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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좋좋소' 중소기업의 중심에서 X같은 현실을 외치다

'미생'은 그저 판타지일 뿐…1700만 직장인의 애환 그린 극강 리얼

2021.04.21(Wed) 10:01:23

[비즈한국]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와, 아직도?”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소름 끼치는 현실 묘사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현타’가 오면서 이마를 짚게 된다. 유튜브에서 공개되고, 왓챠에서 확장판을 볼 수 있는 숏폼 드라마 ‘이과장의 좋좋소’(이하 ‘좋좋소’)를 보다 보면 벌어지는 일들이다. ‘좋소 좋소 좋소기업’의 줄임말인 ‘좋좋소’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기가 막히게 그려낸 드라마(‘좋소기업’이라는 명칭부터 ‘X소기업’을 떠올리게 한다)로, 29세 백수 조충범(남현우)이 ‘정승네트워크’에 취직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유튜버들이 의기투합하여 중소기업의 현실을 담아낸 숏폼 드라마 '이과장의 좋좋소'. 중소기업 경험 콘텐츠를 주로 올리는 유튜브 '이과장' 채널에 업로드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내 OTT 플랫폼 왓챠에도 입성했다. 이 사진은 새로 입사한 이예영(진아진, 사진 오른쪽 위)과 블라디보스톡에 출장 가 있었던 백진상 차장(김경민)까지 완전판 멤버.


정승네트워크는 체계라곤 전혀 없는 열악한 중소기업의 단점을 집약한 회사다. 갑자기 충범에게 당일 면접을 제의하더니 면접 보는 도중 막무가내로 노래를 불러보라는 정필돈 사장(강성훈)은 시작일 뿐이다. 대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새파랗게 젊은 ‘백두혈통’ 정 이사(조정우), 회사 최고참이며 사장의 말에 죽는 시늉까지 하는 ‘회사 노예’지만 존재감이 미미한 이길 과장(유튜브 활동명: 이과장), 회사의 에이스라 불리지만 하루 종일 쇼핑몰 서칭에만 몰두하는 이미나 대리(김태영) 등 인물 면면이 어느 회사 어딘가 있을 법하게 현실적이다. 4년제 대학 영문과를 나왔지만 토익 500점대에 내세울 경력이라곤 골프장 알바 정도인 충범에게, 정승네트워크는 첫 느낌부터 이상하지만 딱히 불러주는 데가 없기에 갈 수밖에 없는 회사.

 

(왼쪽부터) 회사의 실체를 잘 알고 있어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분만 최소한으로 하며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이미나 대리(김태영), 어리버리하게 정승네트워크에 입사해 중소기업의 실체를 알아가는 조충범(남현우), 정승네트워크의 최고참이자 '회사 노예'의 쓰라림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이길 과장(이과장), 꼰대이자 비합리적인 사장의 전형인 정필돈 사장(강성훈), 그리고 아무 능력 없지만 사장의 조카라는 이유로 이사를 맡고 있는 정 이사(조정우). 이 과장과 정 이사는 비전문 배우.


막상 입사하긴 했지만 아침마다 국민체조를 하는 것도 싫고, 이상한 조끼를 입고 사무실 청소를 해야 하는 것도 싫고, 갑자기 퇴근 전에 클라이언트사에 내놓을 아이템을 PPT로 만들라며 야근을 지시하는 불합리함도 싫다.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하니 공고와 달리 갑자기 연봉을 깎는가 하면, 복지라곤 냉장고와 부식거리 정도가 다이니 좋을 리가 없다. 조충범은 1시즌 마지막 화에 해당하는 5화에서 분연히 추노(잠수를 타거나 도망가다)를 감행하지만 결국 다시 정승네트워크로 돌아온다. 문제는 기존에 직업을 다뤘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이 웃지 못할 극악한 현실이 대다수 직장인의 심금을 울린다는 거. 분명 나는 웃고 있었는데, 내 눈가는 찌릿찌릿하다?

 

잠깐 ‘라떼’ 좀 치자면, 나도 작은 규모의 회사를 여럿 다녔는지라 댓글들 반응처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느껴졌다. 다행히(?) 회사가 망하거나 월급을 밀린 적은 없지만 복지라고는 회식이 전부였던 곳을 다녔고, 말없이 마감 시기에 추노를 감행한 막내 기자에게 받지 않는 전화를 연신 걸어 댔으며(펑크 낸 기사는 책임지고 가라고!), 남녀 공용 화장실이 있는 회사를 다니며 눈살을 찌푸리고, 정품 인증 못 받아 경고줄이 뜨는 MS오피스를 쓰곤 했다. 가장 압권은 회사 내에서 대표 부부가 개를 키우던 회사를 다닐 때. 마감 때문에 주말 근무를 하던 중 갑자기 탈출한 개를 잡으러 나갔다 가볍게 손을 물리고 나서야 겨우 개를 데려왔을 때, “사람(외부인)을 안 물어서 다행이네”라고 대표가 웃으며 말했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당시엔 “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술자리 우스갯소리로 안주처럼 씹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일이었다.

 

스펙이라곤 도통 없는 데다 의욕까지 없는 조충범은 어쩔 수 없이 정승네트워크에 입사했다 잠깐 도주, 그러다 다시 재입사한다. 과연 충범은 정승네트워크에서 이 과장처럼 될까? 이미나처럼 될까? 언제까지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어이없는 경험이 나뿐일까? 2019년 조사 결과 국내 기업 중 99%가 중소기업이고, 전체 근로자 중 83%에 해당하는 1700만 명이 중소기업에 다닌다. 물론 모든 중소기업이 극악스러운 것은 아니며 좋은 회사도 많다. 그렇지만 ‘좋좋소’에서 그리는 그 미묘한 뉘앙스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찌릿찌릿하며 PTSD가 느껴지는 것일 게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답일까? 허울이 좋을 뿐 큰 틀에서 직원들이 ‘회사의 노예’처럼 다뤄지는 부분이 많다는 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마찬가지. ‘어차피 노예질 할 거면 대갓집 노예가 낫다’는 지론에 따라 모두가 대기업을 바랄 뿐, 대기업이라고 직장인의 꿈과 희망이 흐르는 곳은 아니다(최근 인터넷상에서 화제였던 블로그 소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을 읽어 보자). 

 

정승네트워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지만 가장 사장에게 만만하게 부려지는 이 과장. '중소기업이 낳은 괴물'이란 뜻의 '중낳괴'를 자처하는 유튜버 이과장이 배우 뺨치는 현실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좋좋소’는 편당 8분가량으로 이뤄진 1시즌 5편을 유튜브 채널에 올리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지난 1월 6일 업로드된 1화는 조회수 221만회(4월 19일 기준)를 돌파했고, 다른 영상들 또한 평균 100만회를 넘어선다. 편당 13분 내외의 10편으로 구성된 2시즌부터는 OTT 플랫폼 왓챠에 입성하여 미공개 장면이 포함된 확장판을 선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한 달간 시청률 상위 5% 작품’에 오른 것은 물론이다. 이런 선풍적인 인기를 끈 ‘좋좋소’는 놀랍게도 방송 전문가들의 손을 거친 작품이 아니다. 코로나19로 본업에 매진할 수 없게 된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이 자신의 경험과 절친한 동료 유튜버 ‘곽튜브’의 경험, ‘중소기업이 낳은 괴물’이란 뜻의 ‘중낳괴’로 유명한 유튜버 ‘이과장’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것. 연출 경험은 물론 각본 경험도 없는 유튜버들이 모여 ‘미생의 현실판’이라며 무한 칭찬을 받는 ‘좋좋소’를 만들어낸 거다.

 

어떤 의미에서 사장보다 더한 빌런인 백진상 차장(김경민). 처음 보는 직원을 면전에 두고 다짜고짜 "얜 뭐에요?" 할 때부터 꼰대임이 드러난다. 반말에 압존법 강요, 사생활 침해 등 할 수 있는 진상 짓은 모두 부린다.


주연 배우 몇몇 외에는 유튜버 등 비전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것도 놀랍다. 제작과 함께 이길 과장을 맡은 유튜버 이과장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 연봉 동결이 되고 망연한 표정을 짓는 이 과장의 표정은 우리네 그것과 소름 끼치게 닮았다. 9화부터 등장하는 백진상 차장을 연기한 연극배우 김경민의 연기는 압권. ‘미생’의 박 과장(김희원) 뺨치는 꼰대에 진상짓을 선보인 백 차장은 지난 4월 14일 업로드된 2시즌 마지막 화인 15화에서 정승네트워크를 화려하게(!) 퇴사했으나 곧 수렁에 빠질 것을 암시하며 끝났기에 3시즌에 출연할 수 있을지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좋좋소’는 ‘그러니까 꼬우면 더 열심히 해서 대기업 가든가’ 하는 반응을 경계한다. 중소기업을 마냥 까대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이 달라져야 함을 말하는 드라마다. 애초 ‘좋좋소’ 자체가 ‘방송국 놈들’이 아닌 유튜버들이 합심해 만들고, OTT 플랫폼으로는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왓챠에 입성한, 중소기업의 작품이 아닌가. 이 훌륭한 ‘강소기업’이 만들어내는 3시즌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얼른 돌아와줘!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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