는데, 2주가 지난 지금은 꽤 여유 있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는 구글 미트를 이용해 베트남어 수업을 듣는다. 코로나 때문에 자국으로 돌아간 일본 친구와 인도 친구도 디지털 기술 덕에 머나먼 곳에서 강의에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가 종식된 후에도 이런 비대면 수업이 계속된다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기왕이면 현지 선생님이 운영하는 수업을 계속 듣고 싶다. 아들 녀석은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줌을 이용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다. 아내 역시 비대면 회의를 하는 게 일상화된 지 오래다. 코로나 덕에 우리 가족은 비자발적이지만 디지털 인류로 거듭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강력한 도시 봉쇄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TV 시청시간이 늘었다. 잊지 못할 케이크를 맛본 내 생일날 출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그날 밤 모두 다 봤다. 너무 재미있게 봐서 그다음 날에는 같은 감독이 연출한 ‘차이나타운’과 ‘뺑반’까지 다 봤다. 심지어 20년 전에 나온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퍼시픽’까지 다 봤다.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시금 보며 ‘그래도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던 저 때보다는 지금이 낫지’ 하며 작금의 상황을 긍정했다. 최근에는 ‘오징어게임’이라는 새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조만간 끝장내지 않을까 싶다.  

 

본의 아니게 온 가족이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야 했지만, 아들은 신난 표정이었다. 사진=김면중 제공


넷플릭스 보는 시간만 늘어난 게 아니다.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즐기는 시간도 늘었다. 아침에는 ‘뉴스공장’과’ 뉴스쇼’를 점심 때는 ‘매불쇼’를, 저녁에는 ‘한판승부’를 챙겨 본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한국 돌아가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 지금 당장 검찰 고발 사주나 화천대유 이슈를 물어보시라. 누구보다 잘 설명할 자신이 있다. 한창 뜨거워진 대통령 경선 토론도 거의 다 챙겨보고 있다. 주말이면 손흥민과 황희찬, 이강인이 선발 라인업에 들기를 고대하며 스포츠 채널을 틀곤 한다. 

 

책 읽는 시간도 늘었다. 10여 년 전 사놓고는 책장에 묵혀 둔 하루키의 ‘1Q84’ 세 권을 최근 다 읽었다. 몇 주 동안 아들이 잠든 밤 시간에 멋진 여주인공 아오마메의 활약을 보면서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의 여주인공 ‘도쿄’ 이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군' 생각하며 꽤 재밌게 읽었다. 

   

이곳의 도시 봉쇄는 워낙 강력하다. 한두 달 전까지는 동네 마트까지는 다녀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외출 자체가 금지다. 모두가 답답하고 우울해하고 있을 터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장점도 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요즘이 처음이다. 아마 앞으로도 가족끼리 이렇게 붙어있는 기회가 오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래서인지 요즘 아들 녀석의 표정은 꽤 밝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친구도 만나지 못해 우울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녀석은 종일 엄마 아빠와 함께 있어서 좋은가 보다.  

 

아들의 행복이 지속되길 바란다. 하지만 내년 생일에는 아들이 만들어준 케이크 말고 파리바게트에서 산 맛난 케이크를 먹고 싶다. 

 

김면중은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에 입문, 남성패션지, 여행매거진 등 잡지기자로 일한 뒤 최근까지 아시아나항공 기내지 편집장으로 근무했다. 올해 초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도시인 베트남 호찌민에 머물고 있으며, 9월부터 호찌민외국어정보대 한국학과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김면중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부동산 인사이트] 오피스텔 공급 확대? 주상복합 지으면 안 되나
· [신림동 전세사기①] '담보신탁' 원룸 소유권 갈등에 청년층 23세대 보증금 날릴 판
· [신림동 전세사기②] 고시촌 꼭대기에서 희망을 빼앗기다
· 사이판여행 예약 수천 명, 여행사 정상근무 돌입…아직은 희망보단 '기대감'
· [단독] 정신감정 앞둔 조양래 회장, 미성년 손자에게 169억 원대 상가 증여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