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도축한 지 4일 이내의 신선한 돼지고기 만을 판매한다는 전략으로 연 매출 200억 원을 올린 스타트업 ‘정육각’의 마케팅 방식이 논란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사가 판매하는 삼겹살과 일반 삼겹살에서 나온 기름의 색깔을 비교해 광고를 게재했는데, 전문가들은 도축한 지 4일 이내와 이후의 돼지고기에 대한 유의미한 과학적 차이는 없다고 지적한다.
정육각은 카이스트 출신 김재연 대표가 2016년 설립한 육류 온라인 유통 스타트업이다. 대표의 출신 학교와 독특한 사연으로 지난해 10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많은 화제가 됐다. 지난해 6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아기 유니콘으로 선정됐으며, 11월에는 ‘혁신기업 국가대표 1000’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신선하면 기름도 깨끗?” 오해 소지 있어 삭제
논란이 된 광고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을 배경으로 자사의 이른바 ‘초신선 삼겹살’과 ‘일반 삼겹살’에서 나온 기름 색깔을 비교하는 내용이다. 사진을 보면 육안으로 봐도 ‘초신선 삼겹살’에 나온 기름이 훨씬 투명하고 밝은 빛을 띠는 반면, 일반 삼겹살의 기름은 어둡고 탁한 느낌을 준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며 도가 지나친 광고라고 지적한다. 문정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고기를 굽는 온도가 조금 높았거나 불판이 깨끗하지 않았거나 등의 이유로 보인다”며 “적절한 통제 없이 무작정 실험을 하게 되면 이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유명 식품공학자인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역시 “정상적으로 냉장 유통되는 고기라면, 도축 이후 기간에 따라 동일한 조건에서 나오는 기름의 색깔이 달라질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육각 측은 “(실험에 사용된 고기는) 타 온라인 커머스에서 구매한 D 사의 냉장 삼겹살(100g, 3100원)이며, 같은 불판에서 같은 시간 조리한 후 받은 기름을 비교한 광고”라며 “정육각 삼겹살을 조리했을 때 나오는 기름이 깔끔하다는 부분을 넘어 신선한(초신선) 고기가 기름이 맑다라는 일반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고객의 지적이 있어 해당 광고는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도축 5일 이내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을까
이날 과장 광고 논란은 정육각의 핵심 마케팅 메시지인 ‘초신선’으로 옮겨붙었다. 정육각의 근본적인 마케팅 방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 정육각은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는 시간이 도축 후 5일까지라고 홈페이지에 설명한다. 주된 근거는 축산물품질평가원이 2014년 발간한 ‘재미있는 축산물 이야기’에서 고기의 보관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육류가 진공포장이 된 상태에서는 통상 냉장 보관 시 45일까지 가능한데, 이때 고기의 맛 좋은 기간이 유지되는 기간은 육류 냉장온도(0~-1.7도)는 돼지는 4~5일, 소고기는 1~2주, 닭은 12~24시간”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을 정육각 측은 근거로 들었다.
또한 정육각은 고기의 육질을 연하게 하는 방법에 대한 부분도 보충 근거로 제시했다. 해당 부분을 살펴보면 “보통 4도 내외의 온도에서 도축 후 7~14일, 돼지고기는 1~2일, 닭고기는 8~24시간이 지난 후에 요리해 먹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 나와 있는 것. 다만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애당초 이 대목은 숙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도축 후 이 정도 기간이 지나야 사후경직이 풀려 고기가 연해진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최소한 이 정도 기간은 지나야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에 대해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정육각이 인용한 부분은 책자에서 의도한 내용과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며 “이는 보관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소비자가 돼지고기 구입 후 육류 냉장고가 아닌 일반 냉장고에 보관할 때 맛이 변하지 않는 기간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즉, ‘맛 좋은’이라는 표현이 ‘맛있다’는 의미가 아닌 ‘맛이 이상하지 않은’에 가깝다는 의미다. 평가원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았음에도 출처를 밝힌 부분에 대해 향후 어떻게 조치할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책자를 살펴보면 오히려 숙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많이 발견된다. 고기는 숙성 과정을 거쳐야 맛과 연도가 향상된다며 이는 근육의 에너지원인 ATP가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IMP 함량이 많을 때 풍미가 좋은 제 맛을 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후 강직에 대한 설명도 있다. “소, 돼지 등을 도축한 후 시간이 지나면서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지고 연도와 보수성이 떨어지는 현상을 사후강직이라고 한다”며 “강직된 고기를 요리할 경우 상당히 질길 뿐만 아니라 풍미도 떨어지기 때문에 맛이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울러 “숙성을 통해 연도, 보수력, 풍미가 증진되어 고기 맛이 좋아지며, 숙성기간은 소고기의 경우 10일 내외, 돼지고기는 2~3일, 닭 오리고기는 1~2일 정도”라고 한다.
통상적인 육류 유통 과정은 보통 어떻게 될까. 업계에 따르면 돼지고기는 부패를 막기 위해 도축 후 하루 정도 냉각을 거친다. 이후 발골 및 정형, 소분 포장 등을 거쳐 유통 업체에 전달되는데 보통 2~3일이 소요된다. 이후 마트나 정육점에서 취급하는 돼지고기, 특히 수요가 많은 삼겹살의 경우 도축 이후 1~2주 이내에 판매까지 전부 완료된다고 한다.
설국환 국립축산과학원 박사는 “맛은 주관적인 부분이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숙성을 거쳤을 때 기호도가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는 있다”며 “숙성을 거치면서 연도가 증가해서 고기가 더 부드러워지고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아미노산 같은 맛에 관련된 성분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설 박사는 “일반적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돼지고기 역시 도축 이후 2~3일 정도 걸리며, 도소매 등 유통과정이 복잡해질 경우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고 말했다. 또 “도축 후 언제 가장 고기가 맛있는가에 대해서는 통상적으로 도축 후 일주일 정도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재연 대표 “마케팅 방향 문제없어, 맛있으니까 소비자들이 찾는 것”
정육각이 내세우는 도축 후 5일 이내의 돼지고기가 신선하며 나름의 맛을 낸다는 것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다. 다만 그것이 가장 맛있는 고기인가는 개인의 취향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 제대로 냉장 유통됐다는 전제하에 정육각에서 판매하는 도축 이후 5일 된 돼지고기와 마트, 식당 등 일반적인 유통 경로를 통해 판매되는 도축 이후 7~10일 사이의 돼지고기 사이에 유의미한 과학적 맛의 차이는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문제는 정육각의 이러한 마케팅이 일반 돼지고기 판매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맛 없는 고기를 판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 김성기 아침목장 대표는 “도축 이후 기간에 따른 고기의 맛은 단지 기호 차이일 뿐”이라며 “정육각의 마케팅 방식은 소비자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사기와 다름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기존 업계를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차별화를 내세우는 방식은 가장 질 나쁜 마케팅 방식”이라며 “이는 소비자들에게 불신을 초래해 시장 전체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재연 정육각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김 대표는 비즈한국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까지 해명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신선한 고기와 숙성된 고기 모두 완벽한 보관 과정을 거친다는 전제 하에 둘 다 맛있다는 것에는 100%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돼지고기는 유통 과정에서 숙성으로 얻는 이점보다, 유통 과정이 길어지며 냄새가 생기는 등 단점이 있다”고 반박했다.
김 대표는 “정육각의 마케팅 방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초신선을 강조하는 건 우리의 차별화된 셀링 포인트이며 소비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찾는 것”이라며 “우리가 생각하는 맛의 포인트는 명확하고 그것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된 광고에 대해서는 “고객의 지적에 동의했기 때문에 광고를 내렸다. 우리는 정육각 돼지고기가 맛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으며, 신선한 돼지고기가 무조건 맛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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