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4월 5일 결국 LG전자가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스마트폰 사업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야기됐네요. 이사회에서 결정됐고, 7월 31일 자로 스마트폰과 관련된 모든 사업이 종료됩니다.
애초 특허나 핵심 기술 등을 쪼개서 매각하는 것을 고민한다는 기사들이 많이 났었는데, 매각보다는 사업을 정리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관련 기술을 해외 기업에 팔면 기술 유출 등이 고민되고, 국내에서는 관련 사업을 살 만한 회사가 삼성전자밖에 없지요. 이런 현실적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한 편으로는 언제든 또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겼다고 봅니다.
사업 정리 수순에 들어가는 LG전자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들 ‘안타까움’으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LG전자는 특허나 관련 기술을 많이 갖고 있고, 제품을 꺼내 놓는 아이디어를 보면 젊고 도전적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사업을 함께 운영하는 그룹의 역량을 모아서 담을 수 있는 꽤 괜찮은 제품이 스마트폰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경쟁사들에 비해서 부족할 것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여전히 애플은 LG그룹의 많은 부품을 이용해서 제품을 만들고 있고, 삼성전자에 비해서도 기술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시장을 읽어내고, 필요한 제품들을 결정해서 시장에 내놓는 과정, 그리고 그 시점마다 중요한 승부수들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LG전자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농담거리인 ‘마케팅’이나 전설처럼 내려오는 맥킨지의 ‘컨설팅’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약 그때 그랬다면…’이라는 아쉬움이 유난히 많이 남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지나간 이야기이기도 하고, 떠나는 기업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한번 상황을 복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맥킨지와 ‘피처폰’
LG전자 스마트폰의 부진을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출발점이 ‘시장에 제때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이유는 사업 컨설팅을 맡겼던 맥킨지가 스마트폰보다 피처폰에 집중하라는 보고서를 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졌죠.
그런데 사실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 그렇게 늦게 뛰어들진 않았습니다. LG전자는 아이폰의 등장 이전에도 윈도우, 그러니까 포켓PC 시절부터 관련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주력 제품은 아니었고, 당시에는 ‘해본다’ 정도의 의미가 있었는데, 그것만 해도 나쁘진 않은 시도였죠. 경험이었으니까요. 이런 도전이 LG전자의 매력이기도 하지요.
LG전자는 2000년대 경영의 변화를 위해서 외부의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컨설팅 회사들은 꽤 좋은 답을 해주는 선생님들이었죠. 2007년 아이폰이 발표되고, 2008년 하반기부터 뭔가 이 시장이 들썩거립니다. 국내에서는 아이폰 언제 나오느냐고 난리일 때였죠. 그때 맥킨지는 LG전자에 스마트폰보다 피처폰에 집중하라고 컨설팅을 합니다.
그리고 그 충고를 따른 것이 시대를 못 읽은 거라고 놀림거리가 됐죠. 저는 당시에는 컨설팅 회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컨설팅이라고 봅니다. 당장 매출을 위해서는 이게 맞으니까 말이죠. 스마트폰을 만들겠다고 핵심 역량들을 모르는 분야에 쏟아내느니 지금 잘하는 피처폰을 고도화하는 게 비즈니스로는 맞을 수도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당시에 불완전했고, 느렸고 어려웠습니다.
LG전자 정도의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완성의 제품을 함께 써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보다는 스마트폰의 핵심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왜 이걸 기다리나를 보는 편이 더 현실적입니다. 그리고 그걸 빨리, 확실히 만드는 게 필요하죠. 단기 컨설팅의 답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LG전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LG전자는 뭘 내놨나, 바로 스마트폰을 닮은 고성능 피처폰을 내놓습니다. 아이폰만큼은 아니지만, 꽤 큰 화면, 그리고 꽤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쓰고, 통신 기능을 넣습니다. 이른바 풀 브라우징을 휴대폰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대표적인 제품은 ‘터치웹폰’입니다. 꽤 쓸만한 성능에 디스플레이 해상도도 800x480으로 상당히 좋았습니다. 당시 아이폰 해상도가 480x320이었거든요. LG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디스플레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었지요.
#LG표 휴대폰의 무기 ‘웹’, 그리고 스마트폰의 차별성 ‘앱스토어’
그런데 LG전자는 왜 ‘웹’을 스마트폰에 맞설 무기로 준비했을까요? 아이폰 때문입니다. 애플이 꺼내 놓은 초기의 아이폰은 지금 같은 형태가 아니었어요. 앱스토어는 없었고, 기본적으로 스티브 잡스의 발표처럼 아이팟에 전화기를 합쳐 놓고, 웹 서핑을 할 수 있도록 한 기기였어요. 자, 전화기는 LG전자가 잘 만들었고, 음악은 이미 휴대폰에서 MP3 음악 재생 충분히 잘 됐죠. 하나 남은 게, 바로 인터넷이었습니다. 이걸 채운 겁니다.
하지만 이 제품은 호기심에 비해 그렇게 썩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비싼 통신 요금 같은 건 둘째치고, 당시에는 웹이 대부분 플래시와 액티브X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안 되는 게 너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LG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액티브X 중심의 웹 환경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LG전자는 이걸 계속 만듭니다. 나중에 나온 ‘아레나폰’의 경우는 2009년, 우리나라에 아이폰이 막 출시됐을 때 기준으로 당시에 나온 휴대전화 중에서 기기적으로 제일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었을 정도였어요. 해상도도 높고, 터치 UI도 좋았습니다. 잘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때는 이미 스마트폰이 한 단계 점프를 한 시기였죠. 바로 전 세계를 무기로 하는 앱스토어 때문입니다.
앱스토어 안에는 없는 게 없었죠. 그런데 그 앱들을 누가 만드나요? 애플요? 아니죠, 개발자들이 만들어서 팝니다. 앱 수십만 개가 쏟아져 나왔어요. 반면 LG전자 피처폰의 앱은 누가 만드나요. LG전자가 만들어야 합니다. 서드파티 앱 개발사가 참여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LG전자와 함께 작업해야 합니다. 스마트폰의 생태계를 절대 따를 수가 없죠. 이게 바로 ‘진짜 스마트폰의 힘’입니다.
그래서 LG전자도 안드로이드 폰을 개발합니다. ‘아, 스마트폰 만들어야겠다’ 라고 생각한 거죠. 첫 제품이 2010년 3월쯤에 나왔으니 준비는 2009년부터 했겠죠. 이거 늦었나요? 아뇨, 단기적으로는 조금 늦었지만 긴 경쟁으로 보자면 저는 절대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맥킨지도 LG전자도 잘못하지 않았어요. 당시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선택지를 꺼내 든 겁니다. 그때 맥킨지가 피처폰을 빨리 정리하고 스마트폰에 집중하라고 했으면 지금 이렇지 않았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LG전자는 기술이 없는, 창의성이 없는 회사가 아니니까요.
#피처폰과 전혀 다른 스마트폰 개발 환경, 안드로이드 혼란의 시기
LG전자도 2009년 아이폰이 들어온 이후에 스마트폰을 내놓습니다. 2010년에 몇 가지 제품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습니다. 그럼 앞서갔다고 평가받는 삼성은 어땠나요?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는 아이폰이 나올 때까지 옴니아, 그러니까 윈도우 모바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었죠. 아이폰이 나오고 나서야 충격 속에서 간신히 그 미련을 떨쳐버렸습니다. 그리고 갤럭시 A를 진짜 급하게 내놓았어요. 네 요즘 그 갤럭시A 시리즈가 사실 삼성 안드로이드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엘지도 첫 안드로이드폰인 ‘안드로 원’에 이어 옵티머스 브랜드로 스마트폰 옵티머스Q를 내놓습니다.
갤럭시A나 LG의 옵티머스Q나 초기 제품을 둔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어차피 당시에는 HTC 빼고는 전 세계의 제조사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제대로 못 만들었습니다. 최적화나 안정성, 앱 호환성 같은 문제를 공통으로 겪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서 쓰고 있었죠. 그나마 당시에 가장 휴대전화를 잘 만들던 모토로라가 그럴싸한 제품을 내놓고 주목을 받던 때였습니다.
LG전자의 초기 스마트폰인 안드로원이나 옵티머스Q는 모토로라의 모토쿼티에 인상을 받은 것 같아요. 쿼티 자판이 핵심이었어요. 근데 안드로이드를 쓰는 방법, 바로 여기에서 경험 부족이 나옵니다. 이건 모두가 똑같습니다. LG전자는 안드로이드 1.6을 넣습니다. 도넛이죠. 최적화 문제도 있었지만 이때는 이미 안드로이드가 2.0대 이클레어나 프로요로 넘어갈 때였어요. 이때 안드로이드는 반년마다 메이저 업데이트가 있었고, 엄청 불안정했어요. 1.6과 2.0은 전혀 다른 운영체제라고 봐도 될 정도였고요. 2.1 2.2도 완전히 다릅니다. 스마트폰은 기존 휴대폰 만드는 것과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개발하는 과정까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제조사들의 혼란은 상상을 초월하던 시기였습니다.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도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운영체제를 다루는 경험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하드웨어가 안드로이드 2.0을 제대로 못 받쳐줍니다. 이때만 해도 프로세서의 역할은 모뎀, 통신을 처리하고 남는 힘을 다른 데에다가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스펙을 상당히 타이트하게 짜야 했죠. 그리고 업그레이드보다는 자주 신제품을 내는 것으로 판매를 이어가는 게 일반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운영체제를 계속 뒤집어엎는 건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삼성은 얼마나 앞서갔나?
그럼 삼성은 어떻게 했을까요? 삼성은 처음 갤럭시A를 내놨다가 여러 가지 문제를 깨닫고 바로 갤럭시S를 개발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성능 때문입니다. 삼성은 당시 아이폰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이폰의 많은 부분을 고민해서 제품을 개발합니다. 감각적으로 ‘아이폰을 기준으로 삼자!’라고 판단한 것이죠. 그래서 삼성은 안드로이드로 아이폰과 비슷한 스마트폰을 만듭니다. 그게 갤럭시S입니다.
특히 당시에는 아이폰의 화면 넘김이 아주 매끄러웠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어딘가 뻑뻑하게 넘어가는 느낌을 주었죠. 이것 하나로 스마트폰이 훨씬 빠르고, 매끄러워 보이는 거죠. 이걸 안드로이드에서 구현하려는 게 삼성전자가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걸 갤럭시S에서 비슷하게 만듭니다. 바로 반도체입니다. 삼성전자는 고성능 칩을 찍습니다. 1GHz로 작동하는 프로세서를 말이죠. 당시 아이폰 3GS는 600MHz 프로세서를 썼는데 안드로이드는 비슷한 성능으로는 원활한 결과물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삼성전자는 똑같은 환경에서는 안된다라는 걸 깨닫고 더 빠른 프로세서를 도입합니다. 당시에는 삼성이 알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반도체가 삼성의 경쟁력이 되는 순간인 거죠.
LG전자는 성능 중심의 접근, 그리고 소프트웨어 최적화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 데에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고 봅니다. 옵티머스LTE에 들어와서 조금 나아지긴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LG가 따라가야 하는 안드로이드의 명확한 목표, 그러니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안드로이드폰’이라는 평가를 받은 갤럭시S라는 방향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때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LG전자는 맥킨지의 컨설팅을 따른 데에 대해서 놀림을 받았는데, 늦었나요? 아니요. 저는 이때도 하나도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삼성도 단숨에 답을 찾고 빨리 나가지 않았거든요. 지속적인 노력과 투자, 그리고 그 희생을 통한 경험이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키워나가고 있던 거죠.
엘지의 최고의 순간, 그리고 최고의 기회는 2012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LG전자 스마트폰에서 최고로 치는 제품 옵티머스G를 내놓은 시기입니다. 저는 그 발표 현장에 갔었는데 어떻게 보면 한국식 정서지만 그룹사가 힘을 합쳐 최선을 다했다는 메시지가 꽤 감동적이었고, 실제로도 제품의 많은 부분에서 그 결과가 보였습니다. G가 당시에 구본무 회장의 G를 땄다는 루머 아닌 루머가 있는데, 그도 그럴 게 LG그룹이 이 제품 하나를 놓고 전체가 모여 앉았습니다. 전자는 최고의 디자인과 소프트웨어를 준비하고, 디스플레이는 당시 최고 품질의 IPS 화면을, 이노텍은 카메라 센서를, 화학은 배터리를 꺼내 놓습니다.
실제로 제품의 완성도가 좋았습니다. 시장이 원하는 걸 만들어낸 거죠. 그리고 이 제품은 이른바 대박이 났죠. 세계적으로는 삼성을 뒤집지는 못했지만, 국내에서는 판매도 좋았습니다. 저는 아 이제 드디어 삼성과 엘지의 균형이 잡혔구나…라는 인상을 줄 정도였습니다.
시장 진입의 시기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혼란스럽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에서 누가 많은 경험으로 답을 빨리 찾아가느냐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LG전자가 답을 찾아내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최호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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