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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수 감소에 초점 맞춘 길고양이 중성화 개정안, '동물권'은 어디에

2kg 미만, 임신·수유묘 중성화 허용 논란 "의학적으로 위험"…"캣맘 중심 시스템 마련" 목소리

2021.08.26(Thu) 17:19:15

[비즈한국] 정부가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Trap-Neuter-Release) 대상에 2kg 미만 고양이와 임신묘, 수유묘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동물 복지가 악화한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다. 정부는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최종안을 도출한다는 입장이다. ‘개체 수 감소’가 목적이 아닌 동물권을 지키면서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번 논란은 지난 29일 농림축산식품부가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 요령 고시 개정 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2016년 3월 제정된 후 5년 만에 나온 개정안이다. 정부는 13일까지 지방자치단체와 동물보호단체 등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26일엔 농림부와 동물보호단체 관계자, 전문가 등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정부는 9월 첫째 주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농림부의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개정안을 두고 ‘개체 수 감소’가 목적이 아닌 동물권을 지키면서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개정안 핵심은 몸무게 2kg 미만이나, 수태(임신)와 포유(수유)가 확인된 고양이도 수의사 판단에 따라 중성화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이런 고양이들이 포획될 경우 즉시 방사해야 했다. 또 장마철·혹서기·혹한기 등 외부환경 요인이 있으면 중성화 사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었으나, 이번 개정안은 안전한 포획과 수술, 방사가 이뤄지도록 하고 사업을 지속하도록 했다.​

 

TNR 사업 대상이 확대된 데 대해 정부는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을 이유로 들었다. 길고양이가 많아지면서 소음, 위생상 문제, 기물 파손 등으로 인해 주민 불편이 초래된다는 것. 캣맘(자발적으로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제공하고 보호 활동을 하는 시민)들과 주민들의 갈등이 심화하는 환경도 개정안 추진 배경으로 꼽았다.

 

#사실상 ‘낙태 수술’, ‘생이별’…동물권은 어디에

 

과연 2kg 미만 새끼 고양이와 임신·수유묘에게 중성화 수술을 해도 생존에 문제가 없는 걸까. 동물보호단체가 우려하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우선 2kg 정도의 고양이에 대해 수술을 진행하는 게 의학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무게가 가벼울수록 마취 위험이 높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2kg 미만도 수술이 가능하다고 정할 경우 1kg 전후(2~3개월령)의 고양이도 수술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 김재영 국경없는수의사회 대표(태능 고양이 전문 동물병원장)​는 “나이가 어린 고양이는 면역력과 장기 성숙도가 성묘보다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는 2kg 이상 고양이부터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게 적정하다고 본다. 2kg 정도는 고양이는 생후 4개월령에 해당하는데 이때부터 발정기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발정기가 오기 전 수술을 해야 동물의 스트레스도 줄이고 자궁 축농증 등 호르몬 문제로 생길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따라서 2kg 미만, 생후 4개월도 되지 않은 고양이는 굳이 수술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후 대처를 두고도 우려가 제기된다. 새끼 고양이에 대해서는 수술 후 보호 기간을 ​좀 더 길게 두고 돌볼 필요가 있는데, 중성화 수술 후 수컷은 24시간, 암컷은 72시간 이후 무조건 방사하게 돼 있다. 이 내용은 개정안 전후 차이가 없다. 다만 고양이 상태에 따라 회복 기간을 연장할 경우 ​동물병원에 지원을 강화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점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임신묘의 경우 포획 과정에서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병원에서 마취 후 임신을 확인한다. 임신묘가 건강하다면 마취액이 임신묘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다만 김재영 대표는 “마취 약물은 태반을 통해 전달되는데 태아의 간이 발달하지 않아 약물 분해 능력이 떨어진다면 저산소증으로 사망한다”고 설명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임신묘에 대해서는 72시간 정도의 처치 기간이 충분하다는 의견이 적잖다. 그러나 문제는 ‘동물권’이다. 임신묘에 대해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경우 보통 태아는 사망에 이른다. 오홍근 수의사는 “중성화 수술은 자궁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신묘 중성화 수술은 태아를 폐사시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만삭묘의 경우도 수술하게 되면 병원에서 태아를 살리는 경우가 드물다. 말 못 하는 동물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동의를 거치지 않은 ‘낙태 수술’이 이뤄지는 셈이다.

 

의료계에서는 수유묘도 중성화 수술보다는 방사가 바람직하다는 말이 나온다. 김재영 대표는 “수술 중 절개 부위에서 나오는 유즙이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출산 후에는 자궁이 약해져 있는데 자궁이 찢어지거나 과다 출혈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 경험상 출산 후 두 달 정도 지나 자궁이 정상적인 상태일 때 중성화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유묘는 수술 이후도 문제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보통 반경 2km 안에서 생활하는데, 수술 이후 수유묘를 제자리에 방사한다고 할지라도 수술로 인한 두려움에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 새끼 고양이들의 생존도 보장할 수 없다. 수술을 위해 수유묘를 포획해 데려간 사이 새끼 고양이들이 떠날 수도 있다. 고양이 입장에선 영문도 모르는 ‘생이별’이다.

 

물론 이번 개정안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부분도 있다. 장마철·혹서기·혹한기에도 중성화 수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기존에는 이 시기에는 수술 후 고양이 회복이 더딜 수 있는 탓에 수술을 일시 중단했다. 중성화 수술을 하면 신경이 없는 귀 끝을 자르는데, 특히 혹한기에는 이 부위에 동상이 생겨 염증이 생길 수 있다. 고양이들의 교미 시기는 1~2월에 집중된 경우가 많은데 지금처럼 장마철·혹서기·혹한기를 제외한 3월 중순에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면 이미 임신한 고양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기예보를 참고해 중성화 수술 시기를 유동적으로 정하는 방향이 옳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방사 후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한여름과 한겨울에 수술을 피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캣맘 적극적으로 활용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회 의원회관 주변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 사진=박은숙 기자


그러나 전반적으로 ‘고양이 개체 수 감소’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개정안이 나왔다는 데서 아쉬운 평가가 나온다. 인간과 길고양이 중 인간의 편의에 좀 더 방점을 찍다 보니 윤리적인 부분이 무시됐다는 것. 2kg 미만 고양이, 임신묘, 수유묘에 대해서 중성화 수술을 되도록 금지하는 식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TNR 사업 중 부실한 지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김 대표는 “현재 민원 해결식 TNR보다는 군집 TNR​과 민원 해결식 TNR​을 병행해 인도적이고 실질적인 개체 수 감소를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아예 처음부터 사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미숙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 임시대표는 “정부는 지역 간 편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 등에서는 중성화 수술의 숙련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지방 병원은 시설도 노후하고 경험도 부족하니 수술 이후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방사한 날 곧바로 죽는 고양이도 많다. 예산이 늘어나도 경험이 없는 지방에 사업을 무작정 맡기니 잡음이 발생한다. 중성화 수술 대상이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를 넘어 지역 간 편차를 줄이고 의사들의 수술 실력을 전반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지원을 다각도로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캣맘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안도 고심해야 한다. 황 임시대표는 “우리나라는 캣맘이 전문화·조직화돼 있다. 지자체별로 전문 포획인단을 교육하고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은 수술을 진행하는 수의사, 포획을 하는 민간업체 등이 지원비를 모두 가져간다. 동네에서 고양이를 가장 잘 아는 캣맘을 주체로 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농림부와 동물보호단체 관계자, 전문가들이 함께한 화상회의에서 개정안에 대한 2차 수정안을 만들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2차 수정안 검토 후 20일간의 행정예고를 거칠 계획이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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