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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수술 건강보험 적용',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

교육·상담료 신설 발표 이후 건강보험 논의까지 발전…"늦어질수록 건강·사회적 비용 증가"

2021.06.30(Wed) 11:47:35

[비즈한국] 낙태죄 폐지 이후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입법 공백’ 상태가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가 8월부터 인공임신중절(낙태) 교육·상담료를 신설하고 급여를 적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도가 보완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낙태 건강보험 적용 논의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건강보험 적용에 대해선 법 마련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상담료 신설 발표, 낙태 건강보험 적용 논의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지난 25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정책 최고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낙태 교육·상담료를 신설했다. 지금까지 임신한 여성은 진찰을 받으면서 넌지시 낙태 수술에 대해 물어봐야 했다. 앞으로는 낙태 수술 전후로 의사에게 낙태 수술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교육·상담료는 약 2만 9000원~3만 원으로 정해졌고, 환자는 입원인지 외래인지, 의료기관이 어디인지에 따라 정해진 법정본인부담금을 내면 된다. 나머지 비용은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다.

 

국회가 낙태죄 개정에 굼뜬 가운데 여성 건강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나왔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한 여성에게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200만 원 이하를 선고하도록 하는 형법 제269조(자기낙태죄)와 낙태를 도운 의사에게 징역 2년 이하를 선고하도록 한 제270조(의료인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다.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이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이 상실된다고 선언했다.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사진=비즈한국 DB


시한 내에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1월 1일 자로 낙태죄는 폐지됐고 지금까지 대체 법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낙태죄는 없어졌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낙태 수술을 거부하는 경우가 적잖다. 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는 “자연 유산이 아닌 낙태는 수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낙태죄 폐지 이전과 비교해 현재 임신한 여성들이 피해를 더 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니느라 건강권이 침해되는 건 여전하다. 제때 병원을 못 가면 좀 더 어려운 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낙태 교육·상담료 신설을 좋은 신호탄이라 보는 이들이 적잖다. 이런 가운데 한편에서는 ‘낙태 건강보험 급여’ 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정책팀장은 “지금까지 낙태 수술이나 낙태약 급여화에 대해서 정부는 ‘법이 없어서 논의도 못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런데 상담료는 법이 없는데도 건보 적용이 논의되고 통과됐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어 “법보다 앞서서 급여화를 시도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완전히 상상도 못 한 법이 통과되지는 않을 것이니 예상하는 범위에서 미리 급여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면 대체 입법이 된다 하더라도 곧바로 급여가 적용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집행위원장도 “건강보험 논의가 법이 개정돼야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교육료 수가도 법은 확실하게 개정되지 않았으나 필요에 의해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외국에도 건강보험 적용 범위와 법에서 허용하는 범위는 차이가 있다. 어느 범위까지 급여를 허용할 것인지 법과 맞물려서 가야 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정부 기조나 보건적인 면에서 보면 지금 논의를 못 할 건 없다”며 “산부인과의사회나 학회에서도 임신 10주 이내 여성이 요청할 때 낙태를 허용하는 데는 동의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과 관련된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정부는 건강·상담료와 낙태 수술 건강보험 적용은 다르게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관계자는 “건강보험 적용은 법 개정과 함께 검토하겠다는 게 부서 입장이다. 상담은 시술과 연결이 안 된다. 지금은 시술에 대한 명확한 허용 범위가 없다. 최근 대법원에서 임신 34주 낙태에 대해서 낙태는 무죄지만 살인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국회에서 범위가 정해지기 이전에 건강보험 적용 논의를 하는 건 이르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에 건강보험 적용을 어떻게 할지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늦어질수록 사회적 비용 증가” vs ​수가 낮아 병원서 수술 꺼릴 것

 

여기저기서 낙태 급여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 모든 낙태에 건강보험 급여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 건 아니다. △본인이나 배우자의 유전·전염성 질환 △임부의 건강을 위한 경우 △강간 또는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 혈족, 인척간 임신으로 인한 중절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임신 8주 이내 10만 원, 8∼12주 13만 원, 12~15주 16만 원, 16주 이상 20만 원 정도의 수가가 지급된다. 외래냐 입원이냐에 따라 환자 본인부담률이 결정된다.

 

그러나 사회·경제학적 이유로 인한 낙태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병원마다 수술 비용이 제각각이다. 30만~100만 원을 오간다.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는 이야기는 ‘이 수술에 대한 적정 수가는 이 정도 가격’이라고 국가가 공표하는 셈이라 병원이 가격을 자의적으로 책정하는 관행이 해소될 수 있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비용 장벽 탓에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분들은 임신 중지 주수가 늦어진다. 미국에서는 메디케이드 건강보험 적용을 해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약 2주 차이 났다는 논문도 있다. 안전하지 못한 임신 중지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약물로 가능하던 것이, 늦어지면서 수술을 해야 하고 입원 기간도 더 늘어나게 된다. 결국 사회적인 비용도 늘어난다”며 “개인의 건강이나 보건상으로 봤을 때도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낙태가 합법화된 나라 중에 건강보험 적용을 안 하는 나라는 ​일본 외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 낙태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다만 낙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선 다소 의견이 갈렸다. 나영 집행위원장은 “다른 질병처럼 의료행위에 따라 똑같이 수가를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주수가 얼마인지 등 환자의 상태에 굳이 차등을 둘 필요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윤정원 전문의는 “본인부담률이 조금 더 높은 선별급여라도 일단 급여 시스템 안에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의견을 표했다.

 

이동근 정책팀장은 “낙태 수술과 의약품 모두 급여가 되는 게 맞다. 보통 여성들이 임신 중지를 할 때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에 수술보다는 약을 선호한다. 따라서 특히 의약품은 급여가 필요하다. 주수나 시술 난이도별로 급여를 다르게 책정할 수는 있을 듯하다”며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해선 비용 효과성이 떨어지는 약을 급여에서 퇴출하는 제도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지금은 퇴출하려고 하면 제약사가 소송을 걸어 실제로 거의 활용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건강보험 적용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현재 네 가지 사유로 낙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경우 수가가 관행수가에 비해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있다. 수술하는 병원이 거의 없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다른 낙태에 대해서 비슷한 수가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수술해주는 병원을 더 찾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것”이라며 “또 건강보험 등재를 하면 진료기록에 남아 꺼리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성형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자의적인 선택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체 입법 핵심은 ‘건강권’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나영 집행위원장은 “헌법재판소가 강조한 부분은 국가의 목적에 따라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낙태죄가 폐지된 상태에서 다시 주수 등에 따라 어떻게 제약을 가할지에 초점을 두면 국제사회가 보기에도 한국이 역행한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며 “성·재생산권리를 보장한 기본법의 틀 안에서 의료 접근성과 보건의료 전문성에 관한 내용을 넣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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