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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전쟁의 현장에서 평화를 꿈꾸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있던 곳…포로들 당시 생활, 폭동 등 모형으로 재현

2021.09.07(Tue) 17:44:55

[비즈한국]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에는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이듬해 세워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는 최대 17만 명의 전쟁 포로들이 있었단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70여 년이 넘었지만, 이곳에는 포로를 감시하던 경비대 막사와 경비대장이 일하던 방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런 유적들을 중심으로 전쟁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물들을 더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만들어졌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디오라마관에는 포로수용소의 당시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사진=구완회 제공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세워진 까닭은?

 

표를 끊고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탱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사용한 소련제 탱크 모양으로 만든 전시관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가파른 에스컬레이터 양쪽으로 한국전쟁의 주역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오른쪽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선두로 대한민국과 미국 측 인물들이 줄지어 있고, 왼쪽에는 김일성을 비롯해서 소련과 중국 쪽 사람들이 도열했다. 그때 그 현장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탱크전시관을 나와 조금 걸어가니 소련제 탱크를 몰고 38선 철조망을 넘는 북한군의 모습이 보인다. 북한군이 38선을 뚫고 기습 공격을 시작한 시간은 새벽 4시 40분경. 북한의 김일성은 차근차근 전쟁 준비를 해왔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부분 잠이 들었을 시각이다.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등 군 지휘관들마저 6월 25일 새벽까지 술판을 벌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니, 북한군이 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사용한 소련제 탱크 모양으로 만든 탱크전시관. 사진=구완회 제공


탱크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한국전쟁 주역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오른쪽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선두로 대한민국과 미국 측 인물들이, 왼쪽에는 김일성과 소련·중국 쪽 인물들이 도열했다. 사진=구완회 제공


이어지는 디오라마관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당시 모습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언뜻 봐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거제도에 포로수용소를 만든 것은 이곳이 면적이 큰 데다 물이 풍부한 섬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방이 바다로 막혀 있으니 탈출이 쉽지 않고, 물이 풍부하니 많은 포로들을 수용할 수 있었던 거다.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때는 다리가 없었다. 

 

포로들의 일상생활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포로생활관을 봐야 한다. 자기들끼리 규칙을 정하고 생활했던 포로들의 일상을 사진과 모형, 동영상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포로들끼리 규칙을 정했냐고? 전쟁 포로에 대한 내용을 담은 국제협약인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포로들은 자치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안에서 포로들은 제네바협약에 따라 자기들끼리 규칙을 만들고 자치적으로 생활했다. 사진=구완회 제공

 

#폭동에서 포로 설득까지, 한눈에 보는 전쟁의 비극

 

포로들의 자치 생활은 폭동을 불러오기도 했다. 1952년 7월에 수용소 안의 포로들이 수용소 사령관인 미국 돗드 장군을 납치해서 감금한 것이다. 포로들이 불편을 호소하며 요청한 면담을 받아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사실 거제 포로수용소는 시설에 비해 너무 많은 포로들을 수용해서 생활에 문제가 많았다. 결국 포로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고 돗드 장군을 구출한 미군은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해서 수십 명의 포로들이 죽었다. 이런 내용은 폭동체험관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사실 수용소 사령관 납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의 충돌이었다. 이들의 충돌은 때때로 폭력사태로 번져서 미군이 총을 쏴 진압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포로들의 자치 생활은 폭동을 불러오기도 했다. 폭동체험관에 재현한 당시 모습. 사진=구완회 제공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비극은 철모 모양으로 생긴 포로설득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은 본인의 뜻을 확인했지만 아직 최종 결론을 못 내린 포로들을 남북 양측이 설득하기 위해 마련한 장소다. 이 과정에서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의 충돌이 더욱 빈번해졌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설득 작업에 반대했고, 1953년 6월 18일 남한에 남기를 원한 반공 포로들을 유엔군의 허락 없이 석방해버렸다. 이른바 ‘반공 포로 석방’ 사건이다. 실상은 한국군의 묵인하에 벌어진 탈출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유엔군의 발포로 포로 수십 명이 사망하고 백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옆에는 평화파크가 나란히 붙어 있다. 이곳은 전쟁의 비극과 평화의 가치를 알려주는 공간이다. 어린이 평화정원에서 평화의 상징물들을 살펴보고 평화수호대가 되어 세계 곳곳의 전쟁 무기를 없애는 게임도 할 수 있다. 전쟁의 현장을 본 사람이라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옆에 있는 평화파크. 전쟁의 비극과 평화의 가치를 알려주는 공간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메모>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위치: 경상남도 거제시 계룡로 61

△문의: 055-639-0625

△이용시간: 3월~10월 09:00~18:00, 11월~2월 09:00~17:00, 명절당일, 1·2·3·6·9·10·11·12월 네 번째 월요일 휴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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