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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용자가 게임사에 '트럭'을 보내는 이유

고객센터보다 강력하고 안전하게 '목소리' 전달…확률형 아이템 규제 입법에도 영향 미칠까

2021.03.05(Fri) 13:33:12

[비즈한국] 국내 게임사들을 향한 이용자들의 의사 표현 수단으로 ‘트럭 시위’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이용자들은 게임사들의 운영 정책이나 소통 부재에 불만을 탑차에 랩핑하거나 LED 전광판에 내용을 띄워 게임사·국회 앞에 트럭을 세워두고 있다. 트럭은 어쩌다 게임 이용자들의 불만을 표출하는 수단이 됐을까.

넥슨코리아 본사 앞에서 시위 중인 메이플스토리 트럭. 최근 게임사 앞에서는 이같이 이용자들의 불만이 가득 담긴 시위 트럭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진=박찬웅 기자


올해는 유독 연초부터 게임사나 국회 앞에서 트럭 시위가 자주 발생했다. 넷마블 ‘페이트/그랜드 오더’를 시작으로 엔씨소프트 ‘H2’, 컴투스 ‘타이니팜’ 이용자들이 게임사 앞으로 트럭을 보냈다. 넥슨코리아는 가장 많은 트럭을 받은 게임사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마비노기 △메이플스토리 △바람의 나라: 연 △클로저스 등의 이용자들이 넥슨코리아 앞으로 트럭을 보내며 자신들의 불만과 수정 사항을 주장했다.  

 

현재 이용자들은 트럭 시위를 게임사에 의사를 전달하는 강력하고 안전한 수단으로 평가하고 있다. 먼저 주변의 이목을 끌기 쉽다. 시위 문구로 래핑한 차량을 게임사 앞에 세워 두면 임직원들의 눈에 유저의 요구사항이 확실하게 전달되는 효과가 있다. 또 게임사 주변 시민들도 트럭을 보게 된다. 트럭이 오랜 기간 머무를수록 이용자들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장기화 되면 게임사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힌다.

 

이용자가 현장에 직접 나갈 필요도 없다. 트럭 대여 업체에서 운전기사를 배정해주기 때문이다. 3일 넥슨코리아 앞에 정차 중이던 메이플스토리 시위 차량 운전자 역시 게임 이용자가 아닌 트럭 대여 업체 직원이었다. 이용자들은 십시일반 대여비를 모아 차량 대여 업체에 주문을 의뢰하기만 하면 된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따르면 메이플스토리의 경우 2월 23일 자정부터 시작된 모금은 48분 만에 목표 금액 달성으로 종료됐다. 1042명이 총 852만 7379원을 모았다.

 

클로저스 시위 트럭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 큼지막한 문구가 눈에 띄어 시민들의 이목을 끌기 쉽다. 사진=예스미디어 제공


규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사이렌이나 확성기를 통해 주변을 시끄럽게 하거나 직원들의 출입을 방해하지 않기에 업무 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차량에 운전기사 혼자 탑승하고 있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라 정의되는 시위도 아니다. 관할 경찰서에 집회를 신고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게임사에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셈이다. 

 

앞서의 메이플스토리 시위 차량 운전기사는 “운행 첫날 경찰이 찾아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게 다였다. 넥슨코리아 앞은 차량이 적은 편이라 통행에 방해도 되지 않는다. 설령 통행량이 많아져도 게임사 주변 한 바퀴를 돌고 다시 돌아오면 된다”고 말했다. 

 

차량 대여 업체 ‘예스미디어’ 관계자는 “기존에는 선거용, 연예인 홍보용 등으로 사용됐던 차량이 최근에는 게임 이용자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트럭 시위는 코로나19로 집회를 여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법에 저촉되지 않는 건전한 시위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며 “게임사 앞에는 트럭이 한 대 서 있을 뿐이지만, 이 한 대에 이용자 수천 명의 목소리가 담겨 있기에 게임사 역시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럭 시위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도 있다. 트럭 시위는 게임사들을 향한 이용자들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임 이용자들은 그동안 게임사의 운영정책에 대한 불만을 소극적으로 나타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의견을 공유하거나 게임사 고객센터에 문의하는 정도였다. 적극적이라도 구글 플레이 스토어, 애플 앱스토어에서 별점을 낮추는 수준이었다. 

 

타이니팜 관계자는 이용자들의 트럭 시위 이후 공식 카페 공지사항에 사과문과 향후 계획을 게재했다. 이처럼 트럭 시위는 게임사들의 반응을 빠르게 끌어낸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게임사가 단순 보상 등 근시안적인 문제 해결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타이니팜 공식 카페 게시글 캡처


최근 흐름을 보면 이용자들이 트럭을 보내는 경우는 게임사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거나 게임사가 소통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일 때다. 이용자들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이른바 ‘총대진’을 꾸려 활동한다. 트럭을 보내기 전, 총대진은 이용자들의 요구 사항을 취합해 성명문을 만들어 게임사에 보낸다. 만약 이 성명문에 대한 게임사의 답변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트럭을 준비한다. 

 

메이플스토리 총대진 관계자는 “그동안 수많은 오류가 있었다. 우리는 고객센터를 통해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형식적인 답변뿐이었다. VIP로 평가받는 넥슨 프라임회원들의 전용 고객센터에 문의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며 “그런데 게임 이슈가 점차 커지면서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의원 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작성되더라. 이용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최후의 수단으로 트럭 시위를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트럭 시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국회의원과 연결돼 게임사의 이용자 기만행위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문제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 중이다. 게임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적으로 이용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용자들을 ‘돈줄’로만 생각하기보다는 함께 게임 발전을 위해 나가는 공동체로서 인식하고 대화를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게임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그동안 게임업계는 이용자들을 재화를 파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아이템을 팔기만 할 뿐 뒤를 잇는 서비스가 없었다. 지난 20년 동안 이 같은 인식이 굳어진 것”이라며 “게임 산업은 이용자와 ‘공진화’하는 혁신모델이다. 이용자와 게임사는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트럭 시위를 통해 이용자가 게임사를 강력히 비판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 이용자를 버린 산업, 이용자에게 지탄받는 산업은 절대 오래갈 수 없다”고 비판했다. ​ 

박찬웅 기자 rooney@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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