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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벨 생수' 출시 1년, 아이디어는 좋은데 왜 안 팔릴까

라벨 대신 마개·묶음 포장재에 정보 기재…브랜드 각인 어떻게 할지가 관건

2021.03.09(Tue) 10:18:18

[비즈한국] “와 이거 너무 좋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편의점에서 무라벨 생수를 처음 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무라벨 생수’가 시장에 선보인 지 1년이 지난 지금 시장 확대는 의외로 지지부진하다. 환경부가 지난해 말부터 자원순환의 일환으로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을 시행하면서 관련 업체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판매 현장에는 저마다 브랜드 라벨이 붙은 생수가 훨씬 많이 보인다. 주요 원인으로는 ‘낮은 소비자 인지도에 따른 오프라인 매장 판매 부진’, ​‘브랜드 차별화를 걱정하는 기업의 소극적 태도​’​ 등이 꼽힌다.

 

롯데칠성음료의 무라벨 생수 제품은 페트병 몸체에 라벨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병뚜껑의 작은 포장 필름에 표기 정보를 담았다. 사진=롯데칠성음료 홈페이지

 

국내에서 가장 먼저 무라벨 생수를 판매한 건 롯데칠성음료다. 작년 1월 선보인 ‘아이시스 8.0 에코’는 페트병 몸체에 라벨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라벨에 적혀 있던 제품명, 수원지, 무기물 함량 등의 정보를 병뚜껑의 작은 포장 필름에 담았다. 이 제품은 1.5L 제품 출시 이후 500mL, 2L 제품까지 연이어 선보이며 지난 한 해에만 총 1010만 개가 판매됐다. 

 

이 밖에도 여러 식품 기업이 지난해 말 시행된 ‘페트병 분리배출제’에 발맞춰 무라벨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이나 승강기가 설치된 150가구 이상 공동주택이 대상이며 본격 시행은 올해 7월부터다. 투명 페트병을 버릴 땐 내용물을 비우고 라벨을 제거한 뒤 찌그러트려 뚜껑을 닫은 후 전용 수거함에 배출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코카콜라는 환경부와 포장재 재활용 용이성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국내 탄산음료 최초 무라벨 제품인 ‘씨그램 라벨프리’를 출시했다. 로터스도 지난해 말 ‘무라벨 순창샘물’을 선보였으며 이 밖에도 제주개발공사와 농심도 올해 안에 라벨없는 생수 출시를 준비 중이다. CU, GS25, 롯데마트 등에서도 PB생수를 라벨없이 출시했거나, 출시할 계획이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지난해 무라벨 생수의 판매량은 전체 생수 판매량의 5% 정도다. 시장에서 무라벨 제품이 인지도가 낮은 상황임에도 적지 않은 비율이라고 보고 있다. 점차 가치소비의 비중이 커지고 있고 환경부가 협약을 통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만큼 올해는 비중을 높이고 판매 채널을 다양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완전한 ‘라벨프리’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업이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건 식품을 판매할 때 요구되는 ’필수 정보의 표기‘다. 라벨이 사라지면서 ’필수 정보를 어디에 표기하느냐‘가 관건이 됐다. 

 

CU는 마개에 라벨을 둘러 그 안에 작은 글씨로 필수 정보를 적는 방식을 택했다. 롯데칠성음료 ‘아이시스 8.0 에코’는 이마저도 순차적으로 없앴다. 묶음 포장용으로 생산되는 페트병의 마개에 부착된 라벨을 없애 비닐 폐기물이 전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다만 아직 수원지, 무기물 함량 등 필수 표기내용은 묶음 포장재에 들어가, 완전히 비닐을 없애진 못했다. 

 

낱개 판매의 어려움도 있다. 환경부가 올해 1월 ‘병마개 라벨 제품 낱개 판매’, ‘무라벨 제품 소포장 판매’ 등 낱개 제품 판매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나섰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도 무라벨 제품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묶음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낱개 판매가 잘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라벨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인지도가 낮아, 오프라인 판매처, 특히 소매점에서 입고를 꺼리기 때문이다. 온라인 상에서도 무라벨 생수의 묶음 상품은 쉽게 구매가 가능했지만 낱개 상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8일 둘러본 서울 중구 인근의 편의점. 아직 소매점에서 무라벨 생수를 구매하긴 쉽지 않았다. 다만 페트병 몸체에 둘러진 라벨의 분리가 쉽도록 절취선이 있는 제품은 다수 볼 수 있었다. 사진=김보현 기자

 

소매점에서의 낱개 상품 구매는 더욱 어려웠다. 8일 서울시 중구의 편의점 10곳을 둘러봤지만 무라벨 생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 편의점 점주는 “낱개로는 팔지 않고 20개 묶음으로만 판매했다. 그마저도 사 가는 사람이 없어서 얼마 전부터는 들여놓지 않는다. 손님들이 아직은 라벨이 없는 제품이 익숙하지 않아서 정보가 충분히 적혀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소극적인 태도도 무라벨 시장 확대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다. 현재 무라벨 제품을 출시한 업체들도 기존의 라벨이 있는 제품과 병행해서 판매하고 있다.환경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에 대해 환경부의 관리가 촘촘해졌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선제적으로 제품에서 라벨을 없애는 일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맛에서 차별화하기 어려운 생수 특성상 라벨 디자인에 제품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광고 모델의 이미지,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과 문구 등이 들어가는데, ‘무라벨’ 제품은 이를 전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수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최우선으로 고민하는 건 ‘고객들이 과연 브랜드를 인지할 수 있는가’이다. 뚜껑의 색, 묶음포장 디자인, 페트병 각인 등에서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인지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 싸움”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환경부 정책에 따라 무라벨 생수의 파이가 시장에서 확대된다면 마케팅도 눈에 띄게 변화할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생수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 브랜드 경쟁에서 가격 경쟁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무게 때문에 온라인 배송 확장의 영향을 많이 받아 대형마트나 편의점의 PB상품군도 늘어났다. 이 상황에서 라벨을 없앤다는 건 삼다수, 아이시스 등 이미 브랜드 이미지를 다져놓은 기업에 좋은 상황은 아니다. ‘라벨을 대신할 차별화’와 ‘저단가 상품’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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