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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전세사기①] '담보신탁' 원룸 소유권 갈등에 청년층 23세대 보증금 날릴 판

전세 보증금으로 건축비 갚는 담보신탁 했다가 뒤탈…세입자들 "중개업자가 신탁 말소 영수증 받아준다고 해 계약"

2021.09.20(Mon) 14:26:24

[비즈한국] “현재 귀하는 불법으로 본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으므로 점유 해제를 요청드립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E 원룸 23세대 세입자는 8월 27일 금융사(2금융권)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협조문을 받았다. 세입자가 부동산을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으니 2주 안에 이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기간 내 이사하지 않으면 명도소송을 진행하고 소송비용도 부담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집주인과 임대차계약을 맺은 줄 알았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불법점유자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서울 관악구 신림동 E 원룸(사진) 23세대 세입자는 8월 27일 금융사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협조문을 받았다. 사진=임준선 기자

 

#보증금만 20억 여원, 임대차 계약 맺은 A·B 씨 소유권도, 임대할 권리도 없어

 

E 원룸은 서울대 상권인 녹두거리 남쪽 언덕길에 위치했다. 값싼 임차료로 인근에 대학이나 직장을 둔 20·30대 사회초년생이 주로 모이는 동네다. 50대 부부인 A 씨와 B 씨는 2018년 6월 이곳에 원룸 두 동을 지었다. 세대 당 평균 면적은 27.25㎡(8.24평) 남짓. 한 동은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 15세대, 다른 한 동은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 12세대로 조성됐다. 소유권은 A 씨와 B 씨가 한 동씩 나눠가졌다.

 

퇴거 요청을 받은 E 원룸 23세대 세입자는 건물을 지은 두 사람과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A, B씨는 이들과 2019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임대차계약서를 썼다. 계약기간은 1~2년 남짓, 세입자는 대부분 20~30대 청년이었다. 퇴거 요청을 받은 세입자 보증금은 25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금융사가 보낸 협조문 내용. 사진=제보자 제공


세입자들과 임대차계약을 맺은 두 사람은 E 원룸 소유권이 없었다. 집주인이던 A 씨와 B 씨는 건물 준공 일주일 뒤 소유권 보존 등기와 동시에 부동산을 담보신탁했다. 담보신탁은 부동산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는 금융상품이다. 분양 대금으로 채무를 변제하면 소유권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은행권 부동산담보대출보다 많은 자금을 싼 비용으로 조달할 수 있다. 현재 신탁이 말소된 곳은 27세대 중 4곳에 불과하다.

 

담보신탁한 원룸을 임대하려면 소유권을 가진 신탁사와 돈을 빌려준 금융사(은행 등) 동의가 필요했다. E 원룸 신탁원부에 따르면 부동산 담보신탁을 맡긴 사람은 신탁사와 금융사 동의 없이 임대차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신탁사는 신탁계약에 따라 소유권 관리 업무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임대차 관련 업무에 대해 신탁을 맡긴 사람이 책임을 지는 조건으로만 임대차에 동의하기로 했다. 

 

신탁사와 금융사는 E 원룸 임대차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E 원룸 담보신탁 업무를 수행한 교보자산신탁 관계자는 “E 원룸 임대차계약에 동의한 사례가 없다. 우선수익자인 금융사가 동의하지 않으면 저희 스스로가 동의할 리는 더욱 없다. 신탁 계약에 따라 E 원룸을 임대하려면 신탁사와 금융사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이런 절차 없이 위탁자가 불법으로 건물을 임대한 것으로 보인다. 퇴거 요청을 받은 임차인 역시 불법 점유자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담보신탁에 따라 A·B 씨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사 관계자도 “지금까지 E 원룸 임대차계약에 대해 동의한 적이 없다. 3~4개월 전부터 채무자로부터​ 채권 회수가 되지 않아 최근 담보물 매각을 염두에 두고 현장을 방문했고, 세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임대할 권리가 없는 사람과 임대차계약을 맺은 불법점유자이기 때문에 퇴거를 요청했다. 명도소송을 진행하기에 앞서 소통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험 고지해야할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안심시키며 사태 키워 

 

퇴거 요청을 받은 E 원룸 23세대 세입자는 모두 공인중개사를 통해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E 원룸을 임대할 권리가 없던 두 사람이 세입자들과 임대차계약을 맺은 것은 공인중개사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세입자들의 주장이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개업공인중개사는 중개의뢰인에게 부동산의 권리 관계, 이용 제한사항 등을 근거자료와 함께 성실·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한 세입자는 “부동산 중개 플랫폼을 통해 공인중개사와 접촉해 A 씨 건물을 확인했다. 집을 보러 다니고 가계약금을 넣을 때까지만 해도 중개사는 신탁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계약 당일 신탁원부를 보여주며 읽어줬지만, 방대한 서류를 자세히 살필 시간도 없이 서명해야 했다. 중개사는 ‘신탁으로 대출을 받는 것은 신용이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가 공인 자격증을 가진 공인중개사의 말을 믿었다”고 토로했다.

  

다른 세입자는 “공인중개사가 계약 당시 신탁 등기 말소 영수증을 받아준다고 해서 안심하고 계약금을 넣었다. 잔금을 치르기 전에 다시 ​중개인에게 ​‘신탁 등기 말소가 언제 되냐’고 물었더니 ‘잔금을 먼저 입금해야 신탁등기를 말소할 수 있는 돈이 생긴다며 잔금을 먼저 입금하라’는 답을 받았다. 잔금을 납부했지만 신탁등기는 해제되지 않았다. 퇴거 요청을 받고 중개사에 연락하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고, 계약에는 문제가 없다’는 답을 줬다”고 전했다.

 

비즈한국은 E 원룸 임대차계약을 가장 많이 중개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세 곳에 수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A 씨 측은 임대차계약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A 씨는 비즈한국과 통화에서 “퇴거 협조문은 아무 의미 없다. 이자 몇 개월 밀렸다고 은행(금융사)에서 그렇게 세입자를 공갈 협박하면 되겠나. 신탁원부 특약조항을 보면 임대차 업무를 내가 보게 되어 있다. 그동안 내가 세금을 냈는데 내가 주인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신탁원부에) 정확히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안 적혀 있다. 신탁사는 소유권 이전 업무만 하게 되어 있다. 나머지는 다 내 책임이다. 신탁사와 나, 서로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 씨는 전세금 반환 계획에 대해 “(계약 만료 돼서 나가기를 원하는 세입자가) 겨우 2명이다. 순차적으로 빼주겠다고 했다. 경기가 안 좋고 코로나 때문에 세가 나가지 않는 상황을 내가 잘 설명했다. 부동산에 빨리 팔아달라고 조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입자가 살고 있는 원룸이 경매에 부쳐지더라도 전세금을 돌려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입자는 부동산에 임차 등기를 하지 않더라도 △전입신고를 마치고 △임대차계약증서에 확정일자를 받아 △점유를 시작할 때부터 전세금을 법적 채권으로 인정받는다. 이번에 퇴거 요청을 받은 E 원룸 세입자 대부분은 이런 요건을 갖췄지만, 애초에 임대할 권한이 없는 사람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채권을 주장할 수 없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임대 권한이 없는 사람과 계약을 맺은 경우 임차인이 임대차보호법으로 전세금을 보호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신 임대 권한이 없는 사람을 그 권리가 있는 것처럼 속였다면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를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 고의나 과실로 중개사고가 발생할 경우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발행하는 공제증서로 먼저 피해를 보상받을 수도 있다”며 “전문자격증을 가지고 현장에서 누구보다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공인중개사의 위험 고지 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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